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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과장 Oct 16. 2024

그녀는 not 테린이? - 6화

"오늘 여기 오기로 하셨으면 좀 알려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


"흠. 저도 오늘 여기 올 줄 몰랐어요. 어제까지 바빴거든요. 누가 금요일 늦은 저녁에 메일을 보내는 바람에 그거 검토하고 수정하느라 어제 집에서 거의 일했단 말이죠. "


"죄. 죄송해요. 처음 해보는 거라 좀 늦었어요 대리님. "


너무나도 상투적인 나의 답변에 기분이 안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얼굴이 크게 화나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얼굴은 살짝 웃고 있는게 아닌가? 냉미녀이신줄 알았는데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을 못 알아본 건 갑자기 나타나서도 아니였다. 테니스 운동복에 모자를 쓰고 오니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어려 보이는.


"아니에요. 다른 분들은 어제 작업물 보낸 사람도 있어요. 그것 때매 저녁까지 일해야 했지만. "


"아니 근데 어떻게 진짜 오신거에요? "


"여기 호스트가 저 잘 아는 사람이에요. 갑자기 여자 한 분이 갑자기 앞의 타임만 시간이 안 된다고 해서 땜빵으로 와달라고 해가지고, 뭐 그렇게 해서 왔죠. "


"아 그러시군요. 저는 클럽에서만 쳐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랑 게임 해보는게 처음이라 아는 사람 만날 줄은 몰랐어요. "


"네? 클럽이요? 흠... 뭐 알겠어요. 있다가 같이 페어로 쳐요. "


저 표정은 뭐지. 너 그 실력으로 어떻게 클럽에 들어갔냐. 뭐 그런건가. 사실 그렇게 생각해도 할 말은 없다. 아직 같은 구력인 사람들보다도 평균 아니 평균 이하의 실력일 거 같으니까.


"저기... 준경아. 저 분은 누구시냐? 너랑 잘 아시는 거 같던데. "


"아 왜 지난번에 회식 때 회사에서 갑자기 긴급 메일 와서 TF에 가라는 메일 왔잖아요. "


"그래 그 진아가 TF면 테니스 화이팅 아니냐 그래서 빵 터진 그 메일. "


"그 TF에서 중책을 맡고 계시고 저에게 일을 주시는 분입니다. "


"이야. 잘 해야겠네. 있다가 혼복할 때 너 실수해서 게임 지면, 일 더 많이 주는 거 아니야? "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불가능한 시나리오만은 아닌거 같은데. 그냥 아프다고 하고 나가고 싶었다.


"형 저 여기서 몸이 안 좋아서 집에 간다고 하면 너무 티나겠죠? "


"준경아. 여기 얼마짜리 코트인데 집을 가. 아파도 여기서 테니스 치다 쓰러져. 쓰러지면 내가 119 불러줄께. 가긴 어딜 가. "


이 형도 정상이 아닌건 확실하다. 그 때 호스트가 우리를 다시 불렀다.


"이번엔 혼복 들어가실 께요. 준경님이랑 희성이 들어가고, 태준이랑 희윤이. 이렇게 네 분 들어가실께요. 페어는 아까 보니 준경님 희성이 아시는 거 같은데 두 분이 페어 하시구요. 태준이랑 희윤이 이렇게 페어해서 퀵하게 빨리 진행하시죠."


제발 나 먼저 서브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걸어가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브는 제가 먼저 넣을테니 긴장하지 마세요. 아까 보니까 더블 많던데. 지금은 대회도 아니고 그냥 게임하는 거니 여자쪽에서 서브 먼저 넣어도 괜찮을 거에요. "


"감사합니다. 대리님. "


"여기는 회사는 아니니 대리님이라곤 하지 마시고 그냥 희성님이라 불러주세요. "


"네 희성님 잘 부탁 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 라는 인사와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다. 재현이 형이 말해줬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서브 넣을 때 그냥 공만 올려서 상대방에게 이제 서브를 넣겠다라는 제스처를 취한 후 하면 그냥 서브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기 첫 서브게임때 상대방에게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문화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이거 안 하면 클럽에서 혼난다고. 설마 그럴까 했지만 지난 번에 옆에 클럽에서 정말 그거가지고 싸운 걸 보고난 후 꼬박꼬박 인사하고 있는데 여기도 똑같이 인사하는 걸 보니 테니스 동호인 문화는 어딜가도 똑같구나 생각에 신기했다.


