크리스탈처럼 맑은 물과 아름다운 습지 초원에 둘러싸인, 판타나우의 보석
세계 최대의 내륙 습지이자 침수초원으로 분류되는 판타나우 Pantanal. 열대 기후인만큼 연중 더운 온도를 보이고 건기(5월-9/10월)와 우기(11월-4월)로 나뉘며, 우기 때는 약 80%에 가까운 습지가 물에 잠긴다고 한다. 판타나우의 대부분은 브라질 중서부에 위치한 마투그로수두술 Mato Grosso do Sul (브라질식으로는 '마투그로수두수우'에 더 가까운 발음을 한다) 주에 있지만, 이웃나라인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일부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색깔의 열대 앵무새들과 시기마다 다르게 찾아오는 철새들, 그리고 맥이나 개미핥기, 큰수달, 카이만 악어와 최상위 초식자인 재규어까지 생태계 내 다양한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판타나우의 거점 관광지는 포르투갈어로 '예쁜' 이라는 뜻의 보니투 Bonito 이다. 보니투는 브라질 내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국제 기후 인증 및 자문 회사인 그린 이니셔티브 The Green Initiative 와 협력하는 자연보호를 위한 생태관광 Ecoturismo 의 중심이며, 2023년에는 탄소 중립 인증을 받기도 했다. 보니투는 환경친화적 지속 가능한 관광의 모범적인 사례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브라질 내에서 보니투는 판타나우를 체험할 수 있는 생태관광지로 꽤 유명하고 남미 내의 다른 국가들에게도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알려지고 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제대로 된 관광 정보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옛날 파견 동료 언니에게 들었던 간단하고 지엽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구글 번역기를 연신 돌려가며 얻어낸 정보를 통해 빈약한 여행 계획에 조금씩 살을 붙여갔다. 그렇게 우리는 아마존의 대도시 마나우스를 떠나, 상파울루를 경유해 마침내 마투그로수두술의 중심 도시 캄푸 그란지 Campo Grande 공항에 도착했다.
캄푸 그란지에서 다시 보니투로 들어 가는데는 대략 차로 4-5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를 탈 수도 있고, 렌트카를 빌리는 방법도 있지만 - 보통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은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과 같이 밴에 타고 가는 트랜스퍼 서비스 Transporte Compartilhado 다. 공항에 내려서 살펴보니, 여기서 출발해 바로 보니투로 간다는 트랜스퍼 서비스 회사들이 공항에 즐비했다. 회사마다 출발 시간이 다르므로 시간을 알아보고, 자신이 필요한 시간에 맞게 아무 회사 밴이나 타고 가면 된다. 당시 헤알 환율로 계산해 볼때 왕복 기준 인당 약 8-9만원 가까이 들었던 기억이 있고, 회사마다 가격 차이는 거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바로 출발할 수 있는 밴을 골랐고, 약 20분 뒤에 밴에 인원 수를 다 채우자마자 거칠게 출발했다.
캄푸 그란지에서 보니투로 가는 길은, 도시를 벗어나고 중간 지점 쯤부터 몇 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로 바뀐다 (이 여행도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일이므로 현재는 그 구간에 도로가 잘 닦여 있는지 모르겠다.). 밴을 모는 기사는 익숙한 듯 이 길을 매우 빠르게 밟았지만,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멀미가 났다. 애초에 멀미와 어지럼증에 매우 취약한 나에게는 막판에는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는데, 단순히 길이 험해서가 아니라, 운전이 험해서였던 것이 더 컸다.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며 '차라리 내가 운전하는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보니투에 도착했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밴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갔다. 보니투 토박이 출신인 어머니와 아들 가족이 운영하는 이곳은 자기가 사는 커다란 집을 숙박 시설로 개조해서 만든 느낌이었고, 덕분에 기분 좋고 깨끗한 시골집에 놀러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이 전부 포르투갈어만 하실 수 있으셔서 그런지 처음에는 외국인 일행인 우리를 보고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 친절과 웃음을 섞어 천천히 스페인어로 말하고, 필요하면 구글 번역을 통해 의사소통을 해 나갔다.
