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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과장 Oct 12. 2024

TF가 테니스 화이팅이 아닌가요? - 4화

"팀장님, 제가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면 저는 이제 TF에서 일한다는 건가요? 소속이 바뀌는 거에요? "


"아니아니. 준경씨는 파트타임인거야. 풀타임은 아니고. 대신 저기 본사 정희성 대리가 준경씨에게 이것저것 해달라는 요청 사항이 생기면 그거 해주고, 우리 팀 일도 팔로우 업 해야지 "


"팀장님. 준경씨는 잘하면 본사에서 한 며칠 간 일해야 할 수도 있어요. 저희 팀장님이 모든 인원을 모아놓고 처음에 킥오프도 하고 초반에 와꾸 잡는 것도 같이 하시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와꾸요? "


"허허. 희성 대리는 벌써 와꾸 같은 전문 용어도 알고. 역시 본사는 일을 제대로 하나봐"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그 메일을 받은 다음날 출근하자 마자 팀장님은 나를 불렀다.


"지금 바쁜 거 없지. 할 거 하다가 10시에 본사에서 사람 오기로 했는데 그 때 회의 같이 들어가자고. "


"회의 주제가 뭐에요? "


"있다가 들어오면 알게될 거야. 편하게 들어와. "


자리로 돌아온 나는 일단 주말동안 쌓인 이메일을 읽기 시작했다.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니 계속 공부하는 것 말고 전공을 살려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을 지도 몰랐기 때문에 불안했었다. 그래도 4년 동안 전공 과목 때문에 이것저것 숫자를 접하게 되다 보니 생각보다 내가 숫자를 싫어하지 않다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 만나면 기가 빨리는 I 인지라 영업 직군을 지원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도 내 할 일만 제대로 하면 욕은 안 먹을 거 같은 재무 직군으로 준비하다가 대기업의 계열사의 재무 직군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대기업 계열사라고 하지만 잘 나가는 계열사는 아니고, 그 대기업도 무슨 우리나라 10대 대기업도 아닌 지라, 내가 받는 월급은 평균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다.


'그러니. 테니스 레슨도 꾸준히 받는 거지 뭐'


사실 테니스 레슨비도 예전엔 사람들이 한 달에 10만원에서 조금 더 높은 정도 였다는 데 최근엔 거의 20만원에 육박한다. 그것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립 코트의 레슨은 일주일에 2번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건물 내 실내 테니스 레슨은 일주일에 1번엔데 거의 20만원 꼴이니 결국 취미도 돈이긴 돈이었다.


"준경씨, 저기 회의실 '혁신' 에서 보자고. 본사에서 온 것 같애. 간단하게 마실 것만 좀 세팅해줘"


입사한 곳은 제조업 기반의 회사이다 보니 아직 상명하복의 문화가 남아있었다. MZ 때문에 직장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는데, 여기는 그냥 예전에 생각하던 회사 그대로였다. 갑작스런 회식 통보에 막내는 회식 참석 거부도 없고, 재무팀이다 보니 월마감이라도 할 때는 뭐 야근은 그냥 고정값이었다. 회사가 어떻게 완벽하겠냐 라며 생각하며 탕비실에서 생수를 준비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누구지. 이 굴뚝산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이 정도의 외모는 우리 수민이 정도 밖에 못 봤는데. '


처음에 잘못 본 줄 알았다. MZ의 씨알도 안 먹히고 아저씨들 밖에 없는 이 회사에 너무나 훈훈한 아니 무슨 인플루언서 같이 생긴 사람이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전략팀에서 온 정희성 이라고 합니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저음이네. 수민이는 좀 밝고 따뜻하게 생겼는데 이 사람은 조금 차갑게 생겼네'


"준경씨 어서 소개해. 본사 전략팀에서 온 정희성 대리야. 난 예전에 정 대리가 사원일때 같이 프로젝트 진행했던 적이 있었지 "


"아. 아.. 네. 저. 저는 재무팀 김준경 이라고 합니다. "


그룹에 있는 본사 재무팀은 수시로 이메일로 자료를 요청하거나 월 마감때는 나를 집에 보내지 않는 가장 큰 주범이지만 전략팀으로 업무 요청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선배들이나 팀장님 말로는 본사의 재무팀도 대단하지만 본사 전략팀에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똑똑하고 재무팀 만큼 독하다고 했었던 기억 때문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준경씨 왜 그래. 평소의 MZ 처럼 당당하게 자기소개 해야지. 우리한테는 별 말 다 하더니만"


