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습니다

이상혁, 열한 번째 이야기

by 이상혁

어김없이 울리는 새벽 5시 반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5분가량 나를 붙잡는 침대에서 몸을 간신히 떼어내고는 정갈하지 못하게 놓인 슬리퍼를 질질 끌며 화장실로 향한다. 칫솔에 치약을 삼분의 이 가량 묻히며 슬쩍 거울을 보는데 얼굴 상태가 좋지 않다. 떡진 머리에 아직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해 밝은 조명과 눈싸움이라도 하듯 한껏 찡그린 눈을 한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은 흡사 만화 스머프에 나오는 악당 가가멜과 비슷하다. 분명 아픈 건 아닌데.


양치를 하고는 얼굴에 물을 묻히더니 세수를 한다. 그리고는 다시 얼굴 상태를 확인한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여전히 아파 보인다. 아무래도 자기 전 감지 않아 떡진 머리가 문제다. 멍하니 거울을 보다 앞에 있는 세면대와 샤워실을 두어 번 정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샤워기는 샤워실 벽 위에 붙어있다. 머리를 감으려면 추운 겨울 새벽 공기가 가득한 집에서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서 출근을 해야 하기에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대뜸 세면대 물을 틀더니 그 좁은 사이로 억지로 고개를 들이민다. 그러고는 샴푸가 샤워실 안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밀어 넣은 머리를 급하게 빼다 수도꼭지에 뒤통수를 박아버린다.


요란스러운 준비를 마치고 이내 출근길에 올랐다. 뒷 통수에 생긴 혹이 자꾸 신경 쓰여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몇 번 문지르다 문득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너는 그렇게 살면 도대체 잠은 언제 자? 너처럼 살아야 하는데. 참 대단하다."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을 한다. 집에 돌아오기 전 헬스장에 들러 한 시간 반 가량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뒤 저녁을 먹고 영어 과외를 마친 후 열 두시가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든다.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이다.


눈을 뜨자마자 침대와 전쟁을 시작. 떡진 머리를 세면대에 들이밀어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머리에 혹이 생긴다. 회사에서는 업무 실수로 팀장님께 꾸지람을 듣고 눈치를 보다 7시는 되어서야 퇴근길에 오른다.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왔는데 낮에 한 실수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 운동에 집중을 못하더니 집에 와서는 요리가 귀찮은지 인스턴트 음식을 배달시킨다. 저녁에는 매일 전화 영어를 하는데 정작 영어 실력은 진전이 없는 듯, 조바심 가득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이다.


'독립적이다.', '어른스럽다.', '혼자서도 잘한다.' 등 주변에서 나를 포장하는 말은 어느 순간부터 부담으로 다가온다. 마치 주말에 늦잠을 잔다거나, 두세 시간 퍼질러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인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대를 준 누군가에게 자연스레 실망감을 안겨주는 표현 따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모난 부분을 둥글게 만들기 위해 억지로 깎아내기도, 보이지 않게 숨기기도 한다. 하지만 모난 부분은 뾰족한 송곳 같아서 아무리 천을 덧대어 숨겨도 결국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혹자가 받는 실망감은 자연스레 내 몫으로 돌아온다.


나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적어도 여기까지 읽은 소수의 독자는 책의 저자가 살면서 한 번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은 사실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글쓰기는 내면의 나와 가까워지는,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내면의 나를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생각하는 나는 그래서 글쓰기가 좋다. 누구보다 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이기에. 가장 앞에서 너를 표현해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을 힘들어하는 너는 그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할 필요가 없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네 의지대로 선택하고 결정해도 된다. 실패해도 괜찮고 넘어져서 힘들면 아파해도 된다. 여러 번 꾹 눌러 참다가도 속 시원하게 터트려도 된다. 누구 하나에게라도 미움받는 게 두려워 맘 졸이지 않아도 된다. 속상하면 겉으로 내색해도 괜찮고, 가끔은 소리 내어 울어도 좋다. 너는 그래도 된다.


"가끔은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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