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언 Jul 17. 2021

"우리 집 문제"(1973)

북한영화 이야기 22.

북한에서 가장 사랑 받았던 영화를 꼽는다면 어떤 영화가 있을까? 북한 최초의 영화인 <내 고향>이나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 불리는 <피바다>, <꽃 파는 처녀> 같은 영화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영화들은 북한의 중요한 기념일마다 상영되는 기념비와 같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순전히 정치적 목적을 떠나 북한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영화를 꼽는다면 바로 <우리 집 문제>를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집 문제" 타이틀


<우리 집 문제>는 허례 의식이 가득 찬 우편 국장 부부가 주인공이다. 이 부부는 입으로는 혁명화를 외치면서도 가정에서는 부부싸움을 일삼고 공사를 분간하지 못하는 행동을 일삼는다. 가정에서의 모범적이지 못한 행동은 직장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결국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인민반에서도, 직장에서도 이 부부의 일이 문제가 된다. 결국 주인공의 입장에서 “우리 집 문제”가 원인이 되어 직장에서 쫓겨나 지방으로 좌천된다.    

  

가정 내의 문제가 결국 직장 문제로까지 영향을 준다는 코미디 영화 <우리 집 문제>는 “가화만사성” 같은 교훈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주인공 우편국장 부부로 연기한 한길자(좌)와 김세영(우)


우선 세련된 시나리오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는 과정을 재미있게 보여다. 집에 전화를 들여놓는다던가, 고가의 시계를 산다던가, 직장의 자동차를 사적으로 사용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사건의 재료가 된다. 결국은 우편 국장 부인이 새로 들여 놓은 전화를 사용해 우편국에서  걸려 온 중요한 연락을 못 받게 되고 비싼 시계를 대가로 직장을 옮겨주기로 했지만 그게 불발되어 돈을 물어줘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은 돈을 되돌려 주기 위해 처가집 도움을 받기로 하고 우편국의 차를 사적으로 이용하며 동분서주하다가 중요한 신문을 제때 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확대되는 식이다. 


이 영화에는 당시 북한에서 가장 사랑받던 코미디 배우 김세영과 한길자가 우편 국장 부부 역할을 맡아서 아주 세련되고 능청맞은 연기를 보여준다. 두 배우는 <끝 없어라 나의 희망>(1964)이 제작되던 무렵부터 함께 영화에 출연하여 좋은 앙상블을 보여주었다. 

  

우편국에서 쫓겨난 우편국장이 터벅거리며 걸어가는 화면에 주제 곡 "가정혁명화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영화는 일상에서의 혁명화를 강조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북한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영화 창작자들에 대한 혁명화 사업을 추진했다. 과거의 낡고 잘못된 행동과 관행, 생각을 바꾸는 사업을 시작한 것인데 그 사업이 영화예술부문에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 사회 전반에 혁명화, 노동 계급화가 강조되었다. 영화 속에서 우편 국장 부부가 계속 가정의 혁명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하는 행동은 그와 정반대 되는 행동이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입으로는 혁명화를 이야기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러지 않은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영화는 일상을 배경으로 힘 들이지 않고 만든 영화였지만 너무 인기가 좋다 보니 일종의 모델이 되었다. 김정일은 <우리 집 문제>와 같은 작품을 계속 만들어서 인민들의 혁명화 노동 계급화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이후 혁명화, 노동 계급화에 성공한 우편 국장 부부들이 주변의 문제적 가정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시리즈 영화가 만들어진다. <우리 옆집 문제>, <우리 웃집 문제>, <우리 처갓집 문제> 등 총 10여 편의 시리즈 작품이 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학신의 일가"(196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