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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과장 Nov 13. 2017

당신이 밴쿠버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2 Yaletown

2002~2003년 어학연수생이었던 나는 Yaletown을 잘 몰랐었다. 

돌아올 무렵 잠깐 같이 살던 캐나다인 룸메이트가 Yaletown은 쿨한 장소라고 말해줬지만 평범한 어학연수 생이었던 나는 Robson st.이나 Gastown 쪽에 가서 주로 가서 놀았었다. 아마 Yaletown은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곳처럼 느껴지고, 주위 친구들 중 가본 아이들도 없어서 가기가 어색해 들러보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왔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SJ가 어학원을 Yaletown에 있는 CSLI라는 곳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밴쿠버에서 한 달씩 두 개의 숙소의 머물렀는데 그 중 하나가 Yaletown 근방에 있는 YWCA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학원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여서 교통비도 들지 않았고, 도서관과도 가까워서 최적의 장소였다. SJ의 어학원과 가깝다는 이유로 정한 숙소였지만 YWCA 호텔은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주었다. 


바로 BC Stadium 뒤에 있는 산책로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던 David Ram Park와 산책로였다. 어학연수 시절에 이 곳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늦게라도 이 장소를 알게 돼서 감사할 뿐이었다. 밴쿠버에서 가장 집값이 높은 곳은 Coal Harbor 근처의 아파트들이라고 한다. 그곳의 아파트들과 Yaletown 근처의 아파트 가격을 비교해보진 않았지만 그 장소의 풍광만큼은 Coal Harbor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나는 정말 좋았다.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장소를 찾은 건 우연이었다. 

비가 3일인가 4일 연속으로 오고 나서 날씨가 쨍하게 갠 그 날, SJ가 학원을 간 사이 혼자 러닝화를 신고 호텔 밖을 나가 BC Stadium 뒤를 무작정 뛰었다. 처음에는 Main St. 방향으로 조금 갔지만 다른 사람들과 걸었던 익숙한 풍경이라 반대편으로 뛰어보면 어떨까 해서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었다. 


그렇게 반대편으로 뛰어가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학연수 시절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장소와 풍경들이었다. 그때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어학원, 도서관, 아니면 학원 액티비티 등 제한된 장소들만 돌아다녔었구나 생각을 하면서 계속 뛰다 보니 그림과 같은 풍경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Yaletown 산책로

SJ에게 밴쿠버는 늘 아름다운 도시야. 와서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질 거야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런 장소가 내 앞에 나타났다. 15년 전 밴쿠버에 와서 날씨 좋던 그 8월에 처음 Stanley Park를 걷던 그 날만큼 좋은 기분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온 SJ를 재촉해서 바로 데려갔었다. SJ도 처음으로 내가 입에 달고 있던 Healing Place Vancouver에 제대로 감명받은 듯 했다. 그냥 보기만 해도 마음이 트이고 걱정거리를 잠깐 놔두고 풍경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SJ와 나는 처음에는 English Bay 근방까지 걸어갔었다. 


그 뒤로 계속 날씨가 좋은 날이면 천천히 같이 뛰었다. 평소 뛰기를 싫어하는 SJ였지만 이상하게 여기에서는 힘들어도 잘 쫒아왔다. 풍경이 너무 좋아서 안 뛸 수가 없다고 했다. 빠른 걸음으로 40분 넘게 가면 Burrad Bridge 근방까지 갈 수 있고 천천히 뛰어서 가면 30분 정도 뛰면 다리 근처까지 갈 수 있다. SJ와 나는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뛰어서 갔고, 피곤한 날은 걷다가 뛰다가 하면서 풍경을 즐겼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David Lam Park라는 곳이 나온다. 


 David Lam Park와 Seawll 산책로

아마 밴쿠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아닐까 하다. 밴쿠버 아일랜드의 Victoria에 가면 Inner Harbour라는 곳이 있는데 Yaletown의 David Ram Park 근처에도 비슷한 유형의 장소가 있다. SJ에게 자주 얘기를 했었다.


