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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Sep 12. 2022

책방 노마만리 이길성 문고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19.

책방을 준비하면서 3층에 영화 도서관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김종원 선생님으로부터 “김종원영화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도 받았다. 팔지 않는 책을 책방에 쌓아 놓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내가 가진 장서들과 지인들의 책을 기증받으면 꽤 괜찮은 도서관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천안지역의 영화 연구자들이 자료를 찾기 위해 혹은 참고도서를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지 않아도 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지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책을 책방에 기증해 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중국으로 이사할 계획이던 이승민 선생이 수백 권의 책을 넘겨주었다. 그 책들은 남양주 연구실에 보관하고 있다가 책방이 문을 열면서 천안으로 가지고 내려왔다. 책방 문을 연 후에는 한국영상자료원의 김홍준 원장님을 비롯해 이수정, 이진숙, 오영숙, 이선주, 조경덕, 김상민, 김성수, 유임하, 노광우 선생 등 지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책을 선뜻 기증해주었다. 여기에 부산의 김도연 선생은 직접 출간한 따끈따끈한 책을 도서관 장서로 보태라고 보내주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책방 3층에는 꽤 많은 책이 모였다.


9월 2일 책방 노마만리로 들어온 이길성 선생님 장서


남양주에서 가져온 내 책들과 지인들이 기증한 책을 토대로 책방 노마만리의 3층에 영화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많은 책들을 정리하고 공사가 덜 된 화장실을 비롯해 미비했던 부분들을 마무리한 후 3층을 개방하기로 했다. 우연찮게도 3층 도서관이 문을 연 9월 2일, 한 트럭의 책이 새로 노마만리에 들어왔다. 얼마 전 별세한 영화 연구자 이길성 선생님의 장서였다.


책방이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6월 중순이었다. 이미 여러 박스의 책을 기증하신 오영숙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와 책을 얼마나 더 받을 수 있는지 물어왔다. 그러면서 영화 책 말고도 다른 주제의 책들도 있다고도 했다. 나는 영화 책 외에도 다른 책들도 기증을 받고 있으니 종류와 수량은 상관없다고 말씀드렸고 오영숙 선생님은 가급적 책들이 흩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뉘앙스로 말씀하시며 조만간 또 연락을 주겠다고 하시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충격적 이게도 이길성 선생님의 부고를 중앙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명우 선생을 통해 들었다. 전날 오영숙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책이 이길성 선생의 장서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일주일쯤 지나서 오영숙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길성 선생님의 죽음과 연구자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장서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이길성 선생님의 책이 여기저기 흩어지는 것은 큰 실례라는 생각에 가급적 온전히 한 곳에 모여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씀드렸다. 내 이야기를 들은 오영숙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안도감 같은 것이 진하게 느껴졌다.


주제별로 분류중인 이길성 선생님 책들


이후 3층 붙박이 책장에는 이길성 선생님의 장서가 자리할 부분을 고려해 책을 채웠다. 그러다보니 한쪽 벽면은 이길성 선생님의 장서가 들어올 때까지 오랫동안 빈 채로 남아 있었다.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인 후 다시 오영숙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길성 선생의 중앙대 대학원 출신 후배들 몇 명과 책을 정리하기로 했으니 조만간 책들을 트럭에 실어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며칠 후 한 트럭의 책이 책방으로 들어왔다.


책이 들어온 9월 2일 금요일은 책방에서 문관규 선생님의 영화강좌가 열리는 날이었다. 강좌 준비로 분주하기에 우선 문 앞에 쌓아둔 책들을 3층으로 옮겼다. 그리고선 그날 문을 연 3층 도서관의 출입을 막아두고 책 정리는 주말을 이용해 마무리하기로 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던 일요일이라 책방이 유독 한산했다. 책방 일을 돕기 위해 천안에 내려온 아내에게 카운터를 맡기고 나는 3층으로 올라가 책을 정리했다. 박스를 풀어 책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그것을 책장에 배분해 꽂았다. 박스를 풀다 보니 내가 쓴 책도 두권이나 있었다. 책을 펼쳐 보니 곳곳에 형광팬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은 흔적이 보였다. 문득 이길성 선생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뵈었던 날이 기억났다. 영상자료원에서 자료 구입 평가를 위한 회의였는데, 그때 이 선생님은 제자뻘 되는 나에게 내가 쓴 "해방 공간의 영화, 영화인"을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선생님의 그 말씀이 연구자들끼리 으레 나누는 덕담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책방 노마만리의 "이길성 문고"


책을 분류해 책장에 하나하나 꽂기 시작하며 이 책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 모여 있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지인들이나 후배 연구자들이 서명해 선물한 책들이 보일 때마다 이 책들이 헌책방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었다면 그것만큼 쓸쓸한 것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정리를 마치고 나서 아내와 함께 이길성 선생님을 기리는 간단한 제사를 지냈다. 책방 뜰에 있는 미니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와 커피와 함께 접시에 올린 후에 절을 하며 선생의 장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길성 선생님의 방대한 양의 장서는 “이길성문고”라는 이름으로 따로 구분 보관할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책이 섞이지 않도록 표시하는 일과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이다. 혼자 하는 일이라 시간이 걸릴 테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다. 책을 정리하면서 이길성 선생의 지인들이 노마만리에 방문해 선생님과의 즐거웠던 시간들을 추억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후배들이 이길성 선생님의 책을 연구에 활용한다면 이길성 선생님도 뿌듯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이 책들만 가지고도 훌륭한 영화학 박사논문이 여러 편 나올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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