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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chun Kim Oct 05. 2017

양말이의 3살

우리집 고양이 양말이가 3살이 됐다. 개천절에 우리집에 와서 가족들이 "상천이 동생 개천이"로 이름을 하자고 농담하던 기억이 난다.



1.


양말이는 길고양이였다. 세진이네 이사하던 날 건물과 건물 사이에 끼어 울고 있었다. 몇 시간째 울음이 끊이질 않아서 가보니 새끼고양이가 건물 틈에서 빼액빼액 울며 우릴 올려다보고 있었다. 30cm는 될까 싶게 폭이 좁고, 높이는 3미터가 넘었다. 아마 어미를 쫒아 지붕을 타다가 떨어진 것 같았다.


우리는 이사짐을 잊어버린 채 거의 2시간동안 새끼를 꺼내는 일에 매달렸다. 그래도 얘는 살 팔자였던 게, 그때 같이 있던 형이 119구조대원이었다. 형이 반으로 자른 1.5L 생수통을 긴 옷걸이 끝에 묶어서 건져올렸다.


어미가 찾아오겠지, 그날 밤 참치캔을 까놓고 밖에 내놨다. 아침에 보니 새끼는 그대로고 참치캔만 비워져있었다. 고민 끝에 내가 키우기로 했다.


2.


양말이는 아프면서 컸다. 6개월째부터 1년간은 심각했다. 정상 고양이의 백혈구 수치는 2만 내외, 3만이 넘으면 심각한 수준이다. 아주 아플 때 양말이의 백혈구 수치는 11만이 넘었다. 수의사들은 하나같이 백혈병이라 진단했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죽이네 살리네 하는 얘기들이 오갔다. 큰누나는 백혈병이라기엔 석연찮은 구석들이 있다고 말했다. 백혈구 수치는 엄청나게 높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장기가 건강했고 먹고 싸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백혈병이라면 그럴 수는 없다. 누나는 양말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녔다. 그때마다 수의사들은 하나같이 무능한 처방을 내렸다. "백혈병은 맞는 것 같은데 장기가 건강한 이유는 모르겠음"이 공통된 소견이었다. 그러면서 안락사 얘기를 꺼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다보니 알게 되었다. 국내 수의학은 가축이나 반려견에 집중돼있고 고양이에 관해서는 아직 수의사들도 거의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3개월도 못 산다며 차라리 고통이 덜하도록 안락사를 시키라는 수의사들의 말을 누나는 듣지 않았다. 결국 반년이 넘도록 병원을 옮겨다니며 검사를 받아낸 끝에 누나는 양말이가 백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니, 누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3.


양말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아직 데이터가 없는) 알레르기성 피부병이었다. 피부 외엔 이상이 없었다. 모든 장기가 건강한데 벽혈구 수치만 높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온몸의 피부에 염증이 번진 상태였고, 그걸 치료하려고 백혈구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는 것이었다.


백혈병이 아니라 다행이긴 했지만 병은 심각했다. 이 시기의 양말이는 지켜보기 힘들만큼 고통스러워했다. 눈만 뜨면 다급히 온몸을 핥고 피가 날 때까지 긁어댔다. 증세가 점점 악화됐다. 밤사이 온몸의 털을 뽑아내곤 피범벅이 되어있는 것을 본 뒤로는 꼬깔을 벗길 수 없었다. 그렇게 양말이는 거의 1년동안 늘 그 답답한 꼬깔을 쓴 채로 살았다.


때때로 발작을 했다. 지금도 이유는 모르지만 양말이는 뒷발로 목을 긁는 자세를 취했을 때 종종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오줌을 지리며 발작을 했다. 발톱이 부러져나갈만큼 거칠게 나뒹굴어서 발작을 말리려는 사람도 피를 보기 일쑤였다. 겨우 진정시키고 나면 놀란 눈을 그렁그렁 뜬 채 숨을 헐떡이며 구석으로 숨으려고 했다. 참담해서 볼 수가 없었다.


