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웅, 우웅, 우웅….
새벽부터 진동이 울렸다. 91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인도에서 걸려온 전화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끊어버렸겠지만, 그 날은 나도 모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새벽 공기가 너무 차가웠던 탓이다. 스피커로 익숙한 듯 어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사람 목소리가 맞는데 왜인지 어눌한 느낌이 들어서, 몇 번이나 "여보세요"를 외쳤다. 찝찝한 마음에 눈살을 찌푸리고 시계를 보니 벌써 5시 반이다. 그렇다면 인도는 2시…. 아, 술에 취하기 딱 좋은 시간.
그 사람은 혀가 반쯤 꼬인 채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와 톤이 그랬다. 한 시간이 넘게 "네가 나를 어떻게….", "너무한 거 아니야?", "나 혼자서 얼마나…." 같은 반쪽짜리 말들이 지났다. 이쯤에서 전화를 끊을까도 싶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러지 못했다. 먼저 전화를 끊은 것은 그쪽이었다. 아무래도 배터리가 다 된 모양이다.
창밖으로 천천히 해가 떠올랐다. 나는 그 환한 빛이 싫어서 창문을 닫고 두꺼운 암막 커튼을 쳤다. 양손으로 주변을 더듬으며 간신히 소파에 앉았다. 가죽 소파의 서늘한 촉감이 등판으로 전해졌다. 집 안이 따뜻해졌는데도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마음이 시렸기 때문이겠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으나 뜨나, 어차피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 며칠을 되돌아보니 나 참 편히도 살았다. 멀쩡히 커피를 마시고, 따분한 책을 읽고, 그러다 졸리면 눈을 붙였으니 말이다. 내가 일찌감치 잊고 행복에 겨워 있는 동안 너는 어땠을까. 너는 자주 나를 그렸겠구나, 가끔 앓았겠구나, 그러던 어느 새벽에는 술에 취해 내게 전화까지 걸었구나. 벌써 희미하게 바래버린 네 얼굴이 허공에 지났다.
내가 떠나면서 본 풍경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는데, 네가 느낀 모든 것에는 내가 잔뜩 묻어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 상처는 등 뒤에 새겨졌지만, 너의 상처는 손등에 새겨졌다는 이야기다. 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상처를 마주하며 얼마나 앓았을까. 남겨진 사람이 당연히 더 아팠을 텐데, 평생을 떠나며 살아서, 떠나보낸 적도 남겨진 적도 없어서 알지 못했다.
여행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 여행은 떠나는 일에 연속이라, 남겨진 사람은 계속 앓아야 한다. 순간 주먹을 꼭 쥔 손에 힘이 풀리면서 목이 메어왔다. 다시 커튼을 헤집고 창문을 열었다. 커튼이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들어오는 날 선 빛 한 점이 나를 베었다가 다시 사라졌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바람과 햇빛이 남긴 생채기는 늘기만 하고 아물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창문이 몇 번 덜컹댔다. 그 바람이 밖에서 부는 것인지 아니면 안에서 휘몰아치는 한숨인지는 알 수 없다. 팔다리는 덜덜 떨리는데, 속은 쓰리다 못해 뜨거웠다. 눈가가 홧홧하게 달아올라서, 이를 꽉 깨물었다. 내가 이 정도로 흐느끼면 그 사람은 뭐가 되는가. 나도 모르게 주변을 양손으로 끌어안았다. 하지만 만져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까는 시렸는데 지금은 시리다 못해 조금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