"펑! "


"와우. 굿 서브. 역시 희성. "


"피럽이요. "


내 귀를 스치고 간 그 서브는 내가 알던 클럽 여자 멤버의 서브가 아니었다. 보통 여자 동호인들은 남자들보다 근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핀이 들어가도 포물선이 크거나, 아니면 밑으로 깔려서 들어오는 서브가 많은데, 이 서브는 유튜브에서나 보던 그런 멋진 서브였다.


"자 빨리 네트에 붙어요. 다음 서브 해야하니까. "


첫번째 게임은 서브 4개로 쉽게 게임이 끝나버렸다.


'와 이렇게 쉽게 게임이 끝나네. 희성 대리님 대박이다. 어렸을 때 배운 거 같은데. 이번 게임은 버스탈 수 있겠다. '


하지만 상대팀의 여자분도 희성 대리님 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한 실력자였고, 역시 상대 남자도 거의 재민이 급이어서 결국 내가 그 게임의 구멍이 되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 편으로, 희성님으로부터 지속적인 잔소리, 아니 피드백이 들어왔다.


"뭐 해요. 적극적으로 포칭 나가야죠. ", "자리. 자리. 자리 지켜요 . ", "뒤로. 뒤로. 같이 수비. ", "앞으로 가야 해. 들어가요. "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재현이 형이랑 게임할 때는 그냥 한 명은 앞에서 발리만 하고 한 명은 뒤에서 받아면 쳤는데 이 분은 원하시는게 많았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다시 원래 자리로.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가이드를 받은 덕택에, 5:5로 무승부로 첫번째 혼복 게임은 끝이났다.


"아. 이번에 희성이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쉽네. 역시 쉽지 않아. "


"운이 좋았어. 너네가 노애드에서 자멸해서 겨우 5:5 비긴 거야. "


"준경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두 분 합이 잘 맞으시는 거 같아요.  "


"아닙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


테니스 게임이 끝나고 앞에서 나누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무 정석적으로 치시는 거 같아요. 왜 다운더 라인은 공략하지 않으세요? "


아 이놈의 다운더라인. 클럽에서는 재현이 형이랑 나한테 다운더 라인을 치지말라고 하고 이 분은 왜 다운더 라인을 치라고 하는 거지?


"다운더 라인에 트라우마가 있어서요. 얼마전에 테린이 대회 나갔다가 그 마지막 포인트를 다운더라인으로 아웃을 시켜버려서 우리팀이 졌어요. "


"아 준경님이요? "


"아니요. 저 형이요. "


거기엔 다음 남복 게임에서 다운더라인으로 이미 공을 빵빵 치고 있는 재현이 형이 있었다.


"저 분은 다운더라인 아웃되도 열심히 치시는데요. "


"그러니까요. 그 때 저 형이 저렇게만 안 쳤어도 예탈안하고 본선 가는거였는데. 저 형이 저렇게 치는 거 보고 나라도 조심해야지 하다보니 소극적으로 치는 거 같아요. "


"아. 그렇구나. 아 참, 저희 조만간에 정식으로 킥오프 미팅 있는 거 아세요? "


"아 네. 들었습니다. 근데 제가 뭐 특별히 해야하는게 있을까요? "


"없어요. 제가 거의 다 핸들링 하니 그날은 TF에 풀타임이던 파트타임이던 속한 사람들이 다 와서 얼굴 익히는 거니까. 끝나고 회식만 하고 가면 되요. 그럼 회식 때 봐요. 난 땜빵이라 곧 원래 오기로 했던 사람 올 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회식 때 뵙겠습니다. "


그렇게 인사를 주고 받자마자 재현이 형이 자리로 돌아왔다.


