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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과장 Oct 23. 2024

Scene 11 - 테니스가 원래 그래

"준경아, 월마감 보고 준비 잘 되가고 있지? 이번에 매출 떨어져서 위에서 더 민감하거든. 그러니까 이익이라도 좀 맞춰야 하니까 생산에 연락해서 원가절감 방안 잘 확인하고 니가 그거 받아서 엑셀로 검증해야해. "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


"언제까지 될까? 오늘 안으로? "


"팀장님 저 오늘은 그 TF 그거 작업 좀 해야하는데 내일 오전까지 해놓으면 안 될까요? "


"... 너 소속이 어딘지 잘 생각해. 이것도 급한 거야. 안 되 너 오늘 저녁 6시까지 해놔야 나도 저녁에 그거 보고 확인하고 내일 상무님 보고 들어가. TF 거는 니가 전화해서 알아서 일정 조율해. "


".... "


"그래서 저랑 준경씨가 오늘 회사가 아니라 여기에서 일을 하게 되는 거네요. "


팀장님이 TF 일정이라면 좀 봐주실 줄 알았는데 전혀 봐주실 생각이 없으셔서 대리님에게 전화해서 사정사정했다. 오늘 월마감 때문에 원래 밤새야 하는 건데 일단 6시까지만 기초 자료 해놓으라고 하셔서, 그거 끝나고 저녁에 작업해서 보내드려도 되냐고 하니 생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거 혼자서 하면 어려울 거에요. 광화문 역 스타벅스에서 봐요. 거기 책상 넓은 데 있으니까 노트북 챙겨서 6시 30분까지 만나요. ''


"네 맞습니다. 저희 악덕 팀장님이. 아 이 말은 비밀입니다. 팀장님 덕분에 제가 존경하는 대리님께 자료를 먼저 드리고 싶었는데 미처 드리지 못했습니다. "


"오~ 이제 아부도 하시나요? "


"저를 본선으로 데려가주신 파트너님께 당연히 아부를 해야지요. 다음에는 입상도 부탁 드리겠습니다 하하 "


"그건 하는 거 봐서요. 그래도 뭐 멘트가 나쁘지 않았으니. 여튼 어서 엑셀 열어봐요. 내가 준비한 거 해서 적용했으니 그거 가지고 일단 돌려봐요. "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스타벅스 안의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하면서 작업이 마무리 되어갈 때 즈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불쑥 일과는 다른 말이 대리님에서 튀어나왔다.


"요즘은 바이브 클럽 게스트 안 와요? 회장님이 그 때 그 분들 다시 놀러 오지 않냐고 물어보던데. "


"그 때 대회 갔다와서 저희 클럽이랑 저랑 제 파트너에 좀 변화가 있어서요. 그래서 다른 클럽에 게스트 갈 여유가 없었습니다. "


"무슨 변화? 갑자기 서브가 막 잘 들어가나요? "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다만. 사실은 ... "


그렇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재현이 형이 내가 본선에 갔다라는 걸 부러워 한 거. 재현이 형이 대회를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클럽에서 재현이 형이 제일 고수랑 서로 언쟁을 벌인 일 등을 설명했다.


"이해는 되네요. 테니스라는 운동이 진입 장벽이 확실히 높거든요. 저희 삼촌 말에 의하면 처음 한국에서 클럽에 들어가면 2년 동안은 게임 한 번도 안 시켜줬대요. 매번 랠리만 하게 하고. "


"네? 2년 동안 게임을 한 번도 못하셨다구요? 와 너무하다. 전 진짜 운이 좋은 거네요. "


"그렇죠. 저야 외국에서 테니스를 어릴 때 배워서 뭐 그런 텃세도 잘 몰랐고, 못 치진 않으니까 한국 와서 다른 클럽 게스트로 가도 다들 환영해주시니 고맙긴 한데 한국에서 테니스는 정말 어렵네요. 괜찮겠어요? 테니스 그냥 포기하고 일이나 열심히 하실 생각은? "


"아니 전 고수 파트너님이 있는데 버스타서 혼복으로 입상 한 번은 해야죠. 왜 그러십니까. 도와주십시오 고수님. "


"내가 손해보는 기분이긴 한데 뭐 한 번 다시 도전해보지요. 그런 의미에서 샌드위치 하나 좀 사오세요. 그거 먹고 이거 빨리 작업 마무리 짓고 집에 가지요. "


"넵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그 파트너 분하고 이야기 좀 더 해보세요. 왠지 지금 많이 외로우실 거 같아요. 제 생각에는. "


TF 작업은 끝났다. 카페에서 같이 작업을 굳이 해야하나 생각도 들긴 했지만 같이 앉아서 하는게 더 효율적이기도 했고, 나도 정대리님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TF를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약간 차가운 얼굴이라 무서웠지만 회식준비, 대회 참가를 같이 하면서 혹시...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너무 앞서나가는 느낌이 드는게 아닐까 싶기는 했다.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본사는 서울 강북 근처 중심가에 있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운동을 조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월마감에 TF 작업에 오늘은 이미 글렀으니 가서 쉬어야 겠다라고 생각할 때 전화가 걸려왔다. 재현이 형이었다.


