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아남기
근래 들어서 가장 자주 하고, 익숙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있다면 마늘을 까는 것입니다. 쑥스럽게도, 저는 요즘 야채 다듬기에 빠져있습니다.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생긴 습관입니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야채 다듬기가 딱이더라고요.
언제부턴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이 하고 싶어 졌습니다. 주로 일이 없는 시기에 그랬던 거 같습니다. 집중을 하고 싶지만 내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그랬고요. 그럴 때마다 야채를 한가득 사서 집에 와서 며칠 동안 다듬습니다. 파를 다지고, 양파를 미리 채 썰고, 당근을 잘게 썰고, 마늘을 까서 빻고.. 하고 나면 하루가 꼬박 지나갑니다.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침대에 맡기면 어느새 잠듭니다.
코로나 19가 터지고 저는 일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유일하게 하는 거라곤 한 업체의 바이럴 업무 외에는 없습니다. 나머지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그 외에는 프로젝트와 외주를 따내기 위해 PR 하기 바쁩니다. 간간히 작품을 다시 쓰고 있고, 예전 거래처들과 소소한 농담을 하면서 영업을 하기도 합니다. 하루가 흘러가긴 하지만 소득은 없습니다.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다 차려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고양이 똥을 치우고, 여러 번 쓸고 닦아도 허전한 마음을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마 오늘 하루도 제대로 벌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일 겁니다.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단 한 가지 유일하게 지키는 건 '남에게 기대지 말자'였습니다. 혼자 생활하는데 드는 돈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숨만 쉬면 나가는 게 돈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 싶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밥을 얻어 먹기가, 커피 한잔 얻어먹는 게 자괴감으로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어떤 달은 크게 벌기도 하고, 어떤 달은 쪼그라들 때마다 아등바등 개미처럼 잔고를 채우기 시작했죠. 그 덕에 남들에게 밥 한 번씩은 턱 하고 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다시 저는 또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전락하는 거 같아서 말이죠. 책임보다 더 무서운 게 스스로에게 드는 죄책감이라니. 다달이 나가는 이자 보다 더 무서운 채무였습니다. 봄 이후부터는 거의 잔고가 항상 아슬아슬한 위기에 자주 처했습니다. 사정을 잘 아는 친구들은 괜찮다면서, 그동안 네가 잘해줬으니 우리가 살 수 있다며 먼저 카드를 내밀었지만 제 스스로가 허락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든든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제 욕심이 자꾸 먼저 떠올랐거든요. 결국엔 한 친구 앞에서는 맥주를 먹다가 울기도 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솟구칠 때마다 잠도 안 자고 여기저기 제안서를 돌려야겠다 싶었습니다. 초저녁에 두어 시간 자고 다시 새벽을 달리는 식으로 몇 달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통장이 가난한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마음이 가난해지는 일이었습니다. 조금의 숨도 돌리지 않고 여기저기 가쁘게 달렸는데도 제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몸만 더 아팠죠. 생각해보면 발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결된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좀처럼 풀리지 않던 미팅을 하고 돌아오던 길, 우연히 대파가 세일하는 걸 봤습니다. 그 옆에 마늘도, 당근도, 양파도 전부다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더라고요. 홀린 듯이 야채들을 잔뜩 담았습니다. 집에 가서 볶음밥을 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장을 봤습니다. 맛있게 볶음밥을 해 먹고 나니 손질하지 않은 나머지 야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야채를 보고 있자니 꼭 제 마음 같았습니다.
다 먹고살자고 했던 일들인데 왜 내 일만 이렇게 흙투성이인지. 언제쯤 상황이 나아질지, 가늠할 수 없겠더라고요. 가장 좋아해서 선택했던 글 쓰는 일이 이렇게 생계까지 망칠 수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나니 눈물이 퐁퐁 솟구쳤습니다. 밥 먹다 말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울면서 먹었습니다.
꾹꾹 부은 눈을 누르고 앞치마를 둘러맸습니다. 그리고 야채들을 하나씩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용도에 적당하게 쓰일지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칼질을 했죠. 사각사각 탕탕, 사가가 각 탕탕 소리가 조용히 작은 원룸에 퍼졌습니다. 울컥 올라올 거 같던 눈물도 칼질을 하는데 집중하니 쑤욱 내려가더라고요. 다듬고, 썰고, 깎고.. 여러 차례 반복하고 나니 먹기 좋은 크기가 되었습니다.
통에 하나씩 넣어 분리를 해두고 나니 어느새 새벽이더라고요. 그렇게 끝날 거 같지 않던 하루가 고작 야채를 좀 다듬었다고 훌쩍 가있었습니다. 개운하지 않던 마음이 이제야 한시름 덜었다는 듯이 웃고 있었고요.
어제 저는 마늘을 깠습니다. 한 망 정도를 사서 저녁 늦게부터 깠습니다.
마늘 한 개에 들어있는 알의 개수는 아 가늠할 수 없습니다. 8개 구나 싶어서 열어보면 9개, 10개씩 속 안에 작은놈들도 스멀스멀 나오거든요. 잡았다-! 요놈! 하는 마음으로 깔끔하게 다 깎아줍니다. 손질은 한번 한다고 되는 놈들이 아닙니다. 여러 차례 껍질을 건드려야지 뽀얀 마늘 속살을 볼 수 있거든요. 그때 그 희열감!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프리랜서의 삶의 방향도 마늘 까기 일지도 모릅니다. 깠는데 9개 일수도 있고, 10개 일수도 있는 거. 혹은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고, 썩은 것일 수도 있는 거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고 또 까다보면 수북하게 쌓여있는 마늘을 볼 수 있습니다. 꽉 차고 실한 놈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요.
항상 늘 일이 풀리지 않으면 저는 무언갈 더 하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풀리지 않는 일을 풀기 위해서 다쳐가면서 하기도 했죠. 하지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에 항상 목숨까지 내놓을 순 없다는 걸 알았죠. 때론 풀릴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다른 방법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해결되기도 한다는 걸 요즘 들어 놓쳤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마늘을 깝니다. 수북하게 쌓일 마늘을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오늘도 내가 먹기 위한 마늘을 이렇게도 두둑하게 쌓았구나 싶으면 죄책감은 조금 가라앉습니다. 적어도 마늘을 깐 나 자신에게 "오늘 참 잘했다, 마늘도 까고 말이야!" 하면서 칭찬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여러 번 칭찬하고 나면 내일은 꼭 풀릴 수 있는 일이 하나정돈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