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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과장 Oct 17. 2024

설레는 그녀의 제안. 우리 대회 나갈래요? - 7화

꽤 긴 하루가 되고 있다.

킥오프 미팅이라고 해서 자기 소개만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나는 처음보는 본사의 전략 담당이라는 임원 분이,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 전략 임원이 어려워 하는 사람들을 스티어링 커미티? 에 있는 분들에게 프로젝트 소개하고, 각자 파트를 소개하는 데에만 1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스티어링 뭐시기에 있으신 분들이 말하는 당부할 점들, 여러분들은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힘들어도 끝까지 업무를 완수해달라는 말을 전달했다.


"저 말에 너무 감동받지 말아요. 결국 앞으로 야근 많을 거지만 그래도 다 해야해 라는 말이니깐. "


이라고 중간 중간 저 분들의 말을 알기 쉽게 풀어서 해석해주는 희성 대리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러면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했으니. 현실은 작은 계열사의 재무팀 막내.


회의는 예정시간인 5시 반을 넘겨서 6시에 끝났다. 원래는 5시 반에 끝내고 바로 가서 저녁 먹는 거였는데, 이러면 정시 퇴근하고 회식하는 거랑 같은거네 하고 푸념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게 들려왔다.


"오늘 메뉴 뭔지 알아? "


"몰라. 전략팀에서 안 알려주던데. 시크릿이라고. 그게 왜 비밀인지는 모르겠네 진짜. "


"곱창이래. 그것도 좋은 소곱창. 서프라이즈 할려고 말 안해줬대. "


"우와.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니 그게 중요한가? 법카로 먹는 소곱창이라니. 얼마나 나올까? 이 사람들 데리고. "


"엄청 나오겠지. 근데 전략팀 동기가 그러는데 이거 먹는데 드는 비용만큼 제대로 사람들 돌릴 거래. 주말 근무도 각오해야 할 거야. "


"아 안되. 나 이제 결혼 준비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여자친구가 자기 혼자 결혼하는 거냐고  계속 그래서 진짜 곤란하다고. "


"뭐 어떡하냐. 잘 해봐라. "


회식 메뉴가 소곱창이라니. 지금까지 삼겹살 밖에 못 먹어봤는데. 원래 월마감 하면 주말근무 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님. 몇인분이나 먹을까 행복한 상상하는데


"준경씨, 바빠요? 안 바쁜 거 알고 있어요. "


"대리님, 제가 안 바쁜 거 알면서 물어보시는 군요. 네 안 바쁩니다. "


"오케이. 그러면 저 좀 도와줘요. 제가 전략팀에서 대리라 아직 짬이 안되서 회식 장소 먼저 가서 셋팅 좀 해야해요. 같이 가요. "


어. 저는 그냥 가서 곱창만 먹을려고 했는데.


"곱창은 나중에 실컷 먹게 해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서 도와줘요. "


내 얼굴이 그렇게 쉽게 읽히는 얼굴인가. 멋쩍으면서 털레털레 따라갔다. 주말에 코트에서 봤을 때는 운동복을 입어서 또래로 보였는데 회사에서는 직급 만큼이나 경험이 많은 선배로 다시 보였다. 아니 코트에서도 실력으로 이미 까마득한 선배 같았지만.


회식 장소에 가서도 역시 탁월하게 모든 디테일을 챙기고 있었다. 높으신 임원들이 오는 만큼 자리 배치, 화장실 동선, 그리고 테이블 별로 메뉴 선정 및 임원들 주차 공간 확보 요청까지. 아니 근데 회식하면 이런 것들까지 다 챙겨야하나 싶다. 그냥 와서 같이 앉아서 식사하면 되는건 아닌가.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라고 하잖아요. 대법원 판결도 나왔고. 맞아요. 회식은 진짜 업무의 연장이에요. 직급이 있고, 조직도에서 내 밑에 100 명이 넘는 사람들과 하는 회식은 말 그대로 의전이에요. 편하게 하는 자리가 아니죠. 준경씨도 나중에 이런 거 써먹을 지도 모르니 제가 뭘 체크하는지 잘 확인해보세요. "


"대리님 저희 회사에서 밑에 100명 있는 사람은 사장님 밖에 없는데요. "


"그럼 준경씨가 사장하면 되겠네요. "


"하나도 재미있지 않습니다. 대리님. 저는 그냥... "


"그냥 뭐요? "


"테린이 대회에서 1승만 했으면 좋겠어요. "


회사 이야기만 하면 분위기가 무거워질 거 같고, 본사와 계열사 직원 그냥 스스로 느끼는 차이. 이런 것들 때문에 화제를 전환하고 싶었다.


