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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과장 Oct 18. 2024

럭키도 실력 - 8화

"나이스 파트너. 와 너무 잘 하시는데요. "


"지금 저희가 이긴 거 맞나요? 저도 이제 드디어 본선이라는 걸 나가보는 건가요? "


"맞아요. 축하합니다. "


예선 통과가 이렇게 쉬운 거였나. 6:3, 6:4 이렇게 2게임을 모두 이겨버렸다. 이거이거 알고보면 내가 예선탈락한건 재현이 형 때문 아니야? 알고보면 나도 힘을 숨긴 고수?


"그러면 이제 뭐하면 되요? 제가요.. 제가.. 예선 탈락만 알아서, 그 다음은 뭐해야 하는 지 몰라요. "


"보통 이럴 때 뭐 좀 먹고, 적당히 웜업도 하면서 대기하는 거죠. "


"제가 본선 진출 기념으로 점심 쏘겠습니다. 가시지요! "


"오. 이러다 입상이라도 하면 다 사주겠는데요. "


"말씀만 하세요. 입상이나 우승하면 하하. 인생 별 거 있습니까? "


"저 그럼 차 사주세요. "


무서운 분이시다. 전략하는 사람들은 원래 저런가. 기회포착을 잘 하네 조금의 틈만 보여도 이렇게 파고드는 구나. 


"대리님 점심은 뭘로 드시겠습니까? "


"이거봐. 본인 불리할 때만 꼭 직급으로 호칭하네요. 생각보다 얍삽해. "


무서운 호랑이를 상대하려면 머리를 굴리는 여우라도 되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푸드 트럭에서 핫도그 2인분을 사들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저 근데 정말 저희 입상할 수도 있을까요? "


"쉽진 않을 거 같아요. 아까 예선 때 저희가 만난 팀들 기억나시죠? 그 팀들 1년도 안 된 팀들이에요. 원래는 6:1 정도로 이겨야 하는데 6:4 까지 간 거 보면 모르겠어요. 이제 만날 팀들은 앞의 팀들 같지 않을 거니까 운 좋으면 2번 더 이기고 운이 안 좋으면 다음에 바로 질 수도 있죠. "


까똑.


"톡 왔는데요? 아까 같은 클럽 사람들 아니에요? 혹시 아까 그 여자분? "


"아. 왜 그러세요. 그 친구랑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클럽 사람이에요. "


어. 근데 왜 정말 수진이지? 뭐지?


'오빠, 본선 올라간거 앱으로 확인했어요. 축하해요! 저도 올라갔어요! 그리고 재현이 오빠한테 저녁에 저랑 오빠랑 같이 술 먹자고 연락이 왔어요. 진아 누나도 부르고 '


'재현이 형이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지? '


'그냥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던데요. 본선진출 축하한다면서. 앱으로 우리 경기 결과 다 봤나봐요. 그리고 할 말도 있다고 하시네요. '


'근데 결승가면 늦게 끝나는 거 아니야? 언제 끝날 지 모르잖아. '


'푸하하. 벌써 결승 생각해요. 이야 김준경씨 장난 아닌데. 재민 오빠 말로는 4강 가도 세시 네시래요. 저녁은 충분히 가능할 듯. '


'오케이. 그러면 있다가 시합 끝나면 연락합시다. '


그런데 왜 이리 서늘하지.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앞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의 희성대리님이 있었다.


"예선통과 하더니, 벌써 정신이 해이해졌나보군요. 지금 본선 올라가서 어떻게 게임할 건지 얘기를 해야하는데 카톡에서 눈을 못 떼시네요. "


"아. 저기 오늘 시합 끝나고 클럽 사람들끼리 맥주 한 잔 하자고 카톡이 와서 그거 대답하느라요... 그 때 보셨던 재현이 형이 할 말이 있다고 해서요. "


"시합이 끝났는데 대회 파트너랑 식사를 안 하고, 다른 사람들끼리 밥을 먹는다구요? 와 그게 무슨 매너에요? "


아 맞다. 재현이 형하고 밥먹는 건 늘 일상적이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분도 대회 파트너인데 실수해버리고 말았다. 아 그런데 내가 본사의 전략기획팀 대리님, 그것도 나에게 일 주시는 분과 단 둘이 밥먹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할 줄 몰라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대리님이 한숨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뭐 그 분이 할 말이 있다고 하니 어쩔 수 없네요. 대신 저한테 따로 밥 사요. "


"아 네. 알겠습니다. 제가 밥 사겠습니다. "


"제가 비싼 거 얻어먹을테니까 각오하세요. "


"네... "


그 때 우리 팀 이름을 부르는 방송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서 몸 풀고 다음 경기 준비하라는 내용이이었다. 갑자기 다시 긴장감이 확 차오르기 시작했다. 잘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끝일까?