"저 여자 고수분 벌써 가신대? 나도 게임해보고 싶었는데. "


"형 벌써 끝났어요? "


"어 그렇게 되었네. 다들 잘 치네. 근데. "


"근데요? 뭐라고 해요? "


"다들 매너가 너무 좋네. "


'네??? '


"왜 우리 클럽에서 치다가 기본적인 거 실수하면, 그 뒤에서 날라오는 눈빛 있잖아. 그러다 실수 2번 정도 하면 한숨 소리 나오고. "


맞는 말이다. 테린이들에게 문이 열려있는 우리 클럽이긴 하지만 여전히 잘 치는 사람중에 어떤 사람들은 눈총아닌 눈총을 주기 마련이다.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멘탈이 센 사람이 아닌 이상 자기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원래 하지 못하는 플레이도 못하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 재현이 형와 나이다. 재민이 놈은 아니지만.


"여기는 너무 따뜻하게 말해주네. 그럴 수 있다고. 아 괜찮다고. 그래도 실수가 또 나왔거든. 그러면 이제 얼굴이 싸하게 바뀔 줄 알았는데 아니야. 웃으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람들이랑 치면 그렇다고. 편하게 치라고. 그래서 나 다운더라인도 2개나 들어갔어. "


"그렇다고 하기엔 빨리 끝난 거 같은데요. "


"아 나 빼고 저 사람들 다 테린이 대회 기본 8강에 4강 가고 그래서. 내가 있는 쪽이 안 맞으니 금방 끝나겠지. 나쁘진 않더라. 맞춰주진 않고 진심으로 치니까 져도 크게 기분이 나쁘지 않아. 여기 좋네. 우리 이 쪽으로 옮길까? "


"형 우리는 들어가고 싶지만 우리를 받아줄까요? 우리도 코치님이 넣어줘서 겨우 받아준 건데. "


"하긴 그렇긴 하다. 여기도 보니까 테스트 하면서 받는 거 같긴 하더라. "


우리끼리 이야기 나눌 때, 아까 상대편 페어로 있던 여자분이 다가왔다. 저 분 이름이 희성 대리님이랑 비슷했던 거 같던데. 그런데 이 분 가까이서 보니 입고 있는 옷들과 손목과 무릎에 한 보호대, 신발 등 예사롭지 않았다. 재현이 형 바로 알아봤는 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준경아. 저 분 라켓 커스텀 에디션인거 같은데. 무릎보호대도 그거네. 제일 좋은 거. 장비에 진심인가 봐. "


"안녕하세요 두 분. 저는 바이브 클럽의 총무를 맡고 있는 성희윤 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희 클럽 게스트로 와주셔서 고마워요. "


"아닙니다. 저희도 오늘 덕분에 좋은 공 많이 받아보고 배우는 거 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


오 재현이 형. 이렇게 의젓하게 말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 클럽 회식 때도 이렇게 말하면 좋잖아요. 형처럼 딱 중심잡고 계속 말해줘요.


"두 분은 클럽 있으세요? 아니면 그냥 앱으로 매칭하시면서 치시나요? "


"저희는 파이썬 클럽이라고 있는데 거기 있어요. 서울 쪽은 아니구요. "


"어 거기 혹시 진아 있는데 아니에요? "


"네 맞아요. 진아 아세요? "


"네 진아가 저희 클럽 게스트로도 많이 왔었고, 나이도 비슷해서 친해요. 그리고 저한테도 대회 나가자고 하면서 요즘 놀러 자주와요. "


이상하네. 진아는 수진이랑 페어일텐데. 진아 누나가 수진이 배신하는 건가? 그럴 사람은 아닌거 같은데. 나보다 이런데 눈치가 더 빠꼼한 재현이 형이 역시나 빠르게 물어봤다. 


"어. 진아는 페어가 있는데, 페어 바꾼다는 이야기는 회식 때도 못 들은거 같은데 신기하네요. "


"아. 저는 테린이 대회 얼마전에 우승해서 이제 테린이 대회는 못 나가요. 그리고 진아도 테린이 대회도 좋지만 더 빡센대 나가보고 싶어해서 전국대회를 같이 나가보자고 하는 거에요. 개나리로. "


전국대회라니. 나는 시에서 주관하는 테린이 대회에 본선도 못 가서 설움을 받는데, 이 분은 테린이 대회를 벌써 우승하고 그 다음 레벨을 노리다니. 갑자기 내가 초라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요즘 진아 누나가 부쩍 실력이 늘었던 이유가 이게 아닐까 하다. 잘치는 사람하고 편하게 치니까.