"1승을 못 했어요? 그 때 보니까 한 번은 이길 거 같은데. 아 파트너 때문인가? 그 분 너무 위너만 날리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긴 했던 거 같아요. "


"파트너도 있지만, 저도 못하니까요. 하아. 어떻게 하면 테니스를 잘 칠까요? 아니 대리님은 어떻게 테니스를 그렇게 잘 치시나요? "


"흐음. 어 저기 다들 오시네요. 자 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시는 분들 자리 안내 좀 해주세요. "


차려진 곱창은 맛있었다. 소곱창이 정말 맛있다고 재현이 형이 말한 기억이 나는데 그 형은 대체 그런 건 또 언제 먹어봤을까 생각하며 입에서 녹는듯한 느낌의 곱창을 계속 먹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다른 분들과 술잔을 기울이니 시간이 흘쩍 지나가고 있었다.


TF는 처음이라 긴장된다. 이런 M&A 건에 들어왔다가 안 되면 입지가 곤란해지니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 등 사원으로서는 들어도 크게 감흥없는 이야기들이어서, 잠깐 바람쐬러 건물 밖으로 나갔다.


"준경씨도 바람쐬러 나왔어요? "


"어 대리님, 소곱창 정말 맛있는데요. 이렇게 맛있는 걸 주면 나중에 얼마나 일을 시킬까요? "


"바빠도 제가 바쁘겠죠. 준경씨가 그렇게 바쁘시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


"알겠습니다. 저는 대리님만 믿고 대리님이 주시는 숙제를 열심히 할께요. "


이 말을 하고 나도 모르게 좀 부끄러웠다. 회사에서도 팀장님한테 이렇게 말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소극적으로 네 네 하거나 언제까지 해보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했지. 이렇게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보겠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아까 테니스를 왜 잘 치냐고 물었었죠? "


"네 맞아요. 알고보니 반대편의 희윤이란 분은 저희 지역 여자 테린이 대회 우승자더라구요. 그런 분보다 더 잘 치시는 거 같던데요. "


"전 미국에서 어릴 때 테니스를 배웠어요. "


아. 아메리칸 스타일 테니스. 어쩐지 스트록에 스핀과 파워가 남다르더니. 뭐지 어릴때 미국에서 테니스를 배웠으면 유학파인가?


"아버지가 주재원이여서 어렸을 때 미국에 있었어요. 처음에 미국가서 말도 안 통하고 의기소침해 있는게 안쓰러워서 이것저것 다 시키셨어요. 수영도 해보고, 태권도도 하고. "


"아 그러셨군요. 그러면 여러가지 잘 하시겠는데요. "


"아니에요. 저 물 무서워해서 수영은 금방 그만뒀고, 태권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주말에 부모님과 공원 근처로 지나가는데 되게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 거에요. 그게 뭔지 싶어서 가보니까 사람들이 테니스 치는 소리였어요. 그 소리가 너무 경쾌하고 좋아서 졸라서 레슨 받게 해달라고 했죠. "


미국 얘기를 할 때 희성 대리님의 표정은 부드러워져 있었다. 경쟁이 치열한 회사생활에서 잠깐 빠져나와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시간이 떠올라서 그런지 그 기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준경씨는 테니스 어떻게 시작했어요? "


취준생 시절부터 시작해서, 우연히 코트를 지나가다가 테니스 레슨 하는 거 구경한 이야기. 똑같이 라켓으로 공을 쳤을 때 나는 그 경쾌한 타구음이 좋아서 시작했다고 하니 믿지 않는 눈치였다.


"혹시 지금 저에게 플러팅 하는 거에요? 내가 테니스 공치는 소리가 좋다고 하니까 괜히 공통점 말할려고. "


"아니에요. 저 진짜 그 팡팡 그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여유없는 취준생일 때 레슨받고 테니스 시작한 거에요. "


"그렇군요. 그러면 준경씨 저기 나랑 혼복 대회 같이 나가볼래요? "


!!!!!


이게 무슨 소리지. 저렇게 잘 치는 사람이 왜 나랑 대회나가자고 하는 거야.


"대리님, 저랑 나가시면 예탈하실 수도 있는데요. 저보다 잘 치는 파트너를 찾으시는게. "


"대회를 꼭 입상하러 참여하나요. 경험 쌓으러 나가는 거지. "


아니던데요. 우리 클럽에서도 입상 안 할거면 대회 왜 나가냐고 압박하는 고수도 계시고, 가까이는 제 파트너도 지금 입상에 미쳐 있던데요.


"한 번 생각해봐요. 나도 이런 제안 잘 안하니까. 저한테 대회 나가자고 하는 사람 되게 많아요. "


"네 알겠습니다. "


사실 난 대회 나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클럽에서는 나가라고 계속 푸쉬하고 이제는 파트너가 된 재현이 형도 계속 나가자고 하니 지난 번에 나가고 다음 대회 때도 나갈려고 하는 거지 조금만 짬이 차면 대회를 안 나가는 게 나만의 계획이다. 그런데 이런 제안을 받다니. 뭐 안 나가는 거지. 혼복 대회는 무슨.



"저희 게임은 아마 10시 정도 시작하겠네요. 지금 몸 좀 풀어놓고 다음에 커피 하나 사와서 대기하면 될 거 같아요. 가방에서 공 하나 챙겨서 나와요. "


"네 알겠습니다. "


난 분명히 대회는 안 나갈 거라고 했는데, 나는 주말에 회사 상사까지는 아니고 회사에서 나보다 직급이 높으신 분과 혼복 대회에 참여하러 인천까지 오고야 말았다. 원래는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라고 적당한 타이밍에 말할려고 했는데, 그만 재현이 형에게 이 얘기를 하고만 것이 화근이었다.