오후의 보니투는 작고 조용하며 한적한 마을 같았는데, 그도 그럴것이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보통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일과 중에는 주변 지역 투어를 다녀왔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보니투로 복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체크인 한 숙소에서 나온 우리는 보니투를 돌아볼 겸, 4일간 이어지는 일정 동안 필요한 투어를 예약하기 위해 여행자 거리 쪽으로 나갔다. (참고로 보니투는 아주 안전한 편이라 밤에 도보로 돌아다녀도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에서는 재화와 서비스, 사람이 몰려있는 도시보다는 시골의 관광지 지역이 훨씬 더 안전한 편이다.)
이후 여행사 거리를 쭉 돌며 주요 투어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가격을 물어보며 다녔다. 보니투는 주로 브라질 손님들이 자주 오는 편이라 그런지 여행사 직원들 역시 (숙소 주인과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에게 당황한 듯 했지만,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며 마치 옛날 예능 <가족오락관> 속 코너 같이 알쏭달쏭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서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근무 시간에 맞춰 출근을 했고, 그 직원에게 다양한 설명을 들은 뒤 주요 투어를 골라 필요한 교통편까지 전부 예약하며 우리의 목적을 달성했다.
보니투에서 진행하는 관광 투어 장소는 다 시외에 있고, 교통이 따로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여기까지 오는 상당수의 관광객이 개인 차나 렌트카를 들고 오기 때문이다.) 홀로 차 없이 움직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하루에 몇 대 있지 않아 이용이 불편한 공용 버스를 이용하거나, 투어 때마다 기사가 모는 왕복 트랜스퍼 서비스를 예약하는 수밖에 없다. 교통편의 경우 차 한대를 통째로 빌리는 거라 한 명이 가든 네 명이 가든 교통비가 같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홀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부담이 있으므로 동행을 구하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세 명이라 여행사와 연계하여 투어마다 필요한 차를 구했다.)
모든 투어를 다 마친 뒤 동생들은 왜 이렇게 남미에서는 나름 관광지에서조차 영어로 소통하기 어렵냐며 툴툴댔다. 나 역시 2016년도에 페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똑같은 생각을 했지만,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뒤에 여러 이유를 찾았다.
우선, 남미의 국가들은 오랜 식민지 역사를 토대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라는 서로 비슷한 언어를 구사한다. 그리고 그 자체로 워낙 거대한 대륙이기에 관광 역시 중남미 사람들의 내수로도 충분히 굴러가는 구조라 외국인 손님들을 그렇게 아쉬워한다는 인상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그리고 영어 자체가 중남미에서는 어느 정도 살만한 집안이거나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여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권력 언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브라질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보니투에서 다양한 투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진행한 체험은 포르투갈어로 카발가다 Cavalgada 라고 불리는 승마 체험이었다. 보니투에서 차를 타고 약 30분 정도 걸리는 포르모소 강 생태 공원 Parque Ecologico Rio Formoso 으로 가서 근처 농장의 말을 타고 한바퀴를 돌고, 이 생태 공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끝난다.
하루종일 승마와 수상 스포츠를 실컷한 탓인지 저녁에 매우 배가 고팠던 우리는, 구글맵에서 찾은 이 지역의 명물 레스토랑 '주아니타 Juanita'(스페인어로는 '후아니타'라고 읽지만, 포르투갈어는 J를 영어처럼 발음한다) 으로 갔다. 식당 입구에 적힌 간판의 Juanita 의 J가 빨간 고추 모양으로 적혀 있어 우리 일행은 '고추 식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곳은, 이곳 보니투 지역에서 잡히는 커다란 민물생선과 세하두 지역 소고기 아사도(바베큐처럼 굽는 것) 요리로 유명하다.
우리는 이곳 보니투에선 유일한 "진짜" 동양인이라 그런지(브라질은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곳이며 특히, 일본계 브라질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파울루 내에서 10퍼센트 이상 차지할 정도로 높은 편이라 동양인의 외모 자체는 낯설지 않다.) 우리와 마주친 고추 식당 직원들은 하나같이 웃어주고 인사를 하며 우리에게 서비스를 내어주는 등 굉장히 친절했다. 좋은 기억을 안고 첫 일정을 마무리 했다.
다음 날 오전, 그루타 두 라구 아술 Gruta do Lago Azul 이라고 불리는 아주 멋진 석회 동굴을 방문하는 투어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도 석회동굴은 많지만 이곳이 특히 유명한 이유는, 아침 특정 시간에 방문할 경우 햇빛에 비친 호수색이 말도 안되게 푸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를 일찍 시작해야했다.
