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들에게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그러니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해보고 싶은 걸 해보고 불공정을 맛봐야 덜 억울하니까. 요즘 세대는 특히 공정을 외친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공정하지 않게 흘러간다. ‘무엇이 옳은지’ 보다 ‘무엇이 돈벌이가 되는지’가 비교할 수 없게 중요하다.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찾는 노력이다. 아름다움은 옳은 것의 발현이다. 윤리적으로 옳아야 아름답다. 결국 디자인은 옳아야 아름다워진다. 그런데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 디자인은 필요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첫 수업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얘기한다. "사양(斜陽) 산업을 배우러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패션 디자인이 세상을 사는데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는 꽤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패션이 사양산업일까? 그리고 세상은 올바르지 않나?
기후위기가 닥치며 사람들은 돈 이외에 올바름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업은 올바르게 해야 하고, 사람의 인권이 중요하고, 환경을 파괴하면 안 된다는 옳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 되었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따지는 것은 올바른 방법으로 기업을 경영한 다음 문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패션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디자인은 옳지 않다. 그래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패션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디자인은 오로지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디자인된 제품을 목적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을 위해서는 스트림 간에 협력이 중요하고 협력을 위해서는 정보 공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공유된 정보는 검증 이전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거짓 없는 올바른 정보 공유가 지속가능한 패션제품을 만들고 유통하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사업상 비밀이라고 감추고, 과장된 정보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정확하고 깨끗한 정보가 패션 산업의 미래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환경은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세계최고의 지속가능한 제조, 유통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이제는 겉으로만 화려한 패션에서,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모든 과정이 아름다워야 하는 패션으로 변하고 있다. 패션은 아름답고 멋져야 하지만 그 과정이 그렇지 않다고 밝혀지는 순간 추한 모습이 된다. 마치 화려한 모습의 유명인이 추한 과거가 밝혀져 괴물이 되는 것처럼, 지속가능하지 않은 패션은 흉물이다.
기후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윤리를 일깨웠다. 모두가 살아야 하는 대중의 윤리! 나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에 호응을 받는 이유가 신과 같은 존재인 왕 중심의 서양 문화가 지배하던 시대가 저물고, 대중의 감정이 드러난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의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우리나라의 문화는 시대정신을 보여줬고, 세계인들은 새로운 대중문화를 옳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우리나라 문화를 감동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패션도 세계인들의 호응을 얻으려면 대중의 감정과 윤리의식을 담아 올바르게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패션이 진짜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디자인된다면 한국 스타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패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