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 이야기 20.
어김없이 봄이 왔다. 벚꽃이 한창 피었고, 파릇한 이파리가 돋았다. 봄은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다. 1961년에 제작된 <꽃피는 시절>이라는 영화가 있다. 요즘과 같은 계절에 어울리는 제목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의료인들이 주인공이다.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배경은 함경남도 함흥이다. 흥남비료공장병원 일꾼들과 함흥 의대 일꾼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소재로 하고 있다.
1961년 2월, 김일성이 흥남비료공장 병원 일꾼들과 함흥 의대 일꾼들을 칭송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온몸에 큰 화상을 입은 어린아이를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피부이식 수술을 통해 살려낸 이야기가 당에 보고되었고, 김일성이 아이를 살려낸 보건일꾼들의 헌신에 대해 인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산주의 사회에 걸맞은 인간상이라면서 칭송을 했던 것이다.
김일성의 성명 발표 이후 뉴스를 통해 화상의 피해에서 벗어난 아이와 이 아이를 살려낸 흥남비료공장병원의 의사가 소개된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이 아이와 보건일꾼들의 노력에 대해 감사하는 편지와 선물이 쏟아진다. 이런 내용을 또 기록영화로 제작한다. 그리고 극영화로 제작하기로 기획된다. 시나리오는 변희근, 연출은 천상인이 맡았다.
이 영화는 병원 외과 과장이 주인공이다. 학교 운동회에서 의료봉사를 갔는데, 쪽지에 적힌 내용에 따라 운동회에 참가한 사람과 함께 손잡고 달려야 하는 경기에서 한 아이가 모자 쓴 사람을 찾게 된다. 그의 손을 잡고 달리려고 보니 그는 걷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광경을 본 의사는 얼른 그 어른의 모자를 빌려 쓰고 당황해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리기를 한다. 운동회가 파하고 걷지 못하는 청년에게 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으라고 권한다.
어느 날 의사 선생과 함께 달리기를 하던 아이는 불장난을 하는 도중에 불이 옷에 붙어서 큰 화상을 입는다. 외과 과장은 의료인들과 공장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도움을 얻어 다리가 불편한 청년을 걷게 만들고 화상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아이를 헌신적인 살려낸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는 <백두산이 보인다>라는 영화에서 북한 최초로 김일성을 연기한 리단 배우가 주인공 외과과장 역으로 나온다. 그는 연극무대에서는 레닌이나 이순신 같은 영웅적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는 당시 북한 인민들에게는 주인공 역을 도맡는 배우였다. 또한 이 영화에서 간호사 역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최부실이 맡았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의 유명한 화학자 최삼열이다. 최삼열은 북한 최초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인물로 일본의 교토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광복 후에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6년 김일성종합대학이 만들어질 때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는 과학원이 창설될 때 부원장직을 맡았다. 원장은 경제학자 백남운이었으니까 과학자 중에서는 최고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기대 외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주인공인 외과과장의 헌신적인 노력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가장 중요한 당과 수령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당시 북한 문예계를 이끌었던 박웅걸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새 시대, 새 생활이 낳은 새 성격의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천리마 기수의 전형”이지만, 당적 영도의 사상을 대변하는 당위원장의 형상이 소심하게 그려지는 등 실재 사실에 비해 감동이 덜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시 말해 당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작품이라는 평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