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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Jul 28. 2022

깨지지 않는 것

두통의 단상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대체로는 이유없이 (아마도 고질적 빈혈), 어제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셔서. 두통의 감각은 두개골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려 애쓰는 것 같다. 고대 잉카인들은 두통이 생기면 머릿속 나쁜 기운을 빼내기 위한 목적으로 두개골에 구멍을 냈다고 한다. 그 시술을 받은 사람들은 과연 생존했을지 의심되는 처방이지만, 무엇이 꿈틀대다 터질 것만 같은 불안이 고대 잉카인들에게도 있었나보다. 시커먼 연기가 머리를 깨고 나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고통스럽기보다는 후련하다. 깨진 머리의 단면은 깔하고 날카롭다.

물론 사람은 깔끔하게 깨지지 못한다. 잘 알고 있다. 절단면으로 누구를 다치게 할 수 없어서 다행이다. 차라리 베이는 쪽이고 싶었다. 2주 전쯤, 플라스틱의 단면 분석을 하기 위해 액체질소에 넣고 급속냉각을 시켰다. 얼린 플라스틱은 칼로 슬쩍 누르기만 해도 깔끔하게 동강났다. 액체질소를 쓰지 않고 억지로 자른 플라스틱은 절단면이 뭉개졌더랬다. 플라스틱을 깨끗하게 자르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사람은 플라스틱보다 강하고, 복잡하고, 또 부드러우니까. 충격을 받으면 깨지기보다는 베이고 구겨지고 뭉개진다. 머리는 두개골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러 겹의 막과 뼈, 살, 혈관. 이 중첩된 구조가 나를 살게 한다. 나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질긴 생각의 겹, 겹, 겹. 그에서 글이 파생된다. 이 역시 나를 살게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때로는 뭉개진 마음이 머리를 꽉 채우고 발버둥친다. 심장으로 흘러가 혈관을 막는다. 력은 나를 찌그러트릴 것이다. 어느 쪽이든 깨진 파편보다 찝찝한 결과물이다.


러니 감싸고 지켜야지. 원하는 대로 깨질 방법은 없다. 아가는 것은 원래 번거롭고 질기다고, 내가 감히 그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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