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수업에 집중하는 게 어려워요."
내담자는 이와 같은 말로 서두를 던졌다. 아주 조심스럽고, 긴장되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어떤 의미가 담긴 지 알 수 없었지만, 나 역시 내담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조금 침묵하던 내담자는 자신의 말에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했는지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래도 학기 초에는 열심히 해보려고 했어요.."
그리곤 다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자, 다시 재빨리 말을 잇는다.
"학기 초반엔 목표도 세워보고, 수업 때도 열심히 집중해보려고 했는데요.. 점차 집중하는 게 어려워지더라고요. 교수님 말씀도 잘 귀에 안 들어오고.. 또, 과제 마감일도 자꾸 잊어버려서 지금... 제출을 못한 과제가 꽤 돼요."
그 말을 듣자, 나는 내담자의 이번 학업 성적이 심히 걱정되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어 더 그런 걱정이 먼저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저번 학기에 학사경고도 받았다고 했었죠?"
그 말에 내담자는 흠칫 놀란다. 그리곤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 모습에 내심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 네, 맞아요. 그래서 이번 학기는 다르게 보내보려고 학기 초에 상담도 신청하고 그랬던 거예요. 잘 보내보고 싶어요."
내담자는 의욕 넘치게 학기 초에 여러 목표를 세우고 상담도 절박한 마음으로 신청했다. 그리고 상담 배정이 된 현재, 어쩐지 눈앞에 있는 내담자는 의기소침해졌고 상담자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내담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어려움을 해결해 보고자 상담을 신청한 것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내담자를 북돋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직 중간고사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해야 할 일들을 상담에서 같이 우선순위를 정해봐요. 차근차근해나가면 되니까요."
나의 말에 내담자는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 역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좋아요... 그런데 선생님.."
그리고 흐르는 침묵에 긴장감이 감돈다.
"... 선생님은 이런 고민 안 해보셨겠죠..?"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본다
어느 순간부터 내담자가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지 않는 내담자를 걱정했다가, 이후엔 점차 불안해져 갔다. 무언 갈 내가 잘못 건드린 걸까? 이제 곧 시험기간인데, 과제를 자꾸 미루는 내담자는 이번 학기를 잘 보낼 수 있을까? 내담자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통화 연결음만 들릴 뿐이었다. 결국엔 이 내담자와의 상담을 종결로 처리해야 했고, 이렇게 상담이 끝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슈퍼바이저를 찾아가게 되었다.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듣던 슈퍼바이저는 어느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선생님은 전교 1등인데, 전교 꼴등 내담자를 상담하는 느낌이네."
그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호기심 어린 내 표정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시간 칼같이 지키죠?"
"네, 상담 시간은 잘 지켜야 좋은 거 아녜요?"
"잘 지키면 좋죠. 그런데 그런 모습이 내담자랑 너무 비교되어서 문제인 거죠."
슈퍼바이저의 말은 아리송했다. 상담자의 모습과 내담자의 모습이 비교되는 점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걸까?
"내담자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상당수의 과제를 제출하지 못했잖아요. 하지만 선생님은 상담 시간도 칼같이 지키고, 지각한 적도 없고요. 오히려 너무 잘 지키는 모습이 내담자에게도 느껴졌을 거예요.
사실 자신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은, 아무리 전문가인 상담자에게 얘기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수치심을 불러일으켜요. 내가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남에게 얘기하는 자리인 거잖아요. 그런데 시간도 잘 지키고 올곧아 보이는, 예컨대 전교 1등 같은 상담자 앞에서 '내가 전교 꼴등이라 학교 생활이 어렵다'는 걸 어떻게 마음 편하게 털어놓겠어요?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날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겠죠.
상담자는 약속을 지키고, 내담자는 상담에서도 지각을 하며 '내가 또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수치스러워하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노쇼로 상담이 종결된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 상담 도중 내담자가 나를 바라보았던 시선들이 이해가 되었다. 망설이며 입을 여는 자신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상담자. 내담자는 상담자의 시선에 의기소침해지면서, 자신은 역시 부족하고 잘못된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상담 과정은 천천히 진전되어 가더라도 그 변화를 인식하기도 전에 자신의 어려움에 확신을 얻어버린다. 이를 깨닫자 내담자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선생님, 알겠죠? 상담에서 원칙들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담자의 시야에서 상담 장면이 어떻게 보일 지도 잘 고려해야 해요."
슈퍼바이저의 말을 되새기면서, 이번 상담을 통해 느낀 점을 돌이켜보았다.
이번 오답노트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타인과 비교하며, 때론 자신의 부족한 점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하자.
내담자가 경험했던 것은 상담자인 나 역시 경험했던 부분이었다.
저번 episode 2. 에서 털어놓았던 것처럼 나의 경우엔 나이와 부족한 전문성이었다. 나이가 있고 어른스러운 내담자를 만나게 될 때, 자연스럽게 내 나이와 짧은 경력을 곱씹게 된다. 그리곤 '내가 역시 부족한가?'라는 생각에 빠져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나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수치심은 필수적이지만, 변화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불안해하는 내담자의 시선을 이해하고, 수치심을 다루며,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이 상담이 수치심으로만 남는 게 아닌, 정말 내가 부끄럽게 느끼는 지점을 안전하게 나눠갈 수 있도록.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시선에서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엔, 나의 부족한 점이 거울처럼 비친다.
'내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내 이런 모습이 받아들여지긴 할까?'
여러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어떤 부분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부분은 얼마나 크고, 어둡고, 무거워져서 내가 실제 봐야 할 부분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