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 이야기 23.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만들어 냈다.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선언문에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담았다. 그리고 그 후속 조치로 2000년 9월, 63명의 비전향 장기수 노인들이 북한으로 송환됐다. 북한에서는 이들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한 송환을 크게 선전하면서 2002년 <철쇄로 묶지 못한다>를 영화로 만들었다.
비전향 장기수를 소재로 한 영화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북한에서 자랑하는 “민족과 운명” 시리즈 중 1992년에서 1993년 사이 제작된 비전향 장기수 리정모 편(제14부, 제15부, 제16부 총 3부)은 비전향 장기수인 리인모 노인과 관련한 영화였다.
2000년 9월에 많은 수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송되면서 또다시 이들의 이야기가 <철쇄로 묶지 못한다>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비전향 장기수 노인들이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전향공작의 실상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념을 지키려 목숨까지 내버리는 비전향 장기수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투철한 신념이 영화의 전체적 내용을 이룬다.
영화 속 주인공은 비전향 장기수 김문철(김준식 분)이다. 감옥에서 함께 생활했던 최남(리윤복 분)은 신념을 지키다가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교도소장은 그림을 그리다가 감옥에 들어온 젊은 청년(리영호 분)을 전향공작에 활용하려 한다. 전향공작을 위해 비전향 장기수들 틈에 들어가게 된 그는 오히려 이들 비전향 장기수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확인하는 목격자가 된다. 영화는 김문철이 끝까지 지조를 지키다가 감옥에서 나오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북한으로 송환되면서 마무리된다.
이 영화의 배경은 대부분 감옥이다. 그러다 보니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 단조로울 수밖에 없는 화면은 연극적인 느낌을 준다. 이 영화는 세트에서 찍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카메라는 세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환상 장면들이나 회상 장면들도 무대 화면에 연기를 피우는 것처럼 마치 연극무대의 한 장면처럼 묘사한다.
그렇다고 모두 감옥 장면만 있는 건 아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이들 비전향 장기수들을 환영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은 실제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을 환영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을 촬영한 필름을 편집해 활용한 것이다. 이외에도 회상 장면에서 과거 기록영화 필름들을 많이 활용했다.
감옥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보니 이 영화는 배우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실제 배우의 역량이 어느 영화보다 중요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북한에서 자랑하는 유명한 배우들이 다수 등장한다. <돌아오지 않는 밀사>와 <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을 맡았던 인민배우 김준식이 주인공 김문철 역을 맡았고, 이 시기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홍길동>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공훈배우 리영호가 감옥에 들어온 미술가 청년으로 연기했다. 여기에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무자비한 전향공작을 펼치는 교도소장으로는 인민배우 서경섭이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