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헤부부 Jan 12. 2021

눈이 싫은 게 아니라, 눈이 싫은 입장인 것일지도..

오래간만에 경험한 폭설 그리고 생각


지난 1월 6일 수요일이었죠.. 저녁 7시쯔음부터였다.. 오랜만에 폭설이 내렸지요. 겨우내 제대로 된 눈 소식이 없더니 제대로 한방 내렸습니다. 평소 주하와 책을 읽다 보면 눈싸움하고 눈사람 만드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하는데요. 항상 그럴 때면 저는 주하한테 "우리 눈 오면 눈사람 만들러 가자~"라고 노래를 불렀었지요.... 그런데 드디어 그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눈이 왔던 것입니다.


눈이 충분히 내리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서 눈 구경을 할까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눈을 보니 동네 바둑이 마냥 나가서 놀고 싶더라고요.. 겹겹이 껴입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으나, 혹여나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 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을 하여 나왔습니다. 온 가족이 나가고 싶었지만 둘째는 아직 콧물이 줄줄 나오며 코감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터라 집에 있기로 했습니다.



마땅한 눈놀이 장비가 없어서 집에 있던 장난감 블록 상자의 뚜껑을 하나 집어 들고 나왔습니다. 눈길을 헤치고 마트에 기저귀를 사 오는 미션을 가지고 나왔는데요. 블록 상자 뚜껑은 이래저래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마트로 가는 길목을 열어주는 썰매로 활용되었고, 집 앞의 눈을 치우는 눈삽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정성스레 만든 눈사람을 들고 오는 받침대로 활용되었지요.



마트로 썰매를 끌고 가는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어머니가 한 말씀하시더군요.


"얘야, 넌 눈이 오니 좋냐. 나는 내일 출근길이 걱정된다.. 1시간 넘게 걸릴 거 같은데 ㅠㅠ.."


사실 죄송한 얘기이지만 저는 육아휴직 중이라 출근 걱정이 없어서 마냥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눈이 좋을 수 있구나 싶더군요.


군대 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는 눈이 오면 그 눈이 쌓이기 전에 치워야 했기 때문에 한밤중에 계속 눈이 내리게 된다면 밤새 잠도 못 자고 눈을 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눈을 보면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며 온갖 저주를 퍼부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 그때부터 눈이 싫어졌었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휴가를 나오는 날 눈이 펑펑 쏟아지는 걸 보면서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든 생각은..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눈을 싫어하게 된 것이 아니라 눈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 건 아닌가 싶습니다. 뭐 비슷한 말 같긴 한데요..


눈이 싫은 게 아니고, 눈이 싫은 입장인 것이고.

일을 시키고 싶은 게 아니고, 일을 시키게 된 입장이 된 것이고.

육아를 괴로워하는 게 아니고, 육아를 괴로워하는 입장이 된 것이고.

그 사람이 미운 게 아니고,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 입장이 된 것이고..



때로는 상황과 입장이 나의 감정을 지배하고는 합니다.

그 감정을 느끼고, 발산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 감정으로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폭설로 인한 이상한 생각 주절주절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모두는 날개 한쪽씩을 잃은 꿀벌이고 파리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