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내 가슴팍까지 오는 아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이는 자그마한 손으로 다이얼을 마구 돌리다가 손을 뻗어 간신히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확인하고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는 길가의 꽃을 찍었다. 꽃을 찍은 다음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고 어쩌면 다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하늘의 모습을 천천히 사진으로 담았다. 아이의 눈길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바로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이었다.
'철커덕' 셔터 소리가 들릴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섣불리 카메라를 바라보지도 않았고, 그에게 말을 걸거나 갑자기 방향을 틀어 유난스럽지 않은 예술의 어느 한 장면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배려와도 같았다. 렌즈는 나를 가리키고 있고 나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니 몰라야 한다. 그래야지만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믿었다.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옅은 웃음을 보면, 사진을 찍는 이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잠시 숨을 참고 덜덜 떨리는 선풍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거친 날숨이 쏟아지기 직전쯤, 쩌렁쩌렁한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곧장 그의 눈을 쳐다봤다. 깊고도 넓었지만, 탁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언젠가 거울 앞에 서서 내 눈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내 눈동자는 넓었지만 결코 깊지 않았고, 맑았지만 동시에 탁한 듯 무언가가 씌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삶과 죽음의 죽음이 아닌, 내 가슴속 어느 한 부분의 죽음과 개성의 종말. 그것이 아니라면 왜인지 찝찝한 내 눈빛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딴생각을 하는 사이,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겠다. 나는 조용히 아이를 불렀다. 평소에 잘 웃는 편은 아니지만, 그때는 웃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도망갈 것 같아서. 나는 그의 이름을 물었고,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떠이"라고 답했다. 떠이는 여자 이름이 아니냐고 묻자 떠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아이는 자기도 잘 모르겠지만, 집에서는 자기를 그렇게 부른다고 답했다. 떠이는 긴장이 풀렸는지 내 옆으로 조심스레 걸어왔다.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여준단다. 카메라를 손에 쥐는 순간 가슴이 느즈러지면서 먹먹함이 차올랐다. 내가 처음 사진을 찍었던 카메라와 같은 기종이었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것이 너의 첫 카메라냐고 물었다. 떠이는 그렇다고 답했다. 삼촌이 쓰던 카메라란다. 출시한 지 15년도 더 된 카메라를 떠이는 잘도 조몰락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로 기억이 멈춰 섰고 다시 살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셔터를 3번이나 고장 내고 손에 페인트 가루가 묻어나던 그 카메라에 나는 얼마나 많은 영혼을 실었던가. 그리고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지금, 지구 정 반대편은 아니지만, 나와 꽤 먼 곳에서 숨쉬는 또 다른 아이는 그 카메라로 얼마나 무거운 추억을 만들었고 또 만들 것인가.
카메라를 손에 들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자, 떠이는 다시 카메라를 가로채 갔다. 그러고 나서는 내 눈앞으로 작은 화면을 가져다 대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겼다. 기술적으로 엉망인 그 사진에는 말로는 다 설명 못 할 감동이 있었다. 나는 가만히 사진을 쳐다보다가 그 정도면 충분하다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저 멀리서 떠이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떠이~"하고 이름을 불렀다. 왜인지 정겨운 목소리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떠이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 몇 개를 던져두고 자리를 떠났다.
떠이는 다음 날에도 카페 앞에 와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를 기다린 모양이다. 다음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떠이는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매번 기다렸다는 듯이 손짓 발짓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나 역시 몸짓으로 천천히 떠이의 질문에 답했다. 며칠간 떠이의 사진을 보면서 느낀 사실은 그가 그런대로 괜찮은 사진작가였다는 것이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감정을 담았고, 그러면서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사진에 관한 진짜 문제는 사진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슬쩍 들여다본 렌즈 속에는 이미 곰팡이가 가득 펴져 있었다. 게다가 센서에는 먼지가 잔뜩 붙어있었고,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고속 셔터에서 자꾸만 삐걱거리며 셔터가 씹혔다. 내가 몇 가지 문제를 손본다고 해도 이 상태의 카메라로는 앞으로 촬영을 지속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이번에는 다시 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방에서 렌즈 몇 개를 꺼내 그에게 주려 해도 마운트가 맞지 않아서 체결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쉬운 마음속에서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날개를 달았고, 마침내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그날도 그는 카페 앞에서 나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어설픈 번역기로 떠이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떠이는 며칠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너무나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나에게 전했다. 떠이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깊었다. 짠물이 잔뜩 끼어 있는 그의 눈에 내 모습이 그대로 반사되어 보였다.
가방에서 콜라 한 캔을 꺼내 떠이에게 건넸다. 그리고 어젯밤에 준비한 쪽지를 그에게 보여줬다. 쪽지에는 다음에 올 때는 내가 더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올 테니 지금 쓰는 카메라가 고장 나도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떠이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그 말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는 눈치였다. 때마침 내가 부른 택시가 도착했다. 나는 짐을 트렁크에 실으며, 카페 직원들에게 힘껏 손을 흔들어 이별을 알렸다. 준비가 다 끝나고 나서는 떠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택시 기사는 뭐가 그리 급한지 자꾸만 서두르라는 몸짓을 취했다. 하는 수 없이 택시에 올라타서 멀어져 가는 떠이의 얼굴을 살폈다.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끝은 아닐 것이라 어렴풋이 예상했지만, 그런데도 이별은 쓰렸다.
내가 다시 아유타야에 들른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였다. 앞으로 멘 배낭에는 제습함에서 꺼낸 오랜 카메라와 렌즈들이 잔뜩 담겨있었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고, 누군가 내 사진을 찍어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어디서도 셔터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돌며 물어물어 떠이를 찾아봤지만, 최근에 그를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배낭에서 딸그락딸그락 렌즈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파티션 하나가 벗겨진 모양이다. 가방을 열어 다시 렌즈를 정리해야 했지만,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서 다시 방콕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끊었다. 허무하게 주저앉아 담배를 몰아 피우는데, 기사 아저씨가 곧 출발한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힘없이 버스에 올라타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덜커덩거리는 소리와 함께 버스가 아유타야 시내를 가로질렀다. 버스가 떠나는 중에도 부지런히 주변을 살폈다. 떠이는 보이지 않았다. 버스 안에 모든 이가 살아서 덜컹거리는 동안에 나는 죽은 채로 있었다. 아유타야에 다시 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