"와. 전국대회라니. 여기 남자 분들도 엄청 잘 치시던데 전국대회 그 분들도 나가시는 건가요? "


"아니에요. 아직 여기 오빠들은 테린이 대회 먼저 입상하고 전국대회 나갈려고 하는데. 쉽지는 않네요. "


"왜요? 금방 입상할 수 있을 거 같은데. "


"다들 직장인들이라 저녁 시간 밖에 운동을 못하는데, 아시다시피 저녁 시간에 코트 예약하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파이썬는 연대관이라 코트 예약 그런거 모를텐데, 저희같은 테린이 클럽은 협회 등록해도 아직 연대관 코트를 못 받아서 이런 비싼 사설코트 밖에 못 잡아요. 이것도 잡는데 진짜 어려워요. 매크로랑도 싸워야 하고. "


불현듯 처음에 날 클럽에 넣어줄 때 코치님이 얘기해준게 기억났다.


'준경아.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해. 평일 저녁에 이렇게 코트 많이 가지고 있는 클럽 많지 않다. 그런데 그 클럽이 너같은 테린이도 받아준다. 이야. 진짜 너 고마워해야해. '


코치님 말이 사실이었네. 이렇게 잘 치는 사람들도 클럽에 못 들어갔는데 나는 왜 클럽에서 받아준거지 진짜 이유를 모르겠네.


"파이썬는 요즘 회원 수 많나요? 회원들 좀 나갔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파이썬는 가지고 있는 면수가 많잖아요. "


"아 그런가요? 저희는 그런거 잘 모르는 초짜들이라 하하. "


"맞아요. 저희는 가서 인사하면 형들이 저기 들어가서 게임해 하면 게임하고 이번엔 저기 들어가 하면 저기 들어가는 그런 애들이에요. "


형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저희가 왠지 슬퍼보이네요. 더 열심히 칩시다.


"그렇군요. 저희는 테린이 클럽이라 연대관 코트가 없어요. 에휴. 파이썬는 코트가 많으니 곧 테린이 입상자가 나오겠지요 뭐. "


"그럼요. 금방 나올 거에요 하하. "


우리는 아니겠지만요 흑.


"네 그러면 다음 게임 준비하시고, 오늘 재미있게 치세요."


"알겠습니다. "


다시 라켓을 가지러 짐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데 재현이 형이 재빠르게 옆에 오면서 말을 걸었다.


"오늘 왜 우리가 게스트로 여기 초대받았는지 알았어. 여기 게스트 오기도 쉽지 않거든. 주말에 이 좋은 코트에서 쳐볼려고 앱으로 신청하는 사람들이 좀 많겠냐? "


맞는 말이다. 여기는 유튜브에도 소개되고 테니스 인플루언서들이 앞장서서 소개도 하고, 일반 동호인들 중 잘 치는 사람들이 자주 오는 곳이라 인기가 엄청나다.


"구력 물어보고 어디서 치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어디서 친다 그러니까. 클럽도 있냐고 물어보길래 파이썬라길래 게스트 오시면 된다고 해서 아싸 했는데 이게 보니까. "


"보니까요? "


"그냥 음모론인데 우리 클럽 회원들 빠져나가고 입상 못하면 저기 분들이 협회에 얘기해서 우리 클럽 코트 좀 가져갈려고 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 내가 기획 업무를 해서 이런 가설을 잘 세우거든. "


"형. 에이. 너무 많이 나간거 아니에요. 설마요. 다들 오늘 잘해주셨잖아요. 그냥 나이스 한 클럽이고 클럽분들일 거에요. "


"그런가. 근데. 아까 너랑 얘기했던 그 회사 분은 테린이 우승자보다 그럼 더 잘치는 실력자인거야? "


헉. 그렇다. 아까 희성 대리님이 같은 여자 플레이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5:5로 비길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이 분은 대체 얼마나 잘 치는 거지 나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네.


"뭐. 일단 오늘 비싼 코트 왔으니 열심히 치고 가자. "


"그래요 형. 어차피 내일이면 월요일이니 마지막 주말이나 불태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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