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처음 만난 것은 재작년 봄의 일이었는데, 어느새 계절은 두 바퀴 하고도 한 걸음을 더 나아가 다시 여름이 되었어. 날수로 따지자면 한 900일쯤이 지났겠네. 너와 떨어진 채로 보냈던 오전 10시가, 오후 6시가 벌써 900번이나 지났다고 생각하니, 새삼 어색한 느낌이 들어.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쯤 아프리카 남서쪽 어딘가를 지나고 있겠구나. 온도는 비슷하지만, 계절과 습도는 정반대인 공기를 마시면서 말이야. 나는 그동안 겨울의 파리를 봤고, 뜨거운 방콕을 몇 번이나 더 느꼈고, 결국에는 인도도 다녀왔어. 모든 일이 마치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처럼 순식간에 일어나 버린 거야. 그리고 그 일련의 여행끝에 서 있는 내 모습은 참 많이도 변해 있더라. 네 말마따나 사람을 가장 빠르게 변화시키는 것은 여행과 죽음 두 가지였던 거지.
어느 날은 거울 앞에 서서 변한 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형상과 어떤 생각이 자꾸만 교차되어 맴돌더라고. '내가 스쳐 지나온 여행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네가 지나온 여행 역시 또 다른 너를 만들었겠구나.'하고 말이야.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퍽 마음에 들어. 그렇다면 비슷한 길을 걸었던 너의 모습도 어지간히 마음에 들겠지. 그래서 요즘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 그때 추레했던 너의 모습과 여행이 쌓이면서 많이 변했을 지금 너의 모습을 동시에 그리며 살아.(그런데도 담담할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겠지.)
지난달, 네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은 것은 정말 미안해. 설렌 마음을 안고 답장을 보내려고 했는데, 자꾸만 손가락이 멈칫하더라고. 거기에 답장을 보냈다가는 우연을 짜내서 억지 인연을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을 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와의 만남은 완벽한 우연 속에서 이뤄졌으면 좋겠어. 삭막해서 더 아름답고, 희박해서 더 극적이게. 내가 아는 너라면 분명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것으로 생각해. 조금은 더 미지근하게 조금은 더 단단하게 되어서 만나자. 스치듯 우연히 말이야.
이 편지가 제시간에 너에게 닿지 못할 걸 알면서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구구절절 미련을 적어 내렸다.
2019년의 반쯤을 지나고 있는 어느 날, 카트만두에서 조금은 맹맹한 아무개가.
추신 : 요즘은 시를 읽어. 네 말대로 소설을 읽을 때는 소설이, 에세이를 읽을 때는 에세이가, 시를 읽을 때는 시가 잘 써지더라. 그래서 가끔은 분위기를, 공기를, 그리고 사람을 읽고 싶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