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를 떠나는 날에는 비가 내렸다. 한가로운 2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는데, 5도 안팎의 시린 공기와 축축한 비가 만나서 더욱 쓸쓸한 느낌을 내었다. 차라리 눈이 내렸더라면 포근한 느낌이라도 들겠건만, 애매하게 차가운 날씨는 시리고 또 아린 빗방울을 만들어 프라하를 감쌌다. 이별하기 딱 좋은 날씨다. 이별은 그 자체로도 아픈 것이어서 이별하기에 좋은 상황이 있나 싶지만, 굳이 이별해야 한다면 시리고 비 내리는 프라하의 날씨 정도가 적당하다.
좁은 침대 한편에 멍하니 앉아서 배낭을 정리했다. 짐을 싸는 날에는 어김없이 외로움이 밀려온다. 김이 잔뜩 서린 창문 밖으로 어렴풋이 화약탑이 보였다. 60m쯤 되는 고딕 양식의 탑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높아 보인다. 화약탑이야 말로 프라하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장소다. 탑 아래를 지날 때면 시간을 뛰어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높다란 탑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뉘기 때문이다.매일 아침 화약탑 아래를 지나면서, 시간 여행을 하는 상상을 펼치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라하에서의 일과였다. 물론 양쪽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주의해서 보면 약간 다른 정도. 창문을 열고 다시 한 번 화약탑을 바라봤다. 프라하가 끝이면 화약탑도 끝이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인 브라이언이 문을 두드렸다. 누가 지어준 영어 이름인지 그와 퍽 잘 어울린다.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레 마마보이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프라하에 있는 브라이언도 그렇다. 그의 사진만 봐도 '엇! 마마보이다.'하고 튀어나올 정도다. (그가 말하길, 그는 실제로 마마보이란다) 아무튼 방으로 들어온 그의 손에는 필스너 우르켈 맥주 두 병이 들려 있었다. 원래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떠나는 마당에 맥주 한 병쯤은 참을만하다.
브라이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처음 프라하에 도착한 날로 시간은 돌아갔는데, 그때는 내가 너무 거지꼴을 하고 있어서 손님으로 받기 약간 꺼렸단다. 하긴, 며칠간 씻지도 못했고 배낭은 절반 정도 찢어진 채로 질질 끌고 로비로 들어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시간의 순서에 맞게 우리의 이야기는 한 번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서로 서툰 영어로 대화하는데 이렇게 걸림이 없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브라이언은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이다. 그도 나와 비슷하게 느꼈을 것이다.
기차가 도착하기까지는 3시간 남짓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시내를 한 번 둘러봐야 하고, 빈의 비싼 물가를 피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건도 미리 사둬야 한다. 브라이언과 그리고 정든 게스트하우스와 이별을 하기에는 지금이 적당하다. 마침 이야기도 끝을 향해 달렸다. 더 빠르게, 쉼 없이.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그에게 왜 내 연락처를 묻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나를 그냥 지나쳐도 좋아. 그동안 적당히 재밌었잖아. Kim도 담담하게 이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랬다. 나는 담담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같이 이별하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조금 쌀쌀맞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를 위해 좋다고 생각했고, 또 옳은 이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껏 거절한 SNS 친구 신청만 해도 아마 수백 건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이별하는 상황이 다른 것이 아니라, 브라이언이 조금 달랐다. 미련이 평소보다 더 컸던 모양이다. 이야기가 시간의 끝에 '턱'하고 부딪쳤다. 이별해야 하는 시간이다. 조만간 다시 만나, 다음에는 내가 그쪽으로 갈게 같은 상투적인 인사말은 없었다. 그래서 더 시렸고, 그래서 더 이별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프라하를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화약탑 아래서 정신을 차린 것을 보면 아마 무의식 상태였을 것이다. 호젓한 걸음으로마지막 시간을 뛰어넘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코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내 마음을 얼렸고, 맨손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내 몸뚱이를 얼렸다. 눈이 아닌데도, 날씨는 영상 5도밖에 되지 않는데도 나는 얼어붙었다. 먼발치에 프라하 역이 보였다. 들어온 길과 나가는 길이 같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잠깐 졸았다. 갑자기 따뜻해진 공기 탓일 수도 있겠고, 이별의 고통으로부터 점점 멀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기지개를 켜고 아까 마트에서 산 체코산 생수의 뚜껑을 열었다. 동시에 무심코 지나갔던 브라이언의 한마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냥 지나쳐도 좋아", "그냥 지나쳐도 좋아", "그냥 지나쳐도 좋아"…. 참 아름다운 말이다. 부모님과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브라이언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나쳐갔을까.그냥 지나치도록 두는 것이 그로서는 가장 아름답고 덜 아픈 이별의 방법이었을 것이다.생각이 날아가는 시간의 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생각으로 들어찬 시간의 경계가 차츰 허물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별을 느꼈다. 깨달은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이별은 그냥 지나쳐야 마땅하다. 굳이 맺으려고 애쓰지 않아야, 지나듯 내뱉는 습관적인 미련에 상처받지 않아야, 그래야 덜 아프다. 이별을 앞둔 수천수만 가지의 시간 앞에서 나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