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의 선배들
내가 살던 고향집에서 2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학교. 등교는 있지만 귀가는 없는 학교. 학교에서의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중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가 한 명 있고, 입학 전에 다녔던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가 대여섯 있었다. 그 외에는 모두 낯선 사람들, 낯선 환경. 그곳에서 인연들이 하나하나 생겨갔다.
번호선배
한 학년당 총 3개 학급이 있었다. 그리고 한 반에는 23명씩이어서 한 학년의 총 인원은 69명이다.번호는 가나다 순으로 부여되며, 남자가 먼저 번호를 부여 받았다. 여느 다른 학교와 넘버링에 있어서 크게 차이나진 않는다. 무엇보다 그 번호가 조금은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게 있다. 1학년때 나는 3반이었고, 4번이었다. 지금은 2학년이 된 선배들에게도 1학년의 시절이 있었고. 그들도 동일한 넘버를 부여 받아 지냈던 1년이란 시간이 있었다. 우리 학교 급식소 옆 입구에는 커다란 신발장이 하나 있었는데 전교생이 자신의 신발과 실내화를 갈아신을 수 있는 신발장이었다. 자신의 번호에 맞춰 신발을 넣는 장소였기에 작은 의미로 보면 바로 나의 신발장을 썼던 선배이기도하며 어떤 경우에는 내가 쓰고 있는 기숙사방을 쓰셨던 방선배이기도 하다. 물론 남녀비중이 매 학년마다 달라서 방선배와 번호선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번호선배와 가장 먼저 대면하는 순간은 아침체조를 배우는 날이다. 개학을 하고 그 다음날 저녁에 번호선배와 나는 첫 대면식을 하였다.
“안녕? 난 너의 번호선배야.”
바로 1년전에 1학년 3반 4번이었던 선배와 인사를 했다. 선한 인상을 가진 선배였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학교 생활에 대한 여러가지 궁금증들을 답해주셨고, 아침체조를 배웠다. 보통 학교에서 하는 체조라고 하면 국민체조나 새천년 건강체조를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팝송에 맞춰 하는 체조가 있는데 난생 처음보는 동작들이다. 뭔가 엄청 특이한 체조인데 나름 팔다리 어깨 옆구리 다 운동되는 체조였던 것 같다. 정확한 체조의 유래는 모르지만 선선배들로부터 대물림되듯이 이어져 내려오는 체조였다. 아침마다 하는 이 체조를 위해서 체조맨으로 선발되는 인원이 각기수마다 한명씩 있었다.
과학고에서의 선배
체조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지만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그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우리학교에는 여러종류의 선배가 있었다. 번호선배 외에도 중학교 출신 학교 선배, 지역선배, 기숙사 방선배, 면학실 자리선배, 동아리 선배 등등..
여러 범주에 걸쳐 접하게 되는 선배들은 주로 학기초에 학교 밖으로 나가서 밥도 사주고 하면서 학교생활에 궁금한점들을 안내해주었다. 동아리활동을 하게되면 더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선배들과의 교류를 할수 있었다.
전통으로 포장된 X군기
기숙사 학교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선배와 후배간 교류도 많고 배우며 주고 받는 것들도 많지만 그와 동시에 군기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좀 있었다. 브런치 글을 엮는다고 인터넷에 과학고에 대한 글이 어떤게 올라온게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우리학교의 악습을 비판한 글이 하나 보인다. 시차제, 강제기합, 존댓말 및 인사강요에 대한 비판이었다.
맞다. 그런게 있었다. 1학년은 2,3학년들을 위해 식당에서 줄서는 것을 양보했었고, 선배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야했다. 그러나 이 인사라는게 선배에게만 하라는건 아니었고, 교내에서 보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했었다. 선배들도 후배들에게 인사를 했고, 학교에 처음와서 모르는 손님에게도 인사를 했다. 나는 비록 형식적인것일지라도 이 인사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전통,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이러한 사항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선배들중에 자치부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을 중심으로 후배들을 모두 모아놓고 고개를 숙이도록 하고 군기잡았던 점.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 운동장을 오리걸음으로 돌아야 했던 단체기합이 있었던 점. 모두 선배들이 후배를 향한 바람직한 관심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시차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졌다고 하는데.... 좋지 않은 것은 비판을 하여 개선하고, 좋은 것은 이어 오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이 든다.
이렇듯 과학고에서는 다양한 경로로 선후배간 교류가 많은 편이다. 그 교류가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거나 대학생활을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동기들말고 선배나 후배와 연락하고 지내는 경우는 아주아주 드문것같다. 그러나, 어떤 조직에서든 1년의 차이는 무시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1년 먼저 그 곳에서의 생활을 이겨내고 그 길을 앞서간 사람으로써 배울점도 많다고 생각하기에 그 교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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