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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Aug 25. 2020

눈치가 조금만 더 없었더라면

차라리 덜 자란 어른으로 남아있었다면

당신을 만날 때만큼은 내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꼽자면 시트러스 계열, 그중에서도 자몽이 가장 알맞겠고요.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 만났고, 앞으로도 그러길 원했으니 항상 향긋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었겠지요. 우리는 하루의 반쯤을 땀에 전 채로 있었습니다. 여전히 머리는 며칠째 감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겠고요. 더러운 길바닥에 주저앉아 싸구려 비스킷 한 봉지를 나눠 먹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서는, 지나가는 베그패커 한 무리도 고개를 내저었더랬죠.


쓸쓸했는데 괜찮았고, 힘들었는데 버틸만했습니다. 하루 3,000원짜리 빈대 가득한 방에서 며칠이고 보내는 게 왜 안 쓸쓸하고 왜 안 힘들겠어요. 하지만 그 모든 의미 없는 고생이 그런대로 괜찮게 느껴졌던 것은 당신과 모든 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나와 당신은 모두 서로를 필요로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여행뿐 아니라, 삶 대부분을 그런 식으로 살아온 우리는 비슷한 인생을 함께 견뎌줄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으니까요.


기억의 끝이 머무는 순간부터 벅찬 상태로 달렸습니다. 매 순간이 조용했지만, 그럼에도 격정적이었죠. "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새로운 도시로 가는 티켓을 끊을 때마다 당신이 하던 말입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어색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은 우리를 새로이 있게 했습니다. 평생을 원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의 눈치를 조금씩 빠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항상 어색한 채로 있어야 했으니까요.


걸음을 뗄수록 등짐은 무거워진다는 것을 당신과 나는 비슷한 시간대에 느꼈을 거예요. 지나치리만큼 눈치가 빨랐기 때문이었겠죠. 그리고 그것은 어느 순간 우리가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거대해질 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지난번 비스킷을 쪼개 먹던 그 땅바닥 위로 넘어지고 말겠고요. 곧 끝이 날 것이란 걸 여섯 번째 감각으로 느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기어코 그 끝을 찾아낸 시간은 스치고 지나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흘렀습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함께 시간을 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쉬웠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척, 얼마나 애썼는지 당신 모를 겁니다. 아마 당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요. 아쉬워하던 어느 날은 또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기차에 타 있었습니다. 기차는 평소처럼 지나치게 늑장을 부리더군요. 어차피 도착할 거면서 말이죠. 아아, 그 순간 또 한 번 느끼고 말았습니다. 목적지만을 남겨둔 마지막 역 어딘가에서 우리도 결국에는 우리의 끝에 도착하고 말 것이라는 걸요. 우리는 텔레파시가 통한 듯 동시에 서로를 마주 봤습니다. 평생토록 어리게 남아있기에는 지나치게 눈치가 빨랐습니다.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도 지루한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면서. 눈치가 조금만 없었더라면 이 글도 지금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겠군요. 차라리 덜 자란 어른으로 남아있었다면 우리는 언제나 함께할 수 있었겠군요.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새벽부터 너무 가슴을 쓰리게 해서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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