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형식은 없고
주제는 목소리야."
그 말이 흥미로웠다. 분량이든 뭐든 자유롭게 쓰면 되지만 일단 에세이여야 한다, 주제는 목소리.
왜 목소리일까. 에세이는 입을 다물고 적는 행위의 결과물일텐데. 에세이 모임을 여는 주제를 고르면서 어떻게 목소리가 떠올랐을까.
"목소리?
응 목소리."
이유를 물어볼까 하다가 그저 빙긋 웃고 지나갔다. 출제의도를 추측해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라. 재밌는 주제 같다. 에세이를 쓰는 건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받아적거나 스스로 답해보는 일이 아닐까.
불현듯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 출근길 지하철이 양화대교를 건너거나 퇴근 후 혼자서 늦은 저녁을 먹거나 샤워를 할 때, 문득 나에게 말을 거는 머릿속의 내 목소리들. 그런 목소리들을 잘 들어두었다가 정리하면 에세이가 되곤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린 어쩌면 늘 에세이를 써왔는지 모른다. 글의 형태가 아니었을 뿐이다. 내 머릿속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에 답하거나 되묻는 일인 '생각'은 머릿속으로 쓰는 가장 근원적인 형태의 에세이라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프레디 머큐리가 머릿속으로 쓴 에세이들은 대체로 외로움에 관해서였다. 그 에세이로부터 <Somebody To Love> <Save Me>같은 곡을 만들었다.
아름답고 외로운, 외로운 만큼 기어이 더 화려한 프레디형의 목소리는 제발 날 찾아달라고 말했다.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무전기에 대고 무작정 말을 거는 사람처럼. Find me, somebody to love, find me.. 제발 나를 찾아달라고.
어떤 작가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흘러 녹음기에 썼다고 한다(아마 편혜영이었던 것 같다). 첫 소설을 쓸 때 안에서 쏟아져나오는 목소리들을 손이 다 옮겨적지 못해, 허겁지겁 녹음기를 꺼내서 말로 썼다고 한다.
그렇게 작가 안의 소리는 성대를 지나와 육성이 되고, 곧 녹음기로 자기 목소리를 들으며 육성은 또 머릿속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되돌아가 더 큰, 혹은 좀더 차분한 문장이 되어 결국 종이 위에 착륙하기까지. 그 ‘목소리의 여정’을 생각해보는 일이 재미있다.
예술가들처럼 작품이 나와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보통의 우리에겐 그저 기록이나 정리 혹은 보람만 되어도 충분히 좋겠다. 문득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릴 때, 거기에 답해보는 일은 늘 도움이 되니까.
머릿속으로든 종이 위에든, 어쨌든 써보면 일단 좋다. 머릿속에서 쓰면 나의 사고방식이 되고, 손으로 쓰면 내 문체가 된다. 쓰다보면 고유한 내 것이 되어 나를 구성할 것이다. 각자의 성대를 지나온 각자의 고유한 목소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