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과의 캠핑...문화적 충격

by 백작가

연구소 친구 존이 캠핑을 가자고 했다. 보통 영국인들은 가정적이라 대부분 주말엔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반면, 돌싱인 존은 주말마다 이곳 저곳 근교 여행을 다닌다. 또다른 친구인 공무원 존, 예전 연구소 동료인 올리버 이렇게 네 명이 영국 남단의 바닷가 휴양지인 콘월로 캠핑을 갔다.


텐트가 없는 나에겐 존이 텐트를 빌려쥤다. 나는 평소 캠핑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초등학교 보이스카웃 때와 몇 해 전 글램핑(텐트와 각종 장비가 준비된 캠핑장에 몸만 가는 것) 갔던 게 다다.


그래도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함께 가기로 했다. 영국인들은 캠핑을 어떻게 하는가 체험도 할 겸.


존이 왕복 기차표를 끊게 돈을 부치라며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존이 총무구나’라고 생각했다. 캠핑에 빠질 수 없는 삼겹살 파티를 생각하며, ‘코리안 알콜’인 소주와 막걸리를 따로 준비해갔다.


반일 휴가를 내고 존과 배낭을 멘 채 연구소를 나섰다. 수퍼마켓에 먼저 들렸다. 존이 생수, 비스킷, 와인 등 이것 저것을 샀다. 난 ‘총무역할을 하는 존이 대표로 쇼핑을 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옆에 멀뚱히 서 있으니, 존이 “넌 뭐 안 사?” 이렇게 물었다. 난 이 말의 의미를 당시엔 정확히 몰랐다. 존이 대표로 쇼핑하면서 내게 필요한 물건을 물어보는 줄 알았다. 나중에 정산하여 n분의 1로 돈을 걷고.


내 짐작이 틀렸다는 건 좀 있다 알게 되었다. 공무원 존은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역내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6개들이 캔 맥주 묶음, 쏘세지, 워커스(감자칩 과자) 등 먹을 것을 잔뜩 샀다.


올리버는 도착지인 콘월 기차역에서 만났다. 그도 기차역 바로 옆 수퍼마켓에 들어가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는 것이 아닌가.


영국 캠핑 문화는 삼겹살, 상추, 음료수, 맥주 등을 함께 돈을 거둬 사거나, 각각 준비해오더라도 함께 나눠 먹는 우리 문화와는 달랐다. 생수조차 본인 것은 본인이 사서 각각 먹는다. 다음날 하루종일 해안선을 따라 하이킹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려서 각자 먹을 건 각자가 샀다. 이 때부터는 나도 적응이 되었다.


잠을 잘 때도 달랐다. 보이스카웃 때 4~5인용 텐트만 보아오던 나는 여러 명이 한 텐트에서 자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모두 일인용 텐트를 가져와 각자 텐트를 설치했다. 각자 자는 것이다.

영국 친구들과 콘월로 캠핑 여행을 갔을 때 쳤던 텐트. 각각 일인용 텐트에서 식사도 각자 해결한다. COPYRIGHT 백작가


텐트를 치고, 차나 커피 한 잔씩을 하며 담소를 나눴다. 나는 슬슬 배가 고파왔다. ‘삼겹살(영국식으로는 바비큐)은 언제 구워먹나’ 생각했다.


그런데 총무격인 연구소 존이 나가자고 했다. 펍에 가자는 것이다.


저녁은 삼겹살을 구워먹는 대신 펍에 가서 맥주와 피쉬앤칩스, 스테이크 등 각자 주문하여 각자 계산해 먹었다. 캠핑장으로 복귀해 삼겹살 파티로 2차를 기대했으나, 2차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 부스럭 대는 소리에 깼다. 연구소 존이 버너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아침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역시 총무라 부지런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침은 뭘 먹을까’ 궁금했다. ‘라면이 최곤데’라고 생각하며, 캠핑 와서 아침에 먹는 라면을 떠올리자 입에 군침이 고였다.


씻고 와서 텐트 속 짐을 정리하며, 아침 먹으란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도 부르질 않았다. 답답해서 내다보니 이미 버너를 접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아침도 각자 해결하는 게 영국식 캠핑이었다. 늦게 일어난 공무원 존도 자기 버너로 물을 끊이고 있었다. 홍차에 비스킷으로 아침을 먹었다.


나는 전날 쇼핑을 안한 탓에 아침 준비를 못해왔다. 결국, 공무원 존한테 얻은 비스킷 몇 개로 아침을 때웠다.

콘월의 해안가를 걷다가 만난 세인트마이클 성. 콘월 바닷가는 정말 아름답다. copyright 백작가

다음날은 하루종일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걷다가 좋은 풍광이 나오면 따뜻한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햇살이 좋으면 콘월의 바닷가 한 귀퉁이에서 잠깐 낮잠을 자기도 했다.


중간에 가게를 만나면 생수, 초콜릿 등을 사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물론, 각자 사고 각자 계산하는 방식으로.


모래 해변을 만나서는 바다에 뛰어들어 해수욕을 즐겼다. 완연한 가을이라 무척 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 빼고 세 명의 영국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에서 나와서는 “살이 다 찢어질 것 같아”라며 몸을 떨었다. 얼굴만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걷다가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콘월의 바닷가. copyright 백작가

이렇게 저녁시간까지 바닷가를 걷다가 콘월역으로 복귀했다. 집으로 가기 위해 플리머스행 기차를 탔다. 영국에는 펍 크롤링(Pub Crawling)이란 게 있다. 우리가 2차, 3차 가듯이 펍을 옮겨가며 술을 마시는 것이다.


우리들은 기차를 타고 가며 펍 크롤링을 했다. 중간 역에 설 때마다 역에서 가까운 펍에 들러 다음 번 기차가 올 때까지 맥주 한 두잔씩을 마시는 것이다. 이 때는 각자 내지 않고, 돌아가면서 4잔씩을 주문하고 계산했다.


어떤 역에는 역 플랫폼 내에 펍이 있었다. 가까운 데 사는 존의 친구를 기차역으로 불러내어 함께 마셨다. 이런 식으로 이동하다보니 펍을 4군데나 들렀다.


마지막 플리머스역에서도 펍에 들러 한 잔씩하고 헤어졌다.


이틀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많이 걷고, 많이 마셨다.


무엇보다도 서로 섞이고, 어느 정도 개인의 양보와 희생을 담보한 단체 생활에 익숙한 한국과 ‘개인주의’를 중시하여 타인의 프라이버시와 권리를 존중해주는 가운데 인간관계를 맺는 영국인들의 문화적 차이를 체험할 수 있었다.


아! 삼겹살에 먹으려고 준비해간 소주와 막걸리는 어떻게 처분했냐고?


추운 날씨에 바다에 들어갔다 막 나와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영국 친구들에게 따라줬다. 아쉽게도 그리 맛있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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