거짓말이다. 자기는 전격 Z작전은 아는데 MZ는 모른다며, 자기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바로 다른 팀으로 보내버릴 거라고 협박했다. 이 팀은 회사의 곳간을 책임지기 때문에 자기는 그렇게 해야한다면서


"그러시군요. 할 말 다 하시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아니에요. 저는 할 말 하지 않아요. 아... 제 말은 시킨 거. 그니까 저는 팀장님 지시를 잘 따르는 팀원입니다"


희성 대리라는 사람은 내가 한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나를 유심히 보고 씨익 웃더니 갑자기 자리에 앉아버렸다. 지시를 잘 따른다니 기분이 좋아졌나.


"다들 앉으시지요. 제가 오늘 여기온 건 지난주에 팀장님에게 말씀 드렸는데, 본사에서 M&A 건을 진행하면서 TF를 꾸렸는데 인력이 필요해서 관련 계열사에 요청을 했고, 팀장님이 준경씨를 추천하셔서 직접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M&A 요? 그거 경영학 복수 전공할 때 들어보긴 한 거 같은데, 그걸 제가 뭘 한다구요? TF요? 저 TGIF 는 들어봤는데 TF는 처음 들어봤어요.


"어. 제가 뭘하면 될까요? 저 아직 이런 건 해보지 않아서.."


"뭘 그렇게 걱정이야. 나는 바쁘니까 나가볼께. 희성 대리님은 여기 준경씨에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가 봐. 점심은 같이 먹는 거지?"


"네 팀장님. 저 바로 돌아가봐야 해서요. 점심은 다음에 같이 하시지요. 끝나고 인사 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팀장님이 나가고 나니 뭔가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늘 안정과 안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재무팀 팀장님이시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부산스럽기 때문에 저 분이 계시면 회의 중에 정신이 없기 마련이었다.


"저 대리님. 제가 입사한 지도 얼마 안 되었고,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뭘 하면 되는 걸까요? "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대부분의 업무는 저랑 저희 팀에서 진행할거에요. 저희는 지금 업계의 작은 회사 하나를 인수하려고 하는데. 인수가 뭔지는 아시지요? 재무팀이니 전공은 상경계열일거 같은데. "


"전공은 심리학인데, 경영학 복수 전공은 했습니다. 그런데 인수 합병 이런 건 강의 시간에만 들었고, 교수님도 이건 학부에서 자세히 들어갈 건 아니라고 하셔서 사실 하나도 모릅니다. "


"심리학이요. 재미있네요. 저도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여튼 간단히 설명하면, 우리 회사 아니 전체 그룹의 사업영역이 너무 오래되서 새로 돈 벌 곳을 찾아야 해요. 그래서 지금 그룹에서 눈여겨 보고 있는 기술력 있는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와 가장 연관성이 높은 계열사가 여기라서 사람을 요청한 거구요. "


그렇게 중요한 일에 나 따위를. 왜 난 아직 쪼랩인데.


"저 대리님. 그런 중요한 일에 저같은 주니어가 괜찮은 걸까요? 전 아직 저희 회사 핵심 기술이나 강점 이런거 잘 모르는데요. 월마감하고 재무제표 작성하는데 팀장님이나 선배님들 서포트 하는 거 밖에는"


"그거에요. 이미 사업타당성이나 기술 검증은 다른 분들을 이미 섭외해놨지요. 그 분들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는데. 대신 저희 전략팀에서 이런 숫자를 보는 저랑 다른 사람이 한 분 있는데 인력이 펑크가 나서 급하게 이 쪽 산업 관련 재무나 숫자 좀 볼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해 인력 요청한 거에요"


"저는 그래도 아직 잘 모르는..."


희성 대리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원래 냉미녀 스타일의 인상인데, 약간 가라앉은 인상을 보이니 더 무서워 보였다.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괜히 계속 모른다고 했나. 다시 뭐라도 말해야지 하는 순간 그 냉미녀가 살짝 미소를 짓더니 말을 시작했다.


"준경씨. 제가 해달라는 것만 해주면 되요. 기존 하는 일에서 크게 벗어난 건 없을 거에요. 만약 추가적으로 공부해야 해서 할 게 생기면 제가 적극적으로 알려 드릴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되요. 지금 하는 건 생소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나중에 준경씨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될 지 몰라요. 혹시 알아요? 같은 팀이나 옆 팀에서 일하게 될 지도. "


어. 그러면 저 계열사에서 본사로 옮겨가는 건가요? 그러면... 월급 더 주나? 아니 월급 보다도 저런 스타일 좋은 사람하고 계속 일하게 되면 뭔가 썸도 생기고. 그러면.. 어... 그렇게 상상의 나래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 뭔가 두툼한 종이들과 책이 내 손에 들려졌다.


