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혁 Oct 20. 2023

나미비아 트럭킹

열 번째 이야기

”고생하는 여행을 하시네요.“ 달러를 환전하기 위해 잠시 만났던 남아공 한인 가이드에게 들은 말이다. 트럭을 타고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를 지나 빅토리아 폴까지 가는 3주간의 여정. 매일 텐트를 치고 요리하며 이동하는 트럭킹을 그는 고생이라 불렀다.


오래간만에 호화로운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머쓱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비행기를 타면 유명한 관광지만 편하게 볼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유명한 관광지만’ 볼 수 있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고생이라 부르지만 이동 중에 보이는 풍경, 길에서 보내는 시간 또한 여행의 일부라 생각하는 나에게 트럭킹은 최고의 여행이었다.


트럭킹을 시작한 지 어느새 6일. 처음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로 이동하며 보낸 3일을 제외하면 사막에서 3일. 트럭킹은 대부분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한다. 어떻게 텐트를 쳐야 할지 몰라 어설프게 폴대를 끼우던 첫날과 달리 6일이 지난 지금은 사막 한가운데에 누울 공간 마련하는 일이 제법 익숙해졌다.


매일 사막에서 시간을 보내니 추울 거라 생각해서 새로 산 두툼한 침낭은 밤에도 이어지는 선선한 더위로 겨우 한쪽 다리나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차라리 베개를 살 걸 그랬다는 생각. 마찬가지로 트럭킹 직전에 잃어버린 바람막이 대용으로 산 2만 원짜리 경량 패딩은 자는 동안 내 목을 푹신히 받쳐주는 베개가 되었다.


사막이다 보니 도시를 환하게 비추는 광해가 없다. 이제 막 그믐이 끝났는지 자르고 일주일쯤 기른듯한 손톱에서 나오는 얇은 빛이 세상을 비춘다. 부족한 빛으로 억지로 세상을 비추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듯, 하늘에 박혀있는 수많은 점들도 작게나마 빛을 더한다. 작은 빛이 여럿 모이니 얇게나마 은하수 성운이 보인다. 자연스레 고개가 뒤로 꺾일 듯 위로, 더 위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와….“


금세 어둠에 잡아먹힐 만큼 작은 외침이지만 고요한 정적을 깨기엔 충분했던 외마디.


요즘 세상은 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밝은 빛이 가득하다. 우리는 언젠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은하수 성운을 볼 수 있을까? 온 세상이 까맣게 물드는 어느 그믐 밤, 단 10분 만이라도 서울의 빛을 뺏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한강 물에 반영된 은하수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지 있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는 멋져 보이는, 누군가 듣는다면 제법 우습겠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는 찰나에 저 멀리 사막 너머로 별똥별이 떨어진다.


그래, 언제나 혹시라는 예외는 있는 거니까. 세상 어느 누군가는 한 번쯤 나와 같은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제법 그럴싸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이내 텐트 속으로 들어간다. 선선한 더위에 역시나 펼쳐둔 침낭에는 한쪽 다리만 넣은 채 눈을 감고는 경량 패딩을 베고 조금의 상상을 더한다.

-

’한국 전력 공사에 몰래 침입해야 하나?, CCTV는 몇 개나 있으려나...‘ 누군가 듣는다면 제법 무서운 상상일지도 모르겠다.




이전 09화 그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