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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May 13. 2020

여행을 떠날 때에는 어떤 책을 챙겨가야 할까?

길고 긴 여행 기간, 내 배낭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그런 책들.

나의 여행은 항상 책과 함께였다.


안 그래도 무거운 배낭 안에 내가 꼭 서너 권의 책을 챙긴 데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었다.


1. 내가 즐겨 찾는 여행지들의 인터넷 상황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곳도 적지 않았고, 인터넷이 잘 터진다 한들 느린 속도로 인해 내 속도 같이 터지곤 했다.


2. 책을 읽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보통은 멍을 때리거나 정처 없이 거리를 거닐지만, 그것마저 질려 버릴 때에는 책을 읽는 것 외에는 무료함을 달랠 방법이 없다.


3. 사방이 모르는 언어로 가득 찬 어색한 곳에서 익숙한 언어의 글자로 쓰인 책을 읽는 것은 나름 흥미롭다.

이미 여러 번 읽었던 그런 책들도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서는 다르게 읽힌다. 내 기분과 주변의 분위기가 바뀐 탓에 그 책을 읽고 받아들이는 나의 생각 또한 같이 바뀐 듯하다.


아무튼,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무거운 책들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앞으로 쓰일 글에서는 내가 여행을 다닐 때에 가지고 다녔던, 혹은 그럴 가치가 있었던 책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1. 시집


시집은 대부분 작다. 부피가 크지도 않고, 무게가 가벼운 편이다.

물론 책 한 권에 쓰인 텍스트의 양이 다른 책들보다 훨씬 적기는 하지만, 시집 한 권이면 긴 여행의 무료함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

시 한 편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읽은 후에도 잠시 생각에 빠져 있자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시를 찾아서 그 시를 외우는 재미도 시를 읽는 재미에 버금갈 만큼 쏠쏠하다.


본인은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라는 시집을 추천한다. 이 시집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 가운데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시들만 특별히 모아 엮은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집을 읽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시가 등장하곤 한다. 이미 친숙한 시들이 상당수 들어가 있어서 진입장벽이 낮다고 봐야겠지.

그래서 시집과 아직 친하지 않은 여행자 분들에게는 이 시집을 적극 추천한다. 




2. 여행 에세이


여행 에세이는 보통 감성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런 감성적인 요소들은 내 여행마저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가끔씩 책에서 등장하는 여행 관련 꿀팁을 찾아내는 재미도 상당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라는 에세이를 추천한다.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라서 그렇다. 다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실제 인도 여행에서 기대한다면, 그것은 곤란하다. 물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인도에서 이 책에 나오는 일들이 등장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겠지만, 여행 초반부터 인도에 대한 대단한 영적 환상에 빠져 있다면 필히 이번 인도 여행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



3. 컬러링 북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책은 컬러링 북이다. 

컬러링 북을 생각하면 어릴 적 즐겨하던 색칠 놀이가 떠올라서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시시함이 컬러링 북의 진짜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컬러링 북에는 지나친 꾸밈도 없고,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할 만한 텍스트도 쓰여있지 않다. 그저 심심할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책에 그려진 그림들을 하나둘씩 칠하고 있자면, 마음이 정말 편해진다. 

집중해서 색칠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단순히 손에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칠하는 행위에 온 정신이 집중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컬러링 북에는 기본적으로 명상의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여행지에서는 색연필이나 사인펜 따위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필기구의 수급마저 어려운 오지로 여행을 떠난다면 컬러링 북을 가지고 가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그 경우에는 컬러링 북과 함께 각종 색칠 도구들을 챙겨가야 하는데, 필기구 조차 구할 수 없는 오지를 여행하기에 무거운 배낭의 무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즐거움뿐'이라는 불교 컬러링 북을 추천한다.

그림의 빈칸을 하나하나 색칠하다 보면 내 안에 쌓여있던 온갖 번뇌와 부정적인 생각이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 제목 그대로 여러분의 마음 안에는 오직 즐거움만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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