"자 그러면. 이게 준경씨가 이번 주까지 읽어야 할 자료입니다. 기본적으로 타겟 회사 설명 자료와 향후 해야할 일들에 대한 사항을 설명해놓은 거에요. 주말까지 읽고, 재무적으로 봐야할 사항에 대해 월요일 오전까지 보내주세요. "


저기요. 오늘이 목요일인데요. 월요일 오전까지 보내라는 건 저 주말에 일하라는 건가요?


"저 대리님. 월요일이 다음주 월요일인가요? "


"그렇죠. 보통 일정을 명시하지 않으면 당연히 다음주 아닌가요? 왜요? "


"그게 저... "


"주말에 뭐 있어요? 보니까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거 때문에 그런거 같은데. 앞으로 해야할 일은 제한된 시간에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분명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요. 클리어하게 말해주세요 "


"네 실은 저 주말에 운동. 아니 테니스 쳐야하는 약속이 있어서요. 아. 아닙니다. 취소하고 하겠습니다"


"테니스? 테니스라... 테니스를 하시는 군요. "


뭐지. 테니스에 원한 있나. 왜 저런 표정을 짓지.


"저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 아니에요. 자세히 읽어보면 그 해야할 일은 반나절이면 끝날 거니까 이번 주말에는 일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그거 보내고 나서 아마 본사에서 킥오프 미팅 한 번 할 거니까 그 땐 본사로 와주시구요. 킥오프 미팅하고 나면 바빠질 수도 있으니 일정 같은 건 그 때 같이 조율해보죠. 이번 주말은 테~니~스~ 잘 하시구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주신 자료 읽어보고 최대한 빨리 작업해서 월요일 오전까지 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


방금 뭐지. 테니스 라는 단어 얘기할 때 뭔가 딱딱 끊어서 말한 거 같은데


"그러면 이제 마무리 하시죠.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


그렇게 회의실에서 나오고 나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희성 대리는 팀장님에게 인사하고 바쁘다며 자리를 먼저 떠났다. 아 갑자기 왜 새로운 업무가 추가된 거지. 뭔가 저 본사에서 온 대리님 굉장히 스마트하게 보이고 내가 제대로 안 하면 엄청 고생할 거 같은데. 다음 테린이 대회 입상을 위해 특훈해야 한다고 재현이 형이 엄청 준비중인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


그냥 일이나 할 걸. 테니스 괜히 시작했나. 테니스가 뭐라고.


"회의 잘 했어? 희성 대리 장난 아니지? 완전 똑 부러지지? 예전에 사원일때도 일처리 정말 깔끔하고 나한테도 아닌건 아니다라고 말 다 했거든. 잘해야 할 거야. 아직 대리지만 본사에서도 인정 받고 있어서. 인정 받으면 나중에 평가에도 좋을 거야. "


"네 제가 뭐하면 되는 지 딱 정해서 잘 알려주셨어요. 되게 배울게 많은 거 같았어요. "


"배울 게 많지. 흐흐. 뭐 혼나면서 배우는 것도 배우는 거니까. 아 참. 준경씨 핸드폰 계속 뭔가 띵띵 거리던데. 확인해봐. 누가 계속 카톡 보내나봐. "


"죄송합니다. 진동으로 했어야 하는데. 진동으로 바꿔놓겠습니다. "


"그래 수고해. 월마감 얼마 안 남았으니. 필요한 자료는 영업이나 생산에 미리미리 전화 해놓고. "


재현이 형이다. 이 형 전화도 했었네. 일할 땐 일만 하자고 해놓고 이 형 왜 이렇게 연락을 많이 한 거야. 카톡에도 메시지 여러 개 보내놨네.


'재현아 우리 주말에 계획 변경되었다. 남복으로 내가 일정 잡았는데. 그게 말이야 그 일정이 커져서 남복과 혼복 돌아가며 4시간으로 바뀌었어. 자세한 건 있다가 저녁에 전화할께'


토요일에 클럽에서도 테린이 대회 연습 때문에 2시간 동안 쳐야 하는데, 일요일에 4시간이나 또 테니스 쳐야한다구요. 아. 재현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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