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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노 Aug 30. 2020

겸손, 미덕이 아니라 의무이자, 도리

소크라테스, 공자, 이경규

스타크래프트라는 이름의 우주전쟁 게임이 우리나라 게임계를 집어삼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도 스타 열풍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보통의 남자아이처럼 게임을 좋아했다.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살았다. 불철주야로 노력하여 실력을 증진시켰다. 각 반의 스타대표들을 차례차례 꺾었다. 나의 명성은 강호에 울려 퍼졌고 그 명성을 듣고 나에게 도전해온 도전자들을 모조리 이겼다. 그렇게 비공식적인 학교스타짱의 왕좌에 오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교만과 가까워지지 않았다. 나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생치고 잘했던 것일 뿐이었다. 온라인의 날고 기는 고수들에게는 나 역시 똑같은 약자에 불과했다. 나는 그저, 다른 친구들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그로 인해 경험이 많았고, 최신의 전략전술들을 잘 알고 있었을 뿐이다. 더 뛰어난 인간이 아니었다. 같은 길을 걸어왔다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걸 알기에, 겸손의 자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분명 나보다 더 잘하는 친구가 있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나서기와 알려지기를 좋아하지 않아, 나에게 도전장을 보내지 않은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5000만 명이고, 어떠한 분야에서건, 나보다 잘나고 뛰어난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는 절대적 진리이며, 이 진리를 깨달았다면,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삼국지 관우의 첫 공식 메이저 데뷔 무대. 동탁군 선봉장 화웅에게 연합군의 장수들이 일기토로 썰리고 있다. 이에 관우가 자진해서 나선다. 하지만 동맹군 수뇌부는 듣보잡 병졸이 중요한 회의자리에서 나서자, 고깝게 본다. 다행히 관우를 눈여겨본 조조가 변호해 화웅을 상대하러 출전할 수 있었다. 조조는 관우에게 술을 한잔 건넨다. 이때, 관우는 그 유명한 대사를 친다.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이다. 관우의 사람 됨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공 제로인 뉴비 병졸 치고는 굉장히 오만불손하다. 만약 화웅을 이기지 못했다면, 굉장히 쪽팔리는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만약 화웅이 아니라, 여포 혹은 여포급의 강한 상대였다면, 일기토를 패배하고 목숨을 건지더라도, 평생의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다. 낮은 계급과 인지도로 무시를 당해, 그에 반발하는 마음으로 교만한 모습을 보인 것이겠으나, 합리적이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겸손하지 않은 태도로 얻은 이점은 단 하나도 없다. 조조가 호의로 베푼 술을 적당히 마시고 출전한다 해도 손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교만한 모습을 보인다 해서, 추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으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최악의 상황에 피해와 타격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것이 유일한 앎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들이 무식한지 아닌지 조차 모르는 인간들보다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명해지고, 발전하는 것의 근본은 겸손에 있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앎이 시작된다. 바꿔 말하면, 겸손하지 않은 자에게 발전과 진보는 없다. 삼국지 시작부터 먼치킨 캐릭터였던 관우는 오만방자한 자였다. 세계관 최고의 무력을 자랑했지만, 그 오만한 자세로 무시하던 강동의 쥐새끼, 손권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각 시대의 현인들은 비슷한 맥락으로 겸손을 강조해왔다. 중국의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라 말했다. 99퍼센트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모른다고 인정할 때에만, 100퍼센트의 앎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한국의 코미디언이자, 현인인 이경규는 이렇게 말했다.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무서워진다.

이경규는 40년 방송생활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며, 공동체에 해를 끼치거나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지가 무식한지를 몰라서이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서이다. 결국엔, 겸손할 줄을 몰라서이다. 겸손한 사람이라면, 확실하지 않은 것에 베팅하고 표현하고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작 뉴턴은 수학과 물리학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류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는 주식하다 테마주에 휘말려, 쪽박을 찼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완벽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면, 모름을 인정해야 한다. 자존심 같은 것은 휘발적인 것이다. 모르면 묻고, 아는 체, 잘난 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겸허하며, 겸손한 자세로 삶과 사람을 마주해야 한다. 그것만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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