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빙점 -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미우라 아야코/ 이원종 서평
13년 간의 투병과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 등 작가 자신의 삶도 드라마틱했던 미우라 아야코의 대표작 빙점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혔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만을 말하자면 그다지 복잡할 것도 없고 등장인물도 몇 되지 않는다. 아빠인 게이조, 엄마 나쓰에, 아들 도오루, 그리고 양녀 요코 이렇게 4인 가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는 원래 딸 루리코가 있었으나 사이시라는 남자에게 목졸려 죽게되고, 그 살인범의 딸을 입양해서 키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남보기에 부럽기만한 행복한 가정의 이면에 상상도 못할 증오와 배신, 질투, 죄책감 등을 불러오는 씨앗이 된다.
이들은 가족이지만 성격이나 가치관이 서로 많이 다르다. 게이조는 의사이자 병원 원장으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누가 보더라도 점잖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다. 그래서 아내인 나쓰에가 외도를 한 정황을 보고도 따져묻지 못한다. 마치 나쓰에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해주기라도 바라는 듯이. 그렇게 상대를 원망하며, 자신을 괴롭히며 혼자 끙끙 앓는다. 나쓰에는 고생 없이 부유하게 자랐고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이다. 그러나 한 순간의 유혹에 빠져 딸을 돌보지 못하고 결국 딸이 죽게 되자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대체하고자 입양을 원하던 나쓰에를 보고 게이조는 바로 살인범의 딸인 요코를 몰래 입양하는데, 훗날 자신이 정성껏 키운 아이가 딸을 죽인 살인범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받을 충격과 배신감을 통해 아내인 나쓰에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나쓰에는 친딸 이상으로 애지중지하며 요코를 키운다.
시간이 흘러 너무나 아름답게 성장한 요코는 심지가 굳고 사려깊은 데다가 천성적으로 남을 원망할 줄도 모른다. 그러나 요코를 입양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남편의 일기를 통해 모든 사정을 알아버린 나쓰에는 마음속 깊이 요코와 게이조를 증오하고 있었다. 요코를 목졸라 죽일뻔 하기도 했고,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적어놓은 종이도 바꿔치기하는 등 몹쓸 짓을 하게된 나쓰에는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의연하고 바르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요코가 더욱 미워진다.
결국 아들 도오루의 친구인 기다하라가 요코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까지 질투하여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출생의 비밀을 폭로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항상 밝게 열심히 세상을 살아오던 요코는 자신의 마음에도 그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빙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요코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을 시도한다. 게이조가 유서를 발견하고 급히 요코를 찾아내어 위세척을 하고 딸을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그 와중에조차 나쓰에는 자신을 난처하게 만든 요코를 마음속으로 원망한다. 나쓰에는 양녀의 죽음보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더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곧 입양을 주선했던 게이조의 친구에 의해 요코가 사실은 살인자의 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가족 모두는 각자 다른 충격에 휩싸인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는 나쓰에의 도를 넘은 악행에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쓰에의 원망과 복수심, 질투라는 감정에 이입이 되기도 한다. 상황이 유발하는 감정에 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것도 사람이고 보면 말이다. 큰 용기를 내어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다가도 주위사람에게 책망을 듣거나 무시를 당하면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하고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게 되는 일, 누군들 경험해보지 못 했을까. 자책과 반성을 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을 바꾸지 않는 게이조나, 여동생을 이성으로 느끼며 그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는 도오루 역시 감정이입이 어렵지 않다. 오히려 아무 죄도 없이 냉대를 받아야만 했던, 그러나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성실한 삶을 살았던 요코의 사람됨이 낯설다. 자기 아버지의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고, 그걸 못견뎌 자살까지 결심해야만 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요코의 가족처럼 매일 보고 지내는 사람의 마음조차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영원을 맹세하지 않았던 기다하라의 태도가 요코에게 믿음을 주었던 것은 그럴듯 하다. 인간의 마음이 변한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마음은 항상 바뀔 여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관계가 틀어졌더라도 그 관계의 회복이나 전환 역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그래서 사람의 확신이란 것은 때로 허무할 수 있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어떤 계기에 의해 극단적으로 틀어진 삶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인정한다면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 "변한다고도 변하지 않는다고도 단언할 수 없어요. 지금은 평생 변하지 않을 작정이긴 하지만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지요. 하지만 영원히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걸요. 그러니까 결혼 약속도 나는 하지 않겠어요."(547쪽)
- 저는 바로 며칠 전에 '죽임을 당해도 살아나겠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 스스로도 자살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확신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일까요?(579쪽)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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