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생각보다 무용한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사람의 몸뚱이를 단순한 일회용품 정도로 여겼다. 건강을 살뜰하게 챙기는 사람을 볼 때면 머지않아 다시 먼지로 돌아갈 텐데 왜 그렇게 애를 쓰나 이해가 안 가기도 했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갔을 때는 자연을 거슬러 억지로 삶을 연장하는 데 대한 모순성에 고개를 내저었다. 최근에 와서는 그 인생이라는 기간이 일회용으로 치부하기엔 무척이나 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사람의 삶을 그러니까 나의 삶을 조금은 하찮게 여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은 "그래서 뭘 어쩔 건데"와 "그렇게 해서 바뀌는 게 뭐가 있는데"였다. 나는 매번 주문처럼 이 문장을 외웠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심지어는 친구들과 나가 놀 때도. 하고 싶은 일은커녕 하기 싫은 일조차 없었던 나에게 이 세상은 무색무취의 새하얀 도화지와도 같았다. 걸어도 걸어도 모든 것이 새하얀 세상에 있었으며,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세상에 저녁은 오지 않았다.
이처럼 서늘하다 못해 차가운 태도로 모든 것에 일관하던 나의 하루는 따분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따분한 하루가 연속된 인생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었으니, 그 인생의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삶'이란 그저 살아져서 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인생이 아무런 열의 없이 이토록 뜨뜻미지근했던 것은 승부욕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없었다. 누구를 꼭 이겨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친구들과 내기를 할 때면 일부러 저주기 일쑤였고, 누구나 한 번쯤은 불타오를 만한 입시판에서 역시 아무런 경쟁심도 느끼지 못했다.
승리에 대한 갈증이 없었던 내가 가장 따분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운동이었다. 누구도 응원하지 않았기에 운동경기를 보는 것은 구름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지루했고, 직접 경기에 참여하는 상황이 올 때면 같은 팀원 모두에게 질타를 받을 만큼 내 몸짓은 무기력했다. 한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친구들 틈에 녹아들려 어지간히 버둥거려도 봤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메워지지 않는 '다름'의 간격은 이제 막 10년 언저리를 살아낸 어리고 또 여린 초등학생에게 너무나도 버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이토록 차가운 내가 싫었다. 나도 옆집의 누구처럼 운동 경기에 나가고, 뒷집의 누구처럼 1등을 하기 위해 밤새워 공부하고 싶었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승부욕만큼 어떤 일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또 있을까, 나는 누구를 이기고 나아가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결여된 채 무척이나 뜨거울 수 있었던 삶의 가장자리만을 빙빙 돌았던 것이다.
무기력하고 따분했던 내 인생이 변곡점을 돌아 어느 순간부터 뜨겁게 치닫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동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자극에도 쉽사리 달아오르지 않던 나는 의욕을 불어 일으킬만한 명분이 필요했다. 의욕을 향한 의욕만큼은 항상 끓어 넘쳤기에 거기에 불을 붙이는 것 정도야 아주 쉬운 일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공장 속 컨베이어 벨트처럼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그저 해내기만 하던 사람에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수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여행이었다. 이미 몇 해 동안 여행을 마음에 품고 살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과 달과 별 따위에 지나지 않는 추상적인 무엇이었고 의욕의 불씨를 밖으로 꺼내는 일에는 거대한 노력이 필요했다. 일단은 돈이 필요했고, 또 여행을 충분히 떠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으며, 마지막으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였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는 -어쩌면 끝이 나지 않을- 여행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수업을 듣는 대신 아침 일찍 일어나 돈을 벌었고, 돈이 어느 정도 모인 다음에는 기약 없는 휴학을 선언하고 학교를 도망쳐 나왔다. 그다음에는 줄곧 바라나시만을 생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들뜬 마음을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혔으며, 인도에 다녀온 이후의 계획을 흐릿하게나마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마침내 이뤄낸 것이 나의 첫 번째 바라나시 여행이었다. 다시 한 번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여행의 시작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었고 그 마지막 역시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해야 해서 하는 일도 아니고, 누구를 이기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닌,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생겼다는 점에서 나의 첫걸음은 분명 고무적이었다. 가고 싶은 길이 처음으로 생긴 나는 그곳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걸었다. 여전히 빠르게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천천히 걷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내 걸음걸이에는 일정한 방향이 생겼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나는 오롯이 나로서만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군중 속에 스며들려 무던히도 애썼고,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혼란은 점점 가중되어 결국에는 크게 겉돌고 말았다. 겉도는 삶은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과도 같았다. 아무리 힘을 써도 창 안쪽으로 스며들 수 없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점점 아래로만 내려갔다. 그렇게 모든 것과 엇갈리던 내 주변에는 항상 무뚝뚝한 상처가 가득했다. 손에 잡히는 물건에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기억이 잔뜩 묻어있었고, 나를 둘러싼 분위기는 점점 날카로워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몸뚱이에 쉬지 않고 생채기를 남겼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곳은 원래부터 나와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었고, 내가 그들과 동하기 위해 노력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온갖상처 속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심지어 이방인이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마땅해서 어떠한 부담감도 느껴지지 않는…, 그것이 바로 여행이었다.
여행이 나를 다시 살게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사에 아무 의지 없이 무기력하기만 했던 나에게 여행은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 첫걸음은 좁은 보폭에 지나지 않고 곧은줄기가 되어 쉴 새 없이 주변으로 곁가지를 쳤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도 열 손가락으로 다 세지 못할 만큼 많아졌고, 좋아하는 일을 모두 세자면 하루가 꼬박 다 필요하다.
나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변한 내 모습에 놀라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이것이 진짜 내 모습이라고, 나조차도 나를 잘 몰랐는데 당신이 어떻게 나를 알았겠느냐고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소설 데미안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색채가 없던 다자키 쓰쿠루는 순례를 떠났고, 지구별 여행자는 하늘 호수 어딘가를 떠다니고 있으며, 마침내 알을 깨고 바깥으로 나간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