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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혁 Oct 20. 2023

그리움

아홉 번째 이야기

멋쟁이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지만 신발은 신지 않은 아저씨. 바닥에 쭈그려 앉아 배고픔에 아보카도 하나를 나눠 먹는 가족. 양 팔을 위로 쭉 뻗어야만 창문에서 보일까 싶은 여섯 살쯤 된 작은 여자아이가 서있는 도로 한복판. 위태롭게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나무에 기대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로 보이는 한 여자. 이 모든 게 당연하듯 지나가는, 가만히 선 채 그 모습을 쓸쓸히 쳐다보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이곳.


아프리카에 오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은 걱정이 산더미였는데 늘 그렇듯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첫날 끼니를 때우기 위해 지도를 보지 않고 정처 없이 걷다 들어간 식당 주인집 딸은 혼자 카메라를 보고 떠드는 나를 보고 한국인이냐며 웃으며 반겨주었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간 내게 다시 오길 바랐다며 직접 만든 팔찌를 선물했다. 빈곤층이 많은 탓에 길거리는 한 블록마다 지나가는 내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웃으며 지나가는 내게 직접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안 좋은 일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12시간이면 갈 거리를 24시간 동안 갔던 날도, 택시비를 후려치고 5시간 동안 나를 방치했던 사람도, 가만히 길을 걷던 나에게 다가와 한참을 쫓아오며 욕을 뱉던 사람도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사소한 일들로 여행에서의 추억을 멋대로 왜곡했을지 모르지만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내가 배운 건 한 번의 안 좋은 경험으로 좋았던 기억마저 흑색으로 물들이지 말자는 것.


고작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곳을 미워하기엔 이살루 전망대에서 본 광경, 끝없이 펼쳐진 바오밥 에비뉴, 밤늦게 도착한 안치라베에서 무작정 문을 두들긴 나를 반겨주고 다음 날같이 아침을 먹자며 돈도 받지 않고 조식을 차려준 호텔 사장님의 호의가 무시당하는것 같아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 아프리카에 오며 내가 걱정했던 일은 뭐였을까. 돌아보니 그건 치안도, 언어도, 낯섦도 아닌 어떤 하나의 감정이었다. 멕시코에 살 때 처음으로 혼자 일주일 간 휴가로 다녀온 바닷가에서 쓸쓸히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이라고 부르며 떠났던 나는 그 감정을 달래기 위해 가만히 바다를 보고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어 보기도, 지나가는 행인에게 말을 걸어 보기도, 호스텔 로비에 앉아 숙박객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수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나는 그때의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프리카 여행의 걱정은 그로 인해 시작됐다. 그때의 알지 못하는 감정이 다시 나오진 않을까? 그로 인해 여행을 망치지는 않을까. 혼자 여행할 아프리카가 걱정됐다.


’바다를 가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그도 그럴게 바다는 보고만 있어도 생각이 많아지는 곳이니까. 처음에는 바다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섬나라에서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이었을까. 마다가스카르에 온 지 약 2주가 되었을 즘 나는 결국 모론다바에 도착했다. 그리고 차라리 사색에 잠기자는 마음으로 해변가에 가만히 앉아 멍하니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불쑥 떠오르는 감정. 그리움이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잘 견디지 못했던 그날의 내가 느꼈던. 외로움일 거라 추측했던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어떤 장소에 대한 그리움일 지도, 사물일지도, 대상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다행인 건 이제는 제법 견딜만한 그리움이라는 사실. 구름 낀 하늘 사이 수평선 아래로 모습을 감추는 태양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시간. 덩달아 내 얼굴도 빨갛게 물들던 순간. 하나씩 떠오르는 생각에 한참이나 사색에 빠져야 했던 시간. 혼자 있는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 들던 순간. 아니 차라리 혼자인 게 다행이라 생각 드는 지금. 마다가스카르 또한 그리움의 한 편에 남겠다는 생각.


바오밥, 여우원숭이, 코티스, 택시 부르스, 재봉틀, 제부, 머슴밥에 고기 두 덩어리, 홀냄새, 한국 학교, 몽키바나나, 인력거, 조깅, 안자, 안치라베, 모론다바, 이살루, 다시갈지도, 수없이 외치던 미지의 땅, 일몰, 칭기, 아리아리, 행복, 썩은 땅에도 피어나는 세잎 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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