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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Oct 15. 2020

죽음 앞에서 조금은 담담해지기

미지근했던 겨울, 나는 인도에서 처음 죽음을 만났다.

바라나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연히 죽음이다. 나는 인도에 오기 전까지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심지어는 장례식장도 한 번 안 가봤으니 말이다. 죽음은 매번 나를 피해 갔고, 언제나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 내가 바라나시에 도착한 지 일주일여 만에 수백 구의 시체를 봤으니, 충격을 받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다. 


시체를 처음 마주한 것은 바라나시에 도착한 이튿날, 한적한 라씨가게에서였다. 아무 생각 없이 반쯤 썩은 나무 의자에 앉아 라씨를 퍼먹고 있는데, 골목 저 끝에서 왁자지껄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갈수록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그들은 주황색 천이 덮인 들것을 들고 내 옆을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뚫어지게 들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깐 숟가락질을 멈췄다. 저 들것에 시체가 실려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놀라지 않았다. 시체를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주변에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놀랄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지나가는 장례 행렬을 바라보는데, 삐쭉 튀어나온 돌부리 때문에 들것이 덜컹했다. 그리고 주황색 천 밖으로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한 오른쪽 손이 '툭'하고 빠져나왔다.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정신이 아득했다. 나의 죽음, 혹은 내 가족이나 친구들의 죽음은 아니지만, 비로소 인생에서 첫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라씨집에서 나와서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만났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죽음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볼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고, 간담이 서늘해지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며칠 후에는 우연히 화장터를 지나다가 장작 아래에서 활활 타고 있는 시체를 만났는데, 그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고 또렷해서 깜짝 놀랐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늘한 돌 바닥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른한 죽음은 신비함을 불러일으키고, 선명한 죽음은 두려움으로 사람을 물들인다. 실눈을 뜨고 화장터 주변을 곁눈질했다. 그리고 그때, 꽁지머리를 트고 새하얀 옷을 차려입는 남자가 내게 알은체했다. 나는 어쩌다가 그와 대화의 물꼬를 텄다. 특이한 그의 옷차림이 궁금하기도 했고, 정중히 거절하기에는 그럴만한 경황이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저 멀리 남인도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황당한 그의 옷차림과 머리에 관해 묻자,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그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인도에서 가족이 죽으면 상주들은 새끼손가락 한 개 정도 되는 꽁지머리만을 남기고 완전히 삭발한단다. 그다음에는 깨끗한 흰옷을 차려입고,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어리숙한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자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와 그의 동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전혀 슬프지 않다고 말했다. 갠지스강에서 아버지를 화장하고, 그 잿더미를 흘려보냈으니, 아버지는 비로소 고행을 마치고 신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내가 벌써 아버지가 그립지 않냐고 묻자,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묵직한 공기가 바라나시에 내려앉았다. 그는 아버지가 정말 보고 싶다고,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곁에 있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의 눈가에 한가득 눈물방울이 고이더니, 후드득 떨어졌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인지라 무척이나 슬펐던 것이다. 깡마른 그의 얼굴이 눈물로 반짝거렸다.


나 역시 오랜 시간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가슴께가 저릿해 왔다. 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 머리에서 출발해 발끝으로 나갔고, 귓가가 먹먹해지면서 잠깐 시간이 멈췄다. 위기였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도 이렇게 가슴이 저리는데, 내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나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 뻔했다. 사람들이 절실하게 종교를 믿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버거운 죽음의 굴레 안에서, 어느 한 곳에 마음을 기대지라도 않으면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겠다. 삶의 기운보다 더 진한 죽음의 기운이 드리웠다. 나는 그 속에서 죽음 앞에서 조금은 담담해지기로 했다. 삶이란 어쨌거나 죽음이라는 결말을 두고 쓰이는 각본이어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담담해져야 했다.


새벽까지 시간을 죽이다가 화장터로 나갔다. 화장터 근처에서는 개들도 짖지 않았다. 새벽 보트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가 화장터 앞에 배를 세우고 이것저것을 설명했다. 어렴풋이 들려오던 그의 목소리가 언젠가부터 완전히 멎었다. 저 멀리 불타고 있는 시체들이 내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까만 배경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그 누군가의 인생을 짧게 요약이라도 한 듯, 너무나 격렬하고 또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끝이 나겠지. 만약 내 몸뚱이도 저리 태워진다면, 내가 타오르는 불길은 조금 더 뜨겁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감정에 휩쓸려 걸음이 완전히 멈췄을 때, 관광객들의 보트가 '웅'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화장터에는 나와 장례식을 치르는 가족들만 남았다. 해가 어렴풋이 떠오르자, 불꽃이 타닥거리며 하늘로 사라졌다. 화장터에서 일하는 남자가 갈고리로 남은 장작과 시체를 정리했다. 그의 표정은 꽤나 무덤덤했다. 건너편 힌두교 사원에서 기도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가트로 나왔다. 죽음의 끝이었고,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산뜻한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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