재현이 형이 클럽 단톡방에 내가 테린이 우승자 만큼의 실력자에게 혼복 대회 참여 제안받았다고 올리는 바람에 회장님으로부터 이런 기회 잘 없으니 참여하라는 개인톡도 오고 진아 누나도 혼복 대회 나가면 많은 도움이 되니 꼭 가라고 전화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다만 수진이가 누구랑 나가는 거에요? 라고 개인톡으로 물어본게 좀 신기했지만.


그렇게 자의 없음 타의로 이 대회를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대회는 지자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테니스 앱 관련 플랫폼에서 여러 대회를 주관하는데 그 중 하나의 대회였다. 하지만 참석인원 규모가 꽤 커서 80팀이 넘는 팀들이 참여를 했다. 참가 인원 160명, 아마 그 이상에 진행요원 까지 포함하면 200 명은 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몸은 이 정도 풀었으면 된 거 같긴 한데... 준경님은 여전히 너무 정석적으로만 크로스로 보내요. 그러다 전위에게 발리한테 다 걸려. 다운더라인도 치고, 로브도 띄어보고 다양하게 코스 변화를 줘봐야 해요. 지금 대회니까. 너무 눈에 읽히면 우리 예탈해요. 내 인생에 예탈은 없으니까 멘탈 잘 잡고 있다가 게임 들어가야 해요. "


"그렇게 무섭게 말하시니 더 멘탈이 나갈 거 같은데요. "


"내가 뭘 무섭게 말했다고. 커피나 사러가요. 여기 보니까 푸드트럭도 오고 커피트럭도 왔던데. 여기는 정말 대회가 신기하네. 이런 대회 처음 봤는데. "


"그러게요. 제가 갔던 테린이 대회는 커피나 푸드트럭은 커녕 아침에 다들 김밥 사왔거든요. 여기는 무슨 축제 같아요. "


"예탈하면 김밥 가져온 거 먹을 시간도 없었을 거 같은데. "


...


"아니 왜 먼저 가요? 삐졌어요? 아니 예탈할 수도 있지. 그런 걸로 삐지고 그래. 대신 오늘은 예탈하면 안 되요. "


저 사람은 테니스를 잘 치니 예탈한 사람의 심정을 모를 것이다. 아 정말 1승이라도 어서 해봐야지. 억울한 마음에 파트너를 뒤에 멀찌감치 뒤에 두고 커피를 주문하러 줄을 섰다. 그런데.


"준경 오빠. "


"어! 수진이 여기 왠일이야. 아. 너도 대회 신청했구나. 진아랑? 아 혼복이지 누구랑? "


"누구긴 누구야. 나지. "


"재민. 너랑 수진이랑 페어구나. 니가 혼복도 나갈 줄은 몰랐는데. "


"너도 혼복대회 나간다길래 나도 신청해봤지. 재미있을 거 같아서. "


재미있어서냐. 수진이랑 더 친해지고 싶어서냐.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것까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준경님 커피 주문했어요? 어. 누구? 일행 분들? "


"아 네. 저희 클럽 친구들이에요. "


"아 안녕하세요. 저는 준경이 오빠랑 같은 클럽에 있어요. "


"반갑습니다. 정재민이라고 합니다. "


"아 네. 저는 정희성이라고 합니다. "


갑작스런 침묵 타임이 왔다. 이럴 때 센스있게 대화를 계속 하던지 자연스레 갈라지던지 해야하는데 내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그래 있다가 보자 이렇게 얘기할려는 순간. 


"준경이랑 괜찮으시겠어요? 준경이 아직 1승도 없는데. 들었는데 잘 치신다고 하시던데. 파트너 때매 일찍 가시는거 아니에요? 하하 "


"에이 제가 그래도 예탈은 안 할 거에요. 멘탈 케어 해야죠. "


"혼복은 남자가 메인이라서 쉽지 않으실 거 같은데요. 저처럼 파트너가 좀 믿음직 해야하는데 하하. "


아. 재민이 넘 여전히 밥맛이다. 받아버릴까 하는데


"오빠 그만해요. 다들 잘 치시니 좋은 결과 있겠죠. 저희 이제 게임하러 가야해서 먼저 가겠습니다. 있다가 잘 하시고 본선에서 뵈요. "


"네. 그래요. 게임 잘하시고 있다가 뵈요. "


"대리님,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아까 저 넘이 원래 좀 그래요. 저희는 저희 게임에 집중해요. "


희성님이라는 단어보다 대리님이라 해야 그래도 이 분의 화가 풀릴 거 같았다.


"아니에요. 저 화 하나도 안 났어요. 저 분 이름이 뭐라구요? "


"정재민이요. "


"아. 본선 2회전만 가면 만나네. 만나서 부셔버려야지. "


역시 이 분 화난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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