이 시기에 양말이는 종일 잠만 잤다. 깨어있으면 견딜 수 없이 가렵기 때문이었다. 눈 뜨면 또 미치도록 가렵고, 가려운데 꼬깔을 쓰고 있어 긁거나 핥지도 못했고, 보다 못해 잠깐 풀어주면 늘 피를 보거나 경련을 했다. 그 고통이 매일 반복됐으니 눈 뜨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수의사들은 여전히 백혈병 운운하며 엉뚱한 처방을 내리길 반복했다. 그렇게 쓸데없는 약을 타먹고 쓸데없는 검사를 받으며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양말이와 우리 가족의 고통은 점점 커졌다.


4.


결국 양말이를 살려낸 건 큰누나였다. 수의사들에 대한 신뢰를 끊고 직접 방법을 찾아나갔다. 큰누나의 방법은 소거법이었다. 하나 해보고 안되면 다시 하나, 또 해보고 안되면 다시 다른 하나를 해보며 경우의 수를 줄여나갔다.


그 과정에서 병원비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처음엔 검사비와 약값 2만5천원 나온 것도 비싸다고 놀랐는데, 나중엔 MRI 한번 찍는데 80만원이 나온 게 덤덤했다. 나와 작은누나와 큰누나는 돌아가며 카드 할부를 냈다. 그 비용이 어느 선을 넘었음을 알았을 때, 또 양말이의 괴로움과 발작이 극에 달해 지켜보기 참담했을 때, 나는 조심스레 포기하자는 말을 꺼냈다. "저렇게 고통스럽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때도 누나는 양말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누나는 매번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누나의 그 '마지막으로'라는 말은 어느 시점부터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보였다.


5.


찾아볼 수 있는 정보, 받을 수 있는 검사, 처방할 수 있는 약, 먹여볼 수 있는 음식이 별로 남지 않을 즈음부터 양말이의 증세는 호전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표정이 좋아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 더 이상 발작을 하지 않았다. 온몸의 털도 다시 자랐고, 곧 털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1년을 이겨낸 양말이는 차츰 건강을 되찾았다. 지금도 백혈구 수치를 낮추기 위해 면역억제재를 먹고 때때로 피부곰팡이 약을 바르기도 하지만, 이젠 거의 보통의 고양이처럼 건강하게 뛰어 놀 수 있게 되었다. 늘어지게 낮잠 자고 일어나서 참치캔을 달라고 조른다. 흐르는 물에 재미 들려서 목이 마르면 욕실 수도꼭지 앞에 서서 사람을 부른다. 창문가에 누워 일광욕을 하며 전깃줄의 새들을 구경하길 좋아하고 아주 심심하면 밖에 나가자고 조르기도 한다. 가끔씩 저녁에 집앞 놀이터로 산책을 나간다.


5.


양말이가 아주 아플 때, 그러니까 작년 말에 이해할 수 없는 날이 하루 있었다. 아주 심하게 아파서 못견뎌하던 양말이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자 기적처럼 갑자기 건강해졌다. 어쩐지 무서울 정도였다. 전혀 긁지도 않았고, 기분 좋아서 그르릉거리며 신나게 집안을 뛰어다녔다. 거짓말처럼 건강해졌다가, 크리스마스가 끝나자 다시 거짓말처럼 병을 앓는 고양이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은 교회도 안 다니는데.


그때 잠깐 건강해진 양말이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 모두 그간 맘고생이 심해서 그 행복한 모습을 보자 울컥하기까지 했다. 아마 그날 하루의 기적같은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다잡은 것 같다. 꼭 고쳐보자고, 건강하게 살게 해주자고 말이다.


맛있게 간식을 먹고 드러누워서 태평하고도 멍청한 짓을 하며 노는 지금의 양말이를 보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양말이가 지금처럼 한가하게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 쓰다보니 엄청 길어졌다. 뭔가 정리가 필요했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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