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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은 Jul 31. 2020

12. 좋아한다고 다 잘되진 않아

이 말이 이토록 마음에 오래 남았던 이유는 아마 헤어질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라서 그럴지 모릅니다. 나를 사랑해줬던 이들은 하나같이 '좋아한다고 다 잘되진 않아' 라는 말을 남기곤 했습니다. 상세한 이유는 가지각색이었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좋아했습니다. 먼 걸음 온 당신들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래도 노력에 비해 결과는 늘 실패했습니다. 때때로 열심히 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사람 마음은 누구든 다 알 수 없으니까요. 


내 노력이 최선이, 최고가 되지 않을 때 많이 우울했습니다. 어쩌면 기대했던 것들이 있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애정이라는 틀안에서 놓고 봤을 때 나는 어엿하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엔 나만 노력하고 있는 줄 알았던거죠.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어쨌든 그도 나를 사랑했던건 맞더라고요. 방식과 시선의 차이였을 뿐이죠. 



이걸 알았을 땐 말이죠, 지나간 사랑이 보고 싶어서가 아닌 순전히 '일' 때문이었습니다. 유명한 방송인을 인터뷰하고, 솔직하게 당신 덕분에 지금의 내가 글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선 워너비로 떠오른 분이었고, 저 역시 그의 팬이나 다름없었거든요. 그 분은 저를 응원했고, 왠지 모를 인정받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를 정성들여 보내고 난 다음, 저는 제대로 차였다는걸 알았습니다. 


원고를 빠꾸 당한거에요. 워낙 업계에 정평이 나있는 분이라 당연히 빠꾸를 예상했지만 통째로 발행을 거부한 인터뷰이는 처음이었던겁니다. 집으로 오면서 종로 한복판에서 울었습니다. 진짜 서러워서요. 내가 그렇게 못났나, 내가 그렇게 부족했나 싶어서요. 마치 연애 하고 헤어진 기분처럼. 가슴 한켠이 텅 하고 비었습니다. 적어도 어디가선 부족하단 얘긴 안들었는데. 업계에서 차일 정도면.. 대체 내가 얼마나 모지란 애였던가. 


그렇게 몇개월이 흐르고 새로 들어온 후배에게 당시 저를 찬 인터뷰이를 인터뷰할 수 있는기회를 열어줬습니다. 생각보다 후배는 재밌었다고 얘기했고, 긍정적인 결과로 발행은 문제없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인터뷰이는 인상깊었던 질문을 SNS에 올려주기도 했죠. 감정이 미묘해졌습니다. 나는 그렇게 뻥 차놓고, 한참 어린 후배에겐 잘해주다니 싶어서요. 


집으로 가면서 맥주 한캔을 깠습니다. 씩씩거리면서요. 물끄러미 후배가 한 인터뷰를 다시 들여다 봤습니다. 퇴고, 퇴고, 퇴고를 거친 글은 당연히 아름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뷰이가 올린 SNS 글귀도 다시 들여다 보면서 두개의 글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문득 이게 진정한 #럽스타그램 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사랑이 통하면 이런건가 싶더라고요. 


그 때 알았습니다. 노력은 나만 한게 아니라는걸요. 




사실 후배에겐 제가 원고가 까였던 사실을 솔직히 밝혔고, 관련된 팁을 전수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발행된 원고를 잊을 수 없어 팁을 후배에게 알려줬습니다. 다행히 후배는 그 팁을 잘 활용했습니다. 아마 저보다 더 잘 써먹었던게 분명합니다. 이건 개인의 역량이니 알 수 없지만 확실한건 인터뷰이의 마음을 사로 잡았기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던겁니다. 


통하는 사랑이 이런거라면.. 저는 실패한 짝사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내가 알고난 사실을 후배에게 전수했을 때 부터 저는 글렀다는걸 알았거든요. 비겁하게도 저는 그분을 다시 취재갈 생각을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한번 까였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했거든요. 근데 후배는 그 사실을 알고, 잘 활용했던거죠. 부럽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자책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나만 알고 있던 귀한 피드백을 남한테 줬으니. 뭐 말 다한거죠. 후배가 쓴 원고를 다시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인터뷰이는 늘 한결같이 굴었다는 것을요. 다만 99% 뿐인 나와 준비된 100%사이에서 고민했을 뿐이라는 걸요. 내 후킹 질문은 부족했고, 후배의 피드백 꽉찬 질문은 맘에 들었다는 거죠. 아마 그분은 우리 두사람의 이야기를 다 열심히 들어줬을 겁니다. 사전 질문지를 받고 하나씩 고민하셨을 분입니다. 다만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건 저 뿐이겠죠. 최선을 다해서 답했던 분인것도 맞습니다. 후배의 원고를 꼼꼼하게 살폈다고 했으니까요. 




지나간 사랑이 이제야 떠올라 미안하다고 하는 구남친들이 때론 한심했는데. 그 마음을 저는 인터뷰이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노력은 나만한게 아니라는걸요. 알찬 팁을 내가 활용했어도 되는데 저는 후배에게 내줬습니다. 내가 더 상처받기 싫어서요. 뭐든 상처를 받아야 성장한다는걸 알면서도 말이죠. 


맞습니다. 좋아한다고 해서 다 잘되진 않습니다. 감정이 앞선다고 내 마음이 순도 100%, 레알, 트루 사랑이 될순 없죠. 누군가의 마음에 fit 하게 들어서지 않는 이상 99가 100이 될순 없잖아요? 끝난 사랑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구 애인들에게 저는 99였지, 100이 될 수 없는. 좋아한다고 해서 다 잘 될 수 없단걸 그 분들은 먼저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그냥 제 온도에 맞게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노력한다고 다 잘되는게 아니라면, 묵묵히 내 온도에 맞게 움직이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온도에 맞춰 따라올, 혹은 나 처럼 살아갈 누군가를 만날거라고 믿었거든요. 그 마음이 통한건지 저는 제 온도에서 가끔은 먼저 올랐다가 가끔은 먼저 식기도 하면서 자기 속도에 맞춰 사는 분을 만나, 행복하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일도 그렇게 여겼다면 조금 더 나은 사랑을, 더 좋은 결과를 맞이했을지는 의문입니다. 다만, 확실한건 좋아한다고 해서 다 잘되진 않다는 겁니다. 좋아한다고 다 잘되진 않아도, 적어도 얻는게 하나 정도는 있는거라면. 저는 잘 헤엄치고 있는거겠죠.




사실 이글은 취기가 올라 자판을 두들긴 글입니다. 습관은 이럴 때 무서운일이지도 모릅니다. 문득, 제목에 쓴 말을 그대로 읊어준 기억이 떠올라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았거든요. 지극히 제 주관적인 경험담이니 별로다 싶으면 "이 사람 많이 취했네" 라고 넘어가주시면 됩니다. 금요일이네요! 다들 행복한 주말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퇴고 없이, 고민 없이, 생각없이 올리는 글이니 오타, 비문이 느껴져도 그런갑다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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