"자 이제 가요. 잘 해봅시다 파트너. 4강가면 한우 얻어 먹을께요. "


"입상하면 한우 쏘겠습니다. "


"앗싸. 나 진짜 열심히 해야지. "


"투뿔은 안 됩니다. "


"역시 중요한 협상 포인트를 선점할 줄 아시네요. TF에 잘 뽑았어. "


말 안 했으면 정말 투뿔 사달라고 했을 사람임이 확실하다. 무섭다. 내면의 무서움을 제쳐놓고 앞서 나가는 외모만 보면 흰색 기본 티셔츠에 남색 치마를 입은 날씬한 체형인데다 키도 거의 170에 근접해서 다른 남자 참가자들이 계속 흘끔흘끔 쳐다보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근데 뭐 나랑 그게 무슨 상관인가.


"웜업 시간은 5분이구요. 노애드 상황일 때는 남남여여로 가시면 됩니다. 경기가 많이 밀려 있으니, 웜업은 정말 5분만 드립니다. 여기 게임공 드리니까 준비해주세요. "


게임 진행요원의 설명이 끝나고 4명의 선수는 각자 몸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때 상대방의 공이 어떤지를 잘 봐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회 당일 아침에 희성님이 설명을 해줬다.


"웜업할 때 상대방 여자분의 구질이 어떤지 중간 중간 봐주세요. 그리고 스트록에서 어디서 에러가 나는 지도 기억을 하면 나중에 게임할 때 도움이 될 거에요. "


그런데 저 2명 에러가 없는데. 저 여자 나보다 잘 치는 거 같은데. 앞에서 손목으로한 공을 주는데 왜 이리 파워도 있는거야. 보통 웜업하면 서비스 라인 안에서 자기 파트너와 함께 손목으로만 가볍게 라켓을 돌리면서 자신의 스윙 리듬과 그 때의 스트록 감을 잡아가는 시간이다. 테린이 경험 상 여자분들은 스핀은 많이 걸리는데 공의 파워는 약한 편인데 상대편 여자분의 공은 내 공보다 스핀이 많고 속도감 있게 빠르게 공이 넘어왔다. 그걸 또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남자 분은 더 말도 안되고.


'고수다! 이 사람들 테린이 아닐 지도 모르겠는데. '


"저 분들 공이 너무 좋으신데요. 테린이들이 아닌 거 같아요. 여자분 공이 저보다 더 좋아요. "


"그건 우리 팀도 그렇지 않나요? "


"아... "


"확실히 아까 예선이랑은 완전 다른 레벨인거 같기는 해요. 본선 1회전인데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난 거 같아요. 사실 입상은 대진운이 가장 중요한 건 데. "


"으... 육빵 날까요? "


"뭘 벌써부터 질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칠 수 있는 공도 못 치지. 제가 있으니까 한 번 해볼만 할 거 같아요. "


게임은 치열하게 흘러갔다. 당연히 나의 서브게임은 브레이크 당했지만, 내 파트너의 강력한 공격과 침착한 게임 운영으로 상대방 여자분의 게임을 브레이크 할 수 있었고, 각 팀의 에이스들은 자신의 서브게임들을 지켜냈다.


그런 식으로 게임이 계속 흘러가서 지금 게임 스코어는 4:5에서 우리 팀 에이스인 희성님 서브게임에서 노애드인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한 포인트를 따면 타이브레이크로 가는 거고, 포인트를 잃으면 이 게임은 지는 것. 중요한 포인트이다 보니 서브 하기 전에 나에게 다가와서,


"제가 서브를 저 여자분에게 T존으로 넣을테니 센터 라인을 지켜줘요. "


"알겠습니다. "


그렇게 짧은 작전 회의를 끝내고, 그녀의 서브가 T존으로 예리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작전회의대로 네트의 센터 쪽으로 이동했는데


'틱'


'왜 팡이 아니지? '


틱소리와 함께 라켓의 윗 프레임에 맞은 공은 비릿비릿하게 나의 왼쪽을 스쳐가는 완벽한 다운더라인 코스가 되버렸다. 흔히 말하는 '럭키' 이다.


