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듯 살아가는

이상혁, 여섯 번째 이야기

by 이상혁

인생의 가치관이 많이 모호하던 시기에 멕시코 비자 연장을 위해 갔던 쿠바 여행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끊임없는 도전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캐나다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쿠바로 여행을 왔다고 합니다. 나이가 서른이더군요. 나는 왜 저렇게 살 수 없는 걸까 하는 마음에 대뜸 부럽다는 말과 함께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비웃음을 기다렸는데 그 사람은 그러더군요.


“그럼 너도 그렇게 살면 돼.”


순간 가슴이 한 쪽이 아파 왔습니다. 어떻게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는 건가요.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내가 만들어가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거지만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살았던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를 어느 한계에 가두어두고 살았던 걸까요. 한참을 생각해 보니 나라고 그렇게 못할 것도 없더군요. 여행에 돌아와서도 꽤 오랜 시간동안 그 말의 의미를 고민했습니다. 나도 감히 그런 인생을 살아도 된다는 게 너무나도 설레는 마음에 며칠은 잠을 설치며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그랬듯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 꼭 사회에 정해진 틀대로 살 필요 없이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당신이 처음이 아니라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이 있다고 말해줄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제 주변에는 고마운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의 터무니없는 인생 계획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들. 하나같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너라면 해낼 것 같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들.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사람들.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더군요. 그들 덕분에 고맙다는 말을 아낄 필요가 없이 항상 고개를 숙이며 살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의 생활이 고작 3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고민하곤 했지만 나도 제법 많은 선택을 하며 살다 보니 인생에 어느 하나 옳은 선택이라는 건 없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고 한 가지 선택을 하게 되면 후회의 선택이 될지는 내 노력에 따라 정해지더군요. 노력을 잘 하는 방법은 더 간단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 되더군요. 꽤나 상대적인 이 녀석은 다른 누군가의 노력과 비교하며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를 안심 시키곤 합니다. 노력의 기준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오늘의 나는 과연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새해 목표를 세우는 12월의 나는 작년 이맘때 세운 목표를 다시금 다짐하고 있을까요.


내가 스며든다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은 노력이 결국 내 일상에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말투나 행동에서 그 동안 스며든 노력이 보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스며든 기운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다시금 스며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스며들듯 살고 싶다는 말은 작은 실틈 사이로 빛이 스며들듯 노력하며 살겠다는 말이고, 아픈 겨울에 서서히 뿌려지는 봄비처럼 스며들고 싶다는 말이며, 쓸쓸한 생각이 가슴에 스며든 당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싶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