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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익 Feb 19. 2019

(서평)『자존감 수업』윤홍균 지음

자신을 사랑하는 걸 미루지 말자

자존감 수업 - 자신을 사랑하는 걸 미루지 말자


 한동안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에 대한 해석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 해석에 따르면 둘 다 자신을 높게 생각하는 감정이지만 자존심은 남과 비교를 해서 우열을 가리기 때문에 생기는 부정적이며 상대적인 개념이고, 자존감은 남과 비교할 필요 없이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있다는 절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존심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쉽게 무너지지만 자존감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존'이란 두 글자는 똑같고, 마지막 글자의 뜻만 '마음'과 '느낌'으로 바뀐 것일 뿐인데 두 단어의 해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그런지 자존감, 자신감, 자존심, 자만심 등등 이를 표현한 비슷한 말들이 참 많다. 어떤 해석이든 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에 어떻게 도움이 되느냐일 것이다. 여기서의 자존감의 정의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대한 수준'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도라고 해도 될 것 같다. 100점 만점에 90점, 30점, 하는 식으로 점수를 매기든, 상.중.하로 평가하든 상관없다. 어느새 자존감은 정신건강의 척도가 되었고, 실제로 자존감이 낮아지면 우리의 삶의 질 역시 낮아지며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는 충분하다. 


자존감이 높다는 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자기비하나 자기혐오, 무기력, 열등감, 수치심 등등 많은 부정적 감정이 따라붙는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위축되고 자신을 포장하느라 필요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냥 편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이기가 부끄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부끄러운 나를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말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럴 땐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이드(id)'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한 가지 개선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이드는 간단히 말해 감추고 있는 어두운 내면의 문제들을 말하며, 이는 누구나 마음속에 갖고 있다. 아무리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사람이라도 남이 알지 못하는 욕심, 시기와 질투, 말도 안 되는 욕망, 집착 같은 이드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막 사랑스러워 지지는 않겠지만, 자신에게 이런 감정들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해도, 그리고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걸 조금이라도 받아들인다면 맹목적이고 왜곡된 자기 파괴적 감정은 완화될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해서 남에게 어떻게 평가받는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평가나 지적을 하는 사람이 별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을 확대해석 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흔히 있는 상사의 지적에도 ‘나는 아무 쓸모없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같은 식으로 스스로 결론짓게 된다. 이런 경우라면 우리에겐 많은 ‘역할 정체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자식이거나 직장인, 지역 주민, 어떤 모임의 회원 등 많은 역할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각각의 역할을 모두 다 잘 수행할 수는 없다. 따라서 어떤 역할에서는 자존감이 높을 수도, 또 다른 역할로서의 나는 자존감이 낮을 수도 있다. 


- 그러니 어떤 한 가지 정체성에서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직장인인 내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나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 (중략) 어느 한두 개에서 소홀하다 해도 연인으로서, 친구로서, 부모로서, 자원봉사자로서, 종교인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존재는 남아있다. 한 곳에서 존재감을 확인받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의 문제로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96~97쪽)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고 해도 감정에 몰입되어 빠져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억울한 일이나 창피한 일을 당했을 때 밤잠을 못 자고 그 경험을 곱씹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어떨 땐 또 잘 감정을 다스려서 평온한 듯하다가도 갑자기 또 괴로운 감정이 튀어나와서 마음을 힘들게 한다. 감정이 수시로 변하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이런 괴로운 감정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오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가 효과를 봤던 한 인지행동치료는, 세상의 모든 경험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다섯 가지는 사건, 생각, 감정, 행동, 신체반응이다. 밤에 잠을 못 자고 있는 것은 ‘행동’이다. 그 행동의 원인인 불안함은 ‘감정’이다. 그 불안의 원인은 ‘내가 과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그 생각을 만들어낸 ‘사건’은 며칠 전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른 ‘신체 반응’은 두근거리는 가슴과 불면이다. 이것은 실제 저자의 경험으로, 이렇게 분류를 하다보면 우리의 사고는 감정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또한 이런 상황의 객관화는 감정을 다스리는 데 항상 도움이 된다. 


 자존감을 방해하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창피함, 공허함, 자기연민, 자기혐오, 죄책감 같은 감정들을 말하는데, 그 중 창피함, 즉 수치심은 가장 낮은 감정레벨에 속한다. 수치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상기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피함을 느끼는 원인이 몇 가지 인지적 착오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첫 째는 ‘모두가 나를 보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알다시피 사람들은 자기 일 말고는 별 관심이 없다. 두 번째는 타인은 나의 행동에 대해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만다는 얘기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자신만이 내 행동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으려 할 뿐이다. 세 번째는 남들이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버려야 할 습관 중 가장 찔리면서 공감하는 것은 바로 ‘미리 좌절하는 습관’이다. 이것은 항상 비관적인 결말을 상상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인데, 축구에서 우리 대표팀이 초반에 실점하자마자 미리 패배로 단정 짓고 한탄을 하다가 술만 들이키며 잠들었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사실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절망하는 습관은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미리 좌절한다고 해서 좌절의 순간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정면 돌파가 가장 좋은 해결책인 듯하다.


 ‘파국화의 끝 바라보기’라고 소개한 이 방법은 지금의 일로 인해 걱정되는 최악의 결과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말 그대로 미리 좌절하는 행동패턴은 ‘습관’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해 보라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그 끝에 있는 것이 4대 두려움이라고 하는 죽음, 이별, 파산, 매력 상실(노화)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금 당장의 현실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고, 걱정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방법을 생각하면 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포기하면 된다. 


- 참고로 앞서 말한 축구 경기에서 미리 좌절하던 친구는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섣불리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좋은 친구지만 연락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나는 나중에 실망하더라도 일단은 희망은 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95쪽)



 비난에 의해 상처받는 상황은 담담히 넘기기가 쉽지 않지만 그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는 걸 방치할 수는 없다. 일단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란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상대는 때로는 진실을 가장하여, 비교나 질문 등을 통하여 교묘하게 나를 비난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의도적으로 상대방과 거리를 두어서라도 영향 받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렇지 못 해서 비난을 받게 되었다면 몇 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비난이란 것은 상대가 자신의 불안한 마음 상태를 나에게 ‘투사’한 것이라는 점이다. 멀쩡한 마음으로 비난을 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난을 하는 내용 역시 그 사람의 감정일 뿐, 정작 그 사람은 나보다 나를 모른다. 그러니까 그들의 의견이 진리일 리는 없다. 이미 감정 컨트롤이 안 되는 그들의 투사를 받아들일 필요가 전혀 없다. 여러 가지 대응법이 있지만 핵심은 그들과 ‘공명’하지 않는 것이다. 더 강하게 맞받아치는 것은 연료를 공급하는 꼴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와 같이 그냥 ‘그 사람의 생각으로 놔두기’와 같은 방법이 좋다. 가장 고차원적인 대응 방법인 ‘공감’도 좋을 것 같지만 대응하는 사람의 내공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말이 맞습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상대의 공격성을 상쇄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라면 도무지 나 자신을 사랑할래야 사랑할 구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한 번 사랑해볼 수는 없을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을 받을 만한 나’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말자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완벽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 사랑은 무슨 조건을 갖추어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할 만한 외모를 갖추거나 좋은 성격과 인품을 갖출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자존감을 모두 회복한 다음에, 당당해진 다음에 나를 사랑해야지’하고 미룰 필요가 없다. (274~275쪽)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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