"준경아 오늘 클럽 나올 거야? "


"형 저 일때매 서울 본사갔다가 이제 집에 가는 길이에요. 운동하러 가기는 조금 힘들 거 같은데요. "


"그러면 늦게라도 좀 올래? 오늘 운동 끝나고 회장님이랑 나랑 영환이 형님이랑 또 한 명 정도 자리를 할 거 같은데 혼자 가지 좀 그래. "


형. 그 정도는 혼자 가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나까지. 집에서 쉬겠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왔지만 아까 대리님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많이 외로우실 거 같아요. '


그래. 이 형이 클럽에서 나말고 의지할 사람이 없나 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나니 야박하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네 알겠어요. 운동 끝나고 형들 자리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저 바로 그곳으로 갈께요. "


지하철 안에서 드는 생각은 제발 영환이 아저씨와 재현이 형이 크게 서로 소리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코트에서 서로 소리내고 싸우는 건 대부분의 클럽에서도 금기시 하는 행동이고, 사소한 시비라면 나이가 어린 사람이 보통 잘못했다 말하고 사과를 받아주는 형태인데 과연 재현이 형이 그렇게 말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내가 가서 잘 달래봐야지.


도착한 곳은 클럽 사람들이 늘 가는 치킨집이었다. 늦는 와중에 재현이 형이랑 영환 아저씨가 또 싸우면 어찌하나 걱정을 했는데 회장님과 총무인 재헌이 형이 주로 이야기 하고, 당사자들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내가 가게로 들어가자 마자 총무인 재헌이 형이 반색하면서 나를 반겼다. 아마 여기서 짬이 가장 안되는 재헌이 형이 무거운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힘들었을 터이니 당연히 내가 반가웠을 것이다.


"준경아! 왔구나. 왜 이렇게 늦었어. 어서 앉아. "


"늦어서 죄송해요. 회사에서 일이 좀 있어서. "


"어휴 그럼. 일 중요하지. 혹시 테니스 때문에 생활에 지장가면 안 되. 회사에 잘 있어야 돈도 벌고 그래야 계속 테니스 칠 수 있는 거야. 테니스는 장기전이거든. 나 봐. 나도 정말 못 쳤는데 그냥 머리 드밀고 10년 버티니까 그래도 조금 치잖아. "


말은 저렇게 하지만 재헌이 형이야 말로 집에서 쫓겨나기 직전까지 테니스에 미쳐 살았다고 들었었다. 총무인 재헌이 형도 키가 그리 크지 않은 편에 그렇게 운동 신경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10년 동안 꾸준히 테니스를 친 결과 신인부 우승을 했는데 그 우승을 위해 참가한 전국대회 경비만 해도 거의 경차 한 대 뽑는 수준이라는 전설이 클럽 내 돌았다. 나는 저렇게 테니스를 칠 수 있을까?


혼자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자리를 무겁게 지키고 있던 회장님이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두 분 서로 이야기 좀 해보세요. 평온한 클럽에 평지풍파를 일으켰으니 뭐라도 말 좀 해야지. "


영환 아저씨는 거듭 소줏잔을 들이키고 있었고, 탁자만 응시하던 재현이 형이 무겁게 입을 뗐다.


"영환이 형님, 회장님, 총무님. 죄송합니다. 영환이 형님이 저에게 운동하면서 좋은 마음에서 조언 해주셨는데 제가 그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재현이 형은 말을 마치고 반대편에 앉아있는 분들께 고개를 숙여서 거듭 사과했다. 당연한 순서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과하는 재현이 형의 말투와 모습에는 진심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테니스가 원래 그래. "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영환이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나 역시 게임할 때 잔소리 아닌 잔소리만 들으면서 이 분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 없었는데, 생각 외로 차분하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너희들 클럽 들어와서 게임 얼마만에 시작했어? 아마 들어오자 마자 게임하라고 하면서 넣어줬을 거야. 그렇지? "


"네 코치님이 게임 룰 알려주셔서 게임 어떻게 하는 지 배웠어요. "


"나는 90년 대에 클럽 처음으로 가입했거든. 98년인가 아마 그 때 다른 클럽에 들어간 거 같애. 근데 내가 게임을 처음 해봤을 때가 2000년 이었어. "


믿겨지지 않았다. 2년 동안 그럼 클럽에서 뭐하는 거지? 클럽에 게임하러 오는 거 아닌가? 여기는 그냥 자리 지켜주면서 재현이 형 멘탈 관리 해줄려고 왔지만 이건 참을 수 없었다. 