“굳이 Victoria 안 가도 될 거 같아. 여기 이 공원에서만 걸어가도 Victoria 간 거랑 거의 비슷한 거 같아”


물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저런 말이 먹힐리는 없었지만 SJ 역시 밴쿠버에서 이 장소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라고 했다. 우리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SJ가 학교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무조건 나가고는 했다. 


그렇게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걷다 뛰다 하면서 풍경을 보는 것 만으로 행복했다. 해가 화창하게 뜨고 날씨가 춥지 않은 날에 그냥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 마음속에서 있던 생채기들이 조금씩 옅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의 멋진 풍경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잠깐 동안의 한국과의 단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SJ와 나는 어쨌든 그곳이 너무 좋았다. 


Marking High Tide 조형물


공원에는 이런 조형물도 있었다. 이 조형물은 Don Vaughan이라는 분이 설계한 조형물이었다. 일본과 중국의 조형물에서 영감을 받아 vistors들이 조류가 들어오고, 바위에 부딪혀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을 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예쁘기도 했지만 그 안에 글귀가 시선을 끌었다. The moon circles the earth and ocean responds with the rythm of the tide(달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대지와 바다는 파도의 리듬으로 대답한다). 처음에는 영문학 고전에 나온 시인 줄 알고 SJ에게 아는 척을 했지만 찾아보니 건축물 설계하신 분이 시를 쓰신걸 SJ가 찾아내서 머쓱해졌다. 


이 산책로를 주욱 따라 걷다 보면 아쿠아버스(Sea Bus가 아니다!)를 만날 수 있다. 

그랜빌 아일랜드에서 탔던 아쿠아버스

아쿠아 버스는 Yaletown의 몇몇 선착장과 Granville Island를 배로 왕복하는 교통수단을 말한다. 밴쿠버 시티 다운타운인 그랜빌 st. 에서는 버스 1번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하지만 Yaletown에서 가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David Lam 공원을 걷다가 다시 그랜빌로 돌아가서 다시 버스를 탄다거나 아니면 그랜빌 st. 까지 계속 걸어서 거기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지만 이 아쿠아 버스가 훨씬 편리하다. 구글맵을 검색해봐도 아쿠아 버스를 타고 가는 걸 추천해준다. 동생이 찾아왔을 때 우리 일행 3명은 그랜빌 아일랜드에서 Yaletown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쿠아 버스를 선택했다. 그냥 작은 크기의 통통배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물살을 제치고 나가는 이 조그마한 배의 빠른 속도에 놀라게 되고, 걸어 다니면서 볼 수 없었던 여러 경치들을 둘러보는 경험을 만들어 준다. 


Yaletown의  David Lam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한국 학생들을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내가 갔을 시기가 여름이 아니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현지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학생들은 모르는 장소가 아닐까.


밴쿠버에 많은 어학원들이 Gastown에 있어서 학생들은 Yaletown 까지 발품을 팔아서 오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Global Village가 Yaletown에 있긴 하지만-사실 나도 어학연수 시절에 그 학원을 다녔었다- 그 밑의 방향으로 학생들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하다. 다들 랍슨으로 바로 올라가지.


숙제를 해야 한다던지 아니면 공부를 더 해야 하겠다는 압박 때문인 지는 모르겠지만 날씨가 좋았던 그때 왜 이런 곳을 알지 못했나 아쉬움도 든다. 밴쿠버를 방문하셨거나 오래 머무시는 분들은 이 Yaletown의 숨겨진-누가 숨기지는 않았지만 SJ와 나는 보물을 찾은 듯 기뻐서- 장소를 방문하시면 좋을 듯하다. 걷다 보면 False Creek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서 town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Yaletown 쪽의 음식점이나 스타벅스가 있어서 SJ와 나는 커피를 마시거나 간단히 뭘 먹고는 했다.


사람들이 밴쿠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SJ와 나는 화창한 날에 손잡고 이 곳을 산책하며 거닐었던 것이 가장 좋았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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