"와, 끝났다. 여기 본선 1회전 맞아. 왜 이리 게임 내용이 좋아. "


"그러게 무슨 결승전인줄 알았어. "


왼쪽으로 스쳐간 그 공을 계속 보고 있었다. 파트너 역시 그 공을 3초 정도 바라보더니 내가 있는 네트 쪽으로 터벅터벌 걸어왔다. 그리고


"어쩔 수 없어요. 럭키도 실력이에요. 나중에 계속 치다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거에요. 어서 인사하러 가요. "


"아. 진짜 센터에 오면 받을 수 있었는데... "


"가요, 저 분들 기다리시잖아요. "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포인트는 정말 죄송해요. 완전 럭키에요."


"아니에요. 두 분 다 너무 잘 치시네요. 꼭 우승하세요. "


"감사합니다. "


상투적인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예선탈락하면 오전 10시 반 정도에 짐을 챙겼는데, 그래도 본선을 가니 밥도 먹고 오후에 짐을 챙기는 구나. 이게 본선진출의 기쁨인가. 하지만 그렇게 기쁘진 않았다. 지금도 내 왼쪽을 스쳐가는 그 힘없는 공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많이 아쉬워요? 뭐야. 혹시 지금 우는 거에요?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니 이게 뭐라고 그냥 공놀이인데 이렇게 눈물까지 날 일인가? 재현이 형을 놀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나도 이렇게 눈물이 나오네.


"아니에요. 눈에 뭐가 들어간거에요. "


"제가 미안해지잖아요. 서브 에이스를 냈어야 하는데 에이스를 못했네. "


"아닙니다. 대리님. 대리님 덕분에 본선도 가보고, 거의 2회전도 가볼뻔 하고 혼복 대회도 참가했어요. 오늘 너무 감사해요. 제가 밥도 사드려야 하는데 아까 보셨다시피 재현이 형에게 연락이 올 거 같아서요. 제가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식사는 제가 나중에 사겠습니다. "


"원래 오늘 같은 날 파트너끼리 대회 복기하면서 전략을 세우는 건데. 아쉽네요. 밥은 꼭 사세요. 안 데려다 줘도 되요. 저 차가지고 왔어요. 제 차로 가면 되니까 클럽분들이랑 같이 계시다가 저녁 드시러 가세요. "


"네 감사합니다."


주차장까지 따라가서 차를 배웅해주고, 푸드트럭에서 커피를 한 잔 사서 혼자 앉았다.


'되게 아쉽네. 그래서 눈물이 나나. 재현이 형은 그 때 나보다 더 아쉽고 억울하고 그랬나 보네. 그런데 그 형은 그러면 무식하게 그렇게 다운더라인 이만큼 나갔는데 그런 공 치면 안 되지. 나는 그래도 작전처첨 시키는데로 잘 했는데. 아 우리는 작전이 없었구나. '


생각해보니 우리는 작전이란게 없었다. 그냥 한 명이 서브하고 한 명은 네트에 있고 한 명은 뒤에 있고. 그래 이런걸 연습하라고 클럽에서 대회 전 날 잘하는 형들이랑 게임을 붙여준거 구나. 그런데 그냥 늘 하던데로 하니까 혼난 거고. 그 때 카톡 알람이 왔다.


'오빠 끝났어요? 저희도 방금 져서 끝났어요. 재현이 오빠가 이번에 702에서 만나자고 하네요. 맛있는 맥주 먹자고. '


'왠일이야. 거기 맥주 한 잔에 9천원이던데. 알았어 그 쪽으로 넘어갈께. 다 같이 돌아가자. '


'알았어요. 이쪽에서 만나서 넘어가요.'


그렇게 나의 첫번째 혼복대회는 끝이났다. 나의 첫번째 본선진출은 럭키 포인트 하나에 끝나버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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