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아남기
결국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게 삶의 숙제라고 여겼기에 그만두겠다는 말이 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레 인사팀에 문의해 퇴사 양식을 물었습니다. 계약기간은 3개월, 하지만 저는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에 그만두겠다고 사직 의사를 밝혔습니다. 상주하는 회사에서 빼야 할 짐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제 자리는 없었으니 나갈 때도 없는 게 당연합니다.
"이번 달 말로 퇴사하겠습니다. 사유는 일신상의 사유로 퇴사를 원하는 걸로 할게요"
이 시국에 어딜 가냐는 말도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구한 상주 회사였기에 고정 수입에 대한 두려움은 퇴사 서류를 내자마자 쫓아왔습니다. 소위 말하는 현타였겠죠. 꾸역꾸역 계약기간을 어떻게든 채워서 나오는 게 저였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제 일에 제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저는 상주 회사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찾아온 사람들은 참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저지만 마냥 반갑진 않았습니다. 이 시국에 일만 주면 감지덕지 한 거겠지만, 역병이라고 표현할 만큼 저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르바이트식으로 여러 회사에 출퇴근을 했지만 하나같이 3개월이 한계였습니다. 그래도 이곳은 낫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들어왔는데, 역시나 여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데 갈만한 데는 있어요?"
"아뇨, 이제 찾아야죠"
"그래도.. 같이 일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한번 더 고려해달라는 말은 부담스럽겠죠?"
하하, 머쓱하게 웃었습니다. 이번에 자리를 벗어난 이유는 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협업을 중심으로 이루는 프리랜서에게 사람은 핵심입니다. 일이 설령 어렵다고 한들 같이 작업을 하는 파트너가 괜찮다면 그깟 일 따위 해버리지 뭐 어때? 가 되어버립니다. 그만큼 프리랜서에게 사람은 아주 큰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번 협업은 최악 중의 가장 최악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1년이 안된 주니어 연차였던 파트너는 일에 대한 욕심은 많았지만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초반에 작업 진전이 더뎌서 어느 정도는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시간 때우기에만 나섰습니다. 가끔 서류를 정리하고, 핵심 포인트만 짚어서 해야 할 일을 같이 정하자고 꼬시기도 했죠. 그러나 지체되는 사이트 오픈일, 이유 없이 늘어나는 쓸데없는 서류들, 안일한 판단력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오히려 서비스를 망치는 길로 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참지 못하고 그만두겠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사람 힘 빠지게 했습니다.
제 한마디, 한마디가 주니어에게는 버거웠을 겁니다. 과한 오지랖이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일은 일입니다. 모두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있던 짬밥도 다 끌어모아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되레 주니어는 저보고 "제 일을 뺏어가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결국 협업이 불가하다 판단되어서 조용히 주니어를 불러다가 그만둘 예정이라고 통보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만두실 줄 알았어요. 입사는 저보다 늦으시잖아요. 적극적인 건 괜찮은데, 경력이 아무리 있어도 입사한 지 5주밖에 안되었으면.. 5주처럼 일하세요."
저는 그렇게 누군가의 일을 뺏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허망했습니다. 내 모든 경험치가 순식간에 부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짧게 짧게 일한 게 이런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경우가 처음이라서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얼굴에 경련이 올 정도로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숨을 간신히 고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할 땐 좀 들어요.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최선이자 마지막 얘기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와 주니어는 사내에서 말 한마디를 나누지 않습니다. 유치하다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저는 정말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는 입장이니까요. 정직원인 주니어와 서포트의 개념으로 들어간 프리랜서인 저는 알게 모르게 이미 벽이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어쩌면 같잖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프리랜서여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6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저는 프리랜서를 선택한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조직에서의 삶은 목을 죄듯이 힘들었고, 상명하복이 뚜렷한 곳일수록 일을 더 사랑할 수 없는 분위기가 지쳤거든요. 회사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상 이 세계에서 악착같이 버텼습니다. 더한 욕을 먹고, 모욕적인 처사를 당해도 그건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명예도, 자존심도 없으니까요. 그저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과 하는 일이라면 그거 하나만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거든요.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한 글자 한 글자가 누군가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는 것. 딱 그 정도면 프리랜서든, 경력직이든.. 타이틀이 뭐가 붙든 상관없었습니다.
어쩌면 9개월 주니어에게 저는 '경력 같은 경력 같지 않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을 테죠. 자신이 검증한 사람이 최고의 사람이라고 여기는 시절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으니까요. 저 역시 경력 같지 않은 경력자들의 처세술에 한숨을 쉬곤 했으니까요. 그때 욕을 많이 해서 그랬던 걸까요. 저는 주니어에게 된통 당했습니다.
꼰대 같았을 수도 있습니다. 흙구덩이 빠지지 않게 해 주려는 제 노력과 열정이 자신의 일을 뺏어가는 행동처럼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입을 다문 순간 생각했습니다. 거리 유지를 못한 건 어쩌면 나 일지도 모르겠다고요. 자신만의 세상이 전부였던 제 주니어 시절을 떠올렸거든요. 이제 막 직업과 연애를 시작했던 신입과 전쟁 같은 결혼의 삶을 보내고 있는 저와는 다른 게 당연했죠.
간절하지 않다고,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고 나무랄 순 없었습니다. 열정이 없을 수도.. 있죠. 그래도, 정말 그래도 서비스를 애절하게 사랑하지 않는 태도는 저를 너무 실망시켰습니다. 누군가는 고작 이런거 때문에 일을 그만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일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는 분과는 작업을 맞추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말들이 주니어에게는 버거웠을 뿐이겠죠. 제게 내려진 처사는 꼰대라는 타이틀과 어차피 프리랜서 일뿐 이라는 꼬리표뿐이었습니다.
제 퇴사 소식에 지인들과 함께 일했던 분들은 놀랐습니다. 어떻게든 망하더라도 완주는 하는 성격인지라 이런 선택이 놀랐던 거죠. 사실 이들만 놀란 게 아니라 회사 내 경력직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긴 면담시간이 이어지고, 선임에 가까운 경력을 지닌 분들은 제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셨습니다. 꼰대스러운 말도, 질책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고요한 사무실 사이로 제 얘기만 가득 찼습니다. 이렇게 말해서 뭐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조직은 남은 자의 편을 들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묵묵히 제 이야기를 듣던 선임분들은 이번 일과 상관없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상은님, 절대 뒤돌아보지 마요”
“그냥 앞만 보고 가요, 이건 그냥 사고였을 뿐이니까.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극복해요”
뒤돌아 보지 말 것. 그냥 앞만 보고 잘 걷고, 또 이런 일을 겪는다면 기꺼이 이겨내길 바란다는 말은 저를 울렸습니다. 비단 모두가 역병 같던 사람들은 아니었나 봅니다.
예방주사는 아픕니다. 그래도 맞는 이유는 덜 아프기 위해서라고 하잖아요. 숱하게 만난 사람들한테서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역병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끙끙 앓다 결국 도망을 치는 걸 선택했습니다. 비겁해도, 제 마음이 너무 소중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음 주 퇴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다음엔 완치를 꿈꾸며 달리기 위해 이번 역병도 예방주사와 같은 존재라고 여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