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그래도 살아가는 방식
20대의 기억을 돌이켜볼 때,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대학 시절, 왜 그리 할 일이 많았는지. 학교에서 밤늦도록 과제를 붙들다 막차를 타서 귀가하고, 몇 시간 뒤 다시 시험을 위해 쌀쌀한 새벽 공기를 뚫고 첫차에 몸을 실었던 기억. 수면 부족으로 둔해진 몸을 겨우 좌석에 앉히고 나면, 그제야 사람들이 날 선 표정을 지으며 함께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눈을 비비며 시험 범위를 요약한 쪽지를 외우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껴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녘.
버스 차창 위로 유독 피곤해 보이는 나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다.
버스의 속도에 따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과, 그 위에 덧씌워진 내 얼굴. 나는 그 기묘한 중첩을 빤히 바라보다가, 학교에 도착하기 전까지 반드시 외워야 한다고 믿었던 쪽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창밖의 세상과 그곳에 투영된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되뇌었다.
'이렇게 버티는 게 맞아.'
그때의 나는 그런 삶의 방식만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나는 이 치열한 일상에 영원히 갇혀 지낼 수 있을 것처럼 굴었다.
그렇게 무식하게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이 고단함도 과거의 풍경처럼 지나가 버릴 거라고 믿으면서.
20대의 세월은, 돌이켜보면 '젊음'이라는 무한 동력에 기대어 살았던 것 같다.
조금 적게 자도 괜찮고, 온 신경과 마음을 다 써버려도 금방 채워질 거라는 믿음 속에 살았다. 그런 허술한 믿음 아래, 아끼기보다 소모하는 법에 더 익숙해졌다. 다만, 소모하는 중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지.
하지만 영원한 건 없듯, 20대의 모든 순간들을 떠나보낸 30대의 문턱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무한 동력이라고 믿었던 젊음은, 어쩌면 끝이 보이는 아주 유한한 동력이라는 것.
30대가 되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온몸에서 신호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잠을 자도 푹 잔 것 같지가 않고, 밥을 한 끼라도 굶으면 움직일 힘이 없었다. 겨우 서른이 되자마자 이런 말을 꺼내는 내가 웃기지만서도, 한편으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몸소 느끼는 중이다.
내 몸은 그저 빠른 속도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기름을 치고 닦아줘야 겨우 굴러가는 것이었다. 하루씩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닌, 평생을 함께 살아가며 때때로 고쳐 쓰고 보듬어야 할 존재였다.
즉,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갈아 넣는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지켜내는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이렇게 버티기만 해서는 내가 부서져버려.'
'아끼고, 또 아껴서 사랑해줘야 해.'
더 이상 젊음이라는 관성에 의존하며 나를 혹사하지 않고 싶다. 대단한 변신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버리는 내 몸과 마음에 더 이상 내가 만든 흉이 생기지 않도록, 기꺼이 사랑해주고 싶다.
그 마음은 일상의 아주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냈다.
커피보다도 따뜻한 차를 마시려 노력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가려고 애쓰며,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건강한 한 끼를 챙기고,
스트레스가 차오르면 잠시 산책을 하며 환기하고,
날씨에 맞는 옷을 신경 써서 골라 입으며 하늘을 보는 여유를 허락했다.
이런 소소한 변화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대단한 성과를 주진 않는다. 하지만 이 반복되는 다정함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덜 지치고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오늘의 내가 될지도 모른다.
나를 가꾼다는 것.
그것은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귀하게 여기겠다는 정중한 예우였다.
그리고 폭풍 같은 세상 속에서도, 내가 부서지지 않도록 감싸 안으며 귓가에 속삭여주는 것.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고,
이제는 내가 너를 아껴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