오후에는 보니투에서 가장 유명한 액티비티인 '플루타상 Flutuação'을 하기로 했다. 이는 포르투갈어로 '부력'이나 '둥둥 떠 다니기' 등의 뜻인데, 말 그대로 구명조끼와 스노쿨링용 커다란 수경을 착용하고 맑은 강 위를 둥둥 떠 다니는 것이다.
이날은 포르모소 강 위에서 플루타상을 했는데, 강바닥이 그대로 보이는 맑은 자연, 그리고 아마존과는 다르게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잘 관리된 환경을 보고 뿌듯한 기분에 마음이 벅차오를 정도였다.
보니투에서의 액티비티가 있는 마지막 날, 우리는 하이라이트로 수쿠리 강 Rio Sucuri 에서의 플루타상을 신청했다. 이곳에서 반드시 해야할 액티비티라며 주변의 반응과 리뷰가 가장 좋았던 터라 우리 일행은 잔뜩 기대를 하고 출발했다.
도착해보니 '세상에, 어떻게 지구에 이렇게 맑고 깨끗한 곳이 존재하는 거지?' 싶을 정도로 놀라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푸른빛을 조금씩 모아 이곳에 콸콸 쏟아부은 느낌이랄까. 영어로 Crystal clear라는 표현이 있는데, 말 그대로 수정처럼 반짝인다는 뜻이다. 이 표현은 웬만한 푸른 보석보다 예쁜 물빛을 가지고 있던 수쿠리 강을 위한 것 같았다.
어제의 포르모소 강 역시 아름다웠지만, 수쿠리 강의 물이 좀더 투명하고 빛나게 보이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가이드 왈 강 바닥이 일단 하얀 모래이고, 강의 원천은 온천 형식으로 흘러나오는 깨끗한 지하수이며, 이곳 지대 주변의 석회암이 물을 깨끗하게 거르는 필터 작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투어사와 지자체, 그리고 각종 단체가 환경 보존을 위해 함께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라는 명답을 들을 수 있었다.
플루타상 액티비티에서는 규칙이 있는데, 강 생태계를 위해서 "절대 강바닥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날 갔던 포르모소 강보다 이날 수쿠리 강이 조금 더 물살이 셌기에, 사람이 빨리 떠내려가기가 쉬웠다. 순간순간 덜컥 놀라는 마음에 강바닥을 밟고 일어설 뻔했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 정말 안간힘을 다해야 했다.
우리는 강에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호들갑을 떨며, 수쿠리 강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칭송했다. 꽤 오래 전이지만 여전히 생생한 수쿠리 강에서의 기억. 푸른 숲에 둘러싸인 강. 자유롭게 수초를 오가며 놀던 예쁜 물고기들, 그리고 파란 하늘과 투명한 물빛을 떠올리면 내 마음 역시 다시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보니투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릴 만한 수쿠리 강 플루타상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보니투 시내. 이날이 보니투에서 보내는 마지막 저녁이었기에, 우리는 다시 고추 식당으로 돌아가 거하게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직원들이 친근하게 다가와 여행은 잘 즐기고 있냐고 물었는데, 오늘이 마지막 저녁이라고 답하니 곧 지배인이 왔다. 그리고 식사를 다 마치고 우리가 괜찮다면 식당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어쩌면 위생 관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제안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재미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위생을 위해 그들이 건네는 머리망을 쓰고,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 고추 식당 안쪽을 둘러보았다.
보니투에서 우리가 만든 기억을 돌이켜보면,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한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여러 동식물들, 그리고 이 모두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철저한 노력이 어우러진 한 편의 아름다운 생태 동화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인간의 활동으로 촉발된 각종 부정적인 결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육지를 뒤덮고 해양을 떠다니는 쓰레기, 생존권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 과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 식량 자원을 비롯한 각종 가용 자원의 감소 등 다양한 위기를 겪으며 어떤 때보다도 범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중력과 연대를 요구하고 있다.
만일 우리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실천이 보니투의 자연 보존을 위해 이루어지는 만큼 실현된다면, 좀더 지속 가능하고 자연친화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사는 어느 곳이든, 그곳을 낙원에 가까운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기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