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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보 Dec 18. 2022

줄 서기와 우쭈쭈의 시대

코로나로 한동안 뜸했던 모임이 많은 연말이다. 이번엔 집에 갈 걱정 없이 편안하게 얘기하자고 친구들과 합정동에 1박 2일로 파티룸을 빌렸다. 파티가 끝난 다음날 이른 아침에 시원한 바람을 쐬려고 창문을 연 '재현'이가 외쳤다. "와! 빵집 앞에 줄이 엄청 길어!!" 창문 너머엔 낯설면서도 익숙한 광경이 보였다. '모랩'이라는 빵집 앞에 젊은이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 건물 두 채를 빙빙 돌았으니 족히 2~300명은 넘을 듯했다. 날씨도 쌀쌀한 토요일 이른 아침에 빵을 사기 위해 긴 줄을 1시간씩 서는 요즘 세대가 이해되지 않아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먼저 드는 생각은

자신의 판단보다 다른 사람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세대인가?

내가 살았던 80~90년대는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남이 뭐라 하던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기보다는 타인의 인정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것 같다. 특히 무슨 이유에서건 유명한 사람들의 선택에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듯하다. 유명하다고 옳거나, 선하거나, 분명하지는 않을 텐데 그 사람의 지적 수준보다는 유명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에 대한 댓글 응징에도 익숙한 세대이지 않나?

또 다른 생각은

이것저것 고민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먹고, 쓰는 것을 구매하는 것이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유명해도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영특한 세대가 약간의 차이를 위해 이 추운 아침에 자기의 소중한 시간을 1시간씩이나 허비할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자기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얻기 위해서 유명한 곳을 방문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인스타에 올릴 사진이라면 한 번이면 족하다. 같은 곳을 계속 방문해서 오랜 시간 줄을 서는 것은 한 번의 사진을 올릴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럼 도대체 우리나라의 젊은이 들은 왜 이렇게 줄을 잘서는 걸까?


내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은 일본 사람들이 줄을 잘 선다고 우리도 줄을 잘서야 한다고 가르쳤다. 당시 일본의 줄 서기는 질서의식의 상징이기도 했다. 자기 맘대로 규칙을 정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권력의 입맛대로 조정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줄 서기는 많이 다르다. 일단 전 세계에서도 드물게 걸핏하면 줄을 선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90% 세일을 위해서라면 줄을 서는 것 밖에 방법이 없지만, 다른 가게와 그다지 차이도 없는데 특정한 가게만 줄을 선다. 그리고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럭셔리 샵도 주말이면 길게 줄을 서있다. 내 돈 내고 내가 사겠다는 데 줄을 세우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해외에서 갔던 명품샵은 제품을 꺼내오는 동안 엄청 유명한 소파에 앉혀놓고 훌륭한 차도 내주고 새로 나올 상품에 대하여 브로셔도 보여주면서 설명도 잘해주던데 우리나라에선 비싼 상품을 사면서 그다지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닌 듯하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름 이유를 떠올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재 유래 없이 우울, 불안감, 삶에 대한 불만족, 분노에 시달리고 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 자기 상황을 비관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모습은 특정 부분만 가공해 자랑하고 '좋아요'를 원한다. 좋아요가 적으면 우울해한다. 또 조금이라도 상대를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가차 없이 '별점' 테러를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비판은 참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 내린다. 대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직설적인 조언이나 평가보다는 작은 장점이라도 찾아 칭찬을 하는 것이 먼저가 되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군가가 '당신은 잘하고 있다' '당신은 소중하다'를 끊임없이 알려줘야 하는 '우쭈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조금이라도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목적을 이루기 전에 기대감을 올리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 같다. '목적을 달성한 순간'보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다는 확신의 순간'이 훨씬 높은 만족도를 준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도파민 분비 연구로 밝혀졌다. 줄을 서는 것은 줄 선 목적을 확실하게 이룰 수 있는 기대감을 준다. 줄이 줄어가면 기대감은 더욱 높아진다. 또한 사람의 욕구는 다른 것으로 전이가 가능하다. 헤어진 이성친구 때문에 생긴 우울감을 술이나 쇼핑으로 해결하는 것은 사람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는 이 시대의 우울감을 줄 서기로 해소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확실한 미래를 위한 투자가 줄서기이고 무조건 기대감 상승과 만족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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