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이야기 13.
1899년부터 서울에는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청량리에서 종로를 지나 서대문을 왕복하던 전차의 서대문 방향 종점은 지금의 서대문 로터리로 경인선의 종점인 서대문정차장과 만났다. 인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는 사람은 서대문정차장에 내려 전차를 타고 도성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1902년 대한제국 황실에서는 서대문 안쪽 새문안 지역에 서울 최초의 극장인 희대를 만들었다. 희대는 희대를 운영하는 회사의 이름을 따서 협률사, 혹은 원각사라 불렸다. 희대가 만들어진 1902년은 고종황제의 50번째 생일과, 즉위 40주년을 맞는 대한제국의 아주 경사스러운 해였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황실에서는 성대한 잔치를 계획하게 된다.
우리 전통 연희라는 게 넓은 마당에 둘러앉아서 관람하는 방식이었다. 궁정 연희도 마찬가지로 궁궐의 넓은 뜰에서 연희가 펼쳐지고 연희 공간을 관객들인 왕과 대신들이 삥 둘러앉아 다과상을 앞에 두고 음식을 먹으며 관람했다. 바닥에 앉는 것이 익숙한 우리에게는 문제가 아니었으나 축하사절로 참석하는 서양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각국 외교관과 주재원들을 위해서 특별히 실내 연희 공간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희대였다.
희대의 모습은 한때 그곳을 운영했던 원각사라는 단체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건물 바닥은 둥그렇고 그 안에 장방형의 무대가 있고 지붕은 원뿔 모양의 극장이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긴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이 아니었다.
둥그런 형태의 극장이라고 하면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원형극장을 생각할 수 있다. 왜 극장을 그런 형태로 만들었던 것인가?
서양에서는 원형극장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서커스용 극장을 생각한다. 서커스극장의 모습을 한 희대는 아주 특이한 형태의 극장이었다. 그 이유는 조선이라는 나라, 다시 말해 대한제국이라는 나라의 근본이념이 성리학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성리학에서는 “우주와 인간 세계의 기본 구성 요소이자 그 변화의 동인”을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으로 규정하고 이를 천지인 삼재라고 불렀다. 천지인을 시각화한 용어가 천원지방, 다시 말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고 인간은 삼각형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원방각이라고도 불렀다. 아마도 연희라는 게 바로 하늘 아래, 땅 위에 인간이 펼치는 희로애락이라는 의미를 지니기에 그랬을 것이다. 희대는 바로 천지인 삼재 개념을 가지고 만든 극장으로 무대와 객석을 모두 감싸고 있는 바닥면은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 인간이 서서 연기를 펼치는 무대는 네모난 장방형,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치는 인간을 상징하는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만들었다.
극장을 새로 지을 정도로 대한제국 황실에서 심혈을 기울였던 1902년의 행사는 아쉽게도 잘 치러지지 못했다. “어극 40년 칭경예식”이라 불린 행사는 서울에 콜레라가 창궐하고 공교롭게도 고종의 막내아들인 영친왕이 천연두에 걸리는 등 도성에 전염병이 확산되자 실내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 공연을 펼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행사를 연기 후 나중에 간소하게 치렀다.
행사가 연기되자 국가적 경사를 위해 당대 최고의 명창인 김창환을 비롯해 전국에서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사람들을 서울에 다 모아 두었는데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아쉬워하던 이들이 이들 예인들을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극장을 관리하던 장봉환을 중심으로 일종의 연예회사를 차린다. 그 회사의 이름은 협률사였고 이 협률사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일반인들에게 요금을 받고 “소춘대유희”라는 이름의 연예회가 펼쳐지게 된다.
1902년 12월 2일 시작된 협률사의 "소춘대유희"는 큰 성공을 거뒀다. 해를 넘기고 레퍼토리를 바꿔가며 공연을 이어갔다. 장안의 노랫소리가 가득했기에 젊은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신문에 연일 보도될 정도였다. 협률사는 콜레라로 문을 닫게 된 황실 극장을 장봉환이 자기 마음대로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군악대를 운영했는데, 그 운영비를 자체 조달하고 있었기에 이 협률사 공연의 수익을 군악대 유지비로 쓰기로 허락을 받고 공연을 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