"그럼 클럽에 와서 뭐 해야 하나요? "


"자리 지키다가 형들이 쉴 때, 저기서 랠리 해 그러면 거기서 랠리 하고. 랠리 하면서 옆에서 형들이 계속 자세 뭐라고 하고. 혼나고 그랬지. "


"2년을 그렇게 해야해요? "


"지금은 인터넷으로 코트 예약할 수 있지? 나때는 그런 거 없었어. 테니스 치고 싶으면 무조건 클럽에 들어가야 했고. 클럽 가서 게임하라고 말할 때 까지 그냥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는 거였어. "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총무인 재헌이 형도 약간 충격을 먹은 듯 했다. 저 형도 구력이 10년 정도 되었는데 이 말에 저렇게 놀랐는데 나랑 재현이 형의 얼굴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옆에 있던 회장님도 소줏잔을 한 번 들이키더니 말을 거들었다.


"영환씨 말이 틀리지 않아. 나도 사실 테니스를 일찍 시작했다가 그런 게 이해가 안 되서 그만뒀지. 그러다가 다시 시작한 거고. 정말 테니스는 그랬어. "


"그럼 우리 클럽은... "


"그 때 너무 서러워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클럽 만들면서 우리는 초보자들에게 잘 해주자 그런 취지로 만든 거지. "


그런 좋은 취지의 클럽인데 왜 우리는 혼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때쯤 당사자가 이어나갔다.


"정말 이 클럽은 복 받은 거야. 아까도 말했듯이 새로 테니스를 시작한 사람들이 코트 귀한지 모르고 이렇게 클럽에서 치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모르는 거 같아서 안타까워서 그래. "


역시 영환 아저씨 약간 꼰대 같은...


"너네가 나 테니스 꼰대라고 생각하는 거 알아. 그런데 너네가 여기서만 테니스 치는 거 아니잖아. 다른데서도 치게 되잖아. 그러면 아직 멀었어. 나는 잔소리지만 거기서는 엄청난 설움 받을 거야. 왜냐면 내가 그랬거든. 2년 정도 지나서 게임하면서 실력이 늘어서 다른데 가봤다가... "


"참 무시 많이 당했다. 어디서 테니스 시작했냐고. 그 클럽은 아무나 받아주네 이런 말도 들었고. 그래서 너네도 다른데서 쳤을 때 그런말 안 듣게 할려고 이 정도는 해줘야 된다라고 생각해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네. "


난 이 분은 키도 크시고 하셔서 젊을 때부터 휩쓸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나. 


"맞아요. 나도 테니스 그만둔게 그 비슷한 말 들어서 그랬던 거야. 나는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면서 모진말 최대한 안 할려고 노력한 거고, 영환씨는 너네가 더 실력을 키워서 고수가 되길 바랐던 거지. "


"고수가 아니면 테니스를 즐길 수는 없을까요? "


잠자코 듣기만 하던 재현이 형이 질문을 했다. 형 그냥 가만히 듣다가 알겠습니다 하면 되는 거 아니였어? 


"테니스를 잘 치면 더 잘 즐길 수 있겠지 "


"저 열심히 레슨받고 열심히 뛰고 열심히 칠께요. 그리고 영환 형님이 말씀해주시는 조언 잘 듣고 게임때 잘 하겠습니다. 근데 좀 서로 웃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너무 딱딱해요.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 준비하는 것처럼. "


"테니스가 그렇드라. 예전에도 재미있게 치면 안 되냐는 사람들이 많았지. 그 사람들은 보통 4년 정도 되면 다 코트에 없더라고. 재미있게 치고 싶어도 열심히 친 사람들이랑 실력차이가 벌어져서 같이 못 치게 되더라. 그럴까봐 너네에게 잔소리를 하는 거 같다. "


약간 무거워진 분위기에 재헌이 형이 말을 화제를 전환하는 주제를 꺼내 들었다.


"영환 형님. 애네들 열심히 해요. 계속 대회도 나가서 경험도 쌓고 있어요. 조만간에 좋은 성적 거둘거에요. 조금 기다려 봅시다. "


"저번에 준경이가 파트너 새로 찾는다고 하던데 너네 또 대회 나가냐? 아닌가? "


앗차. 그 때 재현이 형이 대회 안 나간다고 해서 회장님에게 혹시 파트너 찾아달라고 지나가는 말로 했었는데 그걸 이렇게 꺼내시다니. 빨리 수습해야 한다.


"아 회장님. 그건 그냥 하는 얘기였어요. 사실 대회는 쉴려고... "


"저 준경이랑 다시 나갈거에요. 이번엔 꼭 잘해보겠습니다. "


"어 형.... 그 때 생각해본다고 했는데 그럼. "


"잘 부탁해 파트너. 열심히 해볼께. "


그렇게 클럽 분위기를 수습하러 모인 자리가 테린이 파트너 재결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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