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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보 Oct 30. 2022

이태원

환경문제 발표 준비를 하다가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글을 쓴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가 자꾸 연관되는 것은 사고 당사자가 젊은 세대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대형 사고가 나면 왜 젊은이가 희생되는가?

 며칠 전 학교에서 축제가 있었다. 음악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시끄러웠다. 나는 행사장 근처 연구실에 있다가 음악 소리에 이끌려 행사장에 갔다.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빼곡히 모여서 함께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무척 질서 정연한 모습이 놀라웠다. 사방이 터진 공간에서 허름한 울타리를 치고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입장하지 못한 젊은이들도 울타리 밖에서 공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연은 절정에 달했지만 아무도 울타리를 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대부분은 나의 세대가 부러워한 선진국 시민들보다 훨씬 더 이성적이다. 그들은 맘대로 하는 것과 개판을 치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다.

사고의 문제는 그들이 머문 공간이 아직도 60~70년대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곳에선 분명히 잦은 사고가 났을 것이고 언젠가 큰일이 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그렇게 지냈으니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사고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법은 이제부터 일어나는 사건에 적용된다. 하지만 새로운 건축법은 지금 있는 건물과 도로는 그냥 그대로 놔두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부터 적용된다. 그런데 건물에 머무는 사람들과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계속 새롭게 바뀐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며 스스로 변하지 않고, 법의 한계에 턱걸이를 하며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면 언젠간 그곳에서 사고가 날 것이다. 그리고 사고 당사자는 과거에 법칙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이들일 것이다. 우린 모두 안타까움을 기억한 채, 법의 한계에서 안전을 맡긴 불안한 도시에서 또 다른 사고를 기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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