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episode 4.

by 상희

학부 때의 일이었다. 기초 심리학 수업을 강의하시던 교수님은 학생들이 따분해하는 분위기를 읽으셨는지, 간단한 애착 유형 테스트를 준비했다고 말씀하셨다.


"'애착'은 관계에서 반복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애착 유형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건 중요해요. 몇 문항만 뽑은 간단한 테스트를 가져왔으니 5분 정도 해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재밌겠다는 생각에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마찬가지로 따분해하고 있던 나도 그제야 화면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교수님은 문항을 띄워주셨다. 그 문항들을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며 차분히 응답해 나갔다.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많이 걱정하는 편이다'

'상대방이 막 나와 친해지려고 할 때 꺼려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편안하지 못하다'


문항들이 나를 깊이 찌르는 듯했다. 어쩐지 불편한 마음으로 '대체로 그렇다'에 체크했다. 생각보다 관계를 불편해했나 싶은 마음이 자꾸 들었다. 모든 문항에 체크하고 점수를 합산했을 때, 드디어 내 검사 결과가 나타났다.


'회피형 애착 유형'


나의 애착 유형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여러분의 애착 유형은 무엇인가요?

http://typer.kr/test/ecr/


애착 유형이 상담과 만날 때


애착 유형은 이제 너무나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의 애착 유형이 '안정형'인지, '불안형'인지, '회피형'인지, 혹은 '혼란형'인지를 명명하고, 때론 '불안형' 애착과 '회피형' 애착 간의 연애방식 차이를 논할 정도로 준전문가가 되었다.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가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며 썰을 풀어놓았다.


"세상에, 그렇게 내가 말을 걸고 다가갔는데 어색하게 웃더니 피하는 거 있지?"


자신을 '불안형' 애착이라고 명명한 친구는 썸을 타고 있는 타칭 '회피형' 사람의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이없어! 자기가 그렇게 거리를 벌려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내 말이."


간단하게 동조하며 친구의 기분을 살폈다. 그리고 한편으론, 마음속으로 뒷 말을 이었다.


'내가 상담에서 하고 있는 게 딱 그 모습인 것 같다.'


직업이 상담자였기에, 회피형 애착 유형은 종종 알게 모르게 내 발목을 잡았다. 내담자가 상담 시작 전, 편안하게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거나 나를 알아가기 위해 간단한 질문을 건네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그래요, 자 이제 상담을 시작합시다'하고 선을 그었다. 그러한 나의 모습이 내담자에게 벽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야, 더 넘어오지는 마'. 아직 충분히 가까워지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밀어낸다.

상담을 하는 동안 마음속에서 여러 질문들이 떠오르며 위험신호를 준다.


내담자가 너무 가깝게 다가온 거 아닌가?

나에 대해 너무 궁금해하는 게 아닌가?

너무 많은 감정들을 쏟아내고 있진 않나?


내담자가 한 걸음 다가오면 한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상담자는 투명하게 내담자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조언을 방패 삼아, 이건 너무 가까워서 내담자를 비출 수 없다고 타당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우린 상담을 하기 위해 만난 거야'. 틀린 말은 전혀 아니지만, 나는 이 말을 곱씹으며 상담에서 필요한 정도보다 더 한 걸음 내담자로부터 떨어졌던 것 같다.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심적으로 편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상담자와 내담자에게 필요한 거리가 아닌, '나'에게 필요한 거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무엇을 불편해하고 있는 걸까?


"난 상담자지만, 내담자가 너무 가까이 다가올까 봐 두렵나 봐."

"내담자는 언젠가... 상담을 종결해서 나를 떠나가니까, 내 경계를 굳건히 유지하려고 노력했나 봐."


떠나감은 늘 익숙지 않다. 어쩌면 내게 '가까워짐'은 '떠나감'에 대한 예측일 지도 모르겠다.

이번 오답노트는 다음과 같다.


또 다가오기도 전에 밀어내는 건 아닌지..?
나에게 필요한 거리가 아닌, 내담자에게 필요한 거리를 마련하자.


상담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나'는 타인이 너무 가까워질 때 편안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모습을 모든 내담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순 없다. 왜냐하면 상담자는 내담자의 곁에 서서,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해나가는 존재가 되어야 하므로.


떠나갈 것이 두려워 미리 밀어내는 것이 아닌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지만 내담자가 필요로 할 때 곁에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한 걸음 다가가면, 똑같이 다가갈 수 있고

한 걸음 멀어지면, 그 거리 속에서 내담자가 편해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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