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마지막 글을 쓴 게 작년 12월이니 올 해는 한 편도 글을 못썼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초에 아이가 생겨 임신으로 한 해를 꽉 채워간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아이가 생겼는데 초반부터 엄청난 입덧으로 고생을 했다. 임신을 알아챈 4주부터 조금씩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6주 차부터 10주 차에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정도가 되어 수액을 맞으러 다녔다. 고작 걸어서 5분 걸리는 병원도 가기 버거웠었다. 거의 한 달은 누워만 있었는데 그 아늑했던 침대조차도 울렁거려서 딱딱한 바닥이나 소파에서 지냈다. 내게 이번 해 2,3월은 없는 시간이다. 아무 기억이 없다... 힘든 것은 어쨌든 지나가기 마련이니 지금은 "그때 참 힘들었었지." 하는 기억만 남아있다. 기억은 희미해져 가고 표현만 남을 뿐이다. 잊을 것 같아 남겨둔 메모들.
-3.20 시간이 많이 흘렀네. 심해진 입덧은 이제 토도 하고 헛구역질도 하고 입덧약 한 알로 버티는 중
-3.28 할머니가 꿈에서 국수를 해줬다. 입덧으로 하나도 못 먹고 있었는데 그 국수가 너무 맛있었다. 할머니도 내가 안쓰러웠나... 그래서 저녁엔 국수를 먹었다. 잘 먹었다. 다음 날도 국수를 먹었다. 또 잘 먹었다.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4월이 되어서는 조금 괜찮아졌다. 입덧약의 도움도 받고 음식도 그냥저냥 먹을 수 있게 되고 외출도 괜찮아졌다. 그런데 입덧과 바통터치한 것이 바로 역류성 식도염. 보통 임신 후기에 온다고 하는데 나는 10주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다. 먹기는 잘 먹지만 소화가 안 돼서 그래도 식도에 남아있는 느낌이랄까. 앉아서 자기 시작했다. 특히나 밤에는 울렁거림이 가장 심해져 토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4-5월은 토를 하며 지냈다. 초반에 고생을 한 덕분(?)인지 중기는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임신 증상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힘내세요..ㅜㅜ 조금만 버티시면 그래도 살만합니다.)
-4.9 잘 먹지만 식도염이 무서워서 조절. 저녁 일찍 먹고 그 후엔 아무것도 안 먹으니 잘 때 괜찮음. 대신 울렁거림.
-4.14 저녁 감자만 먹음. 감자만 먹으니 토해도 편한 듯
-4.26 낮엔 괜찮고 밤부터 울렁대서 새벽에 극대화
-5.22 소화는 여전히 안되고 식도염도 있지만 16주 후반부터는 그래도 많이 나아짐. 침대에서 드디어 잘 수 있게 되었음.
참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것들이 행복한 괴로움이었다. 간절히 기다리던 아이라서 견뎌낼 수 있었다. 내가 준비가 될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딱 그때, 아이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