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언어 토해내기
글을 쓰는 취미는 예전부터 있었다. 군대에서도 2년 내내 수양록을 썼는데, 매일 기록하기엔 칸이 모자라서 여분의 수첩을 이용해서 지루했던 일상을 남기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과였지만 느끼는 감정은 또 별개였기에, 장차 이 따분한 회고를 보며 미래의 따분함을 잊고자 먼 훗날의 여흥을 위해 그렇게 매일매일 기록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이다.
그 뒤로 직장을 가지게 되고 또 다른 사회의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누구나 느끼는 시간 흐름의 속도인데, 확실히 20대가 느끼는 시간과 30대의 시간은 속도가 다름이 자명하다. 일상을 어떻게 마주 하느냐에 따라 속도 체감이 달라진다는 게 정설인데, 이는 어른이 될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든다는 좋은 증거가 되는 것이지.
이야기가 딴 길로 샜다. 아무튼 30줄이 접어들고, 기록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생기면서 한때 유행했던 5년 일기, 10년 일상 기록기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 이거라면 하루 짧은 줄로 부담없이 기록할 수 있겠다. 그러나 웬걸, 예상과 달리 마치 방금 산 수학의 정석책마냥 처음 부분만 새카맣고 나머지는 순백색의 여지를 남겨둔 채 갈기갈기 찢겨(행여 누가 볼까봐)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일기가 쓰고 싶었을 때쯤 눈에 뜨인 건, 줘도 안 갖게 생긴 회사 다이어리였다. 매년 11월에 연례행사로 대형서점에서 하는 다이어리 대전에서 다이어리를 구입한다. 일단 회사 다이어리는 크고 디자인도 구린 데다가 '다꾸'의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리고 이쁜 다이어리 하나 정도 갖고 있으면 업무 의욕도 좀 샘솟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이상 만 35세 아재의 징그러운 생각.
회사 다이어리에 일기를 쓴 지 벌써 3년차, 하루 보통 2/3에서 많이 쓸 땐 1장 반 정도, 두껍긴 오지게 두꺼워서 3년이 되어가는데도 한 권이 다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지루한 일상이라도 작은 사건들을 모으면 의미가 겠다 싶어서 다시 시작한 일기건만, 어째 감정을 토해내는 창구로밖에 사용되지 않는 것 같아 신경 쓰인다.
일기에 담지 못한 여러 감정들, 삶을 살아가며 생각한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마음먹은 것이 작년 초였다. 1년이 되어서야 이렇게 첫 글을 써본다. 불특정 다수가 읽을 수 있는 인터넷의 특성상 이전처럼 마음 가는대로 모두 적어 내려가는 것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때, 마음속에 차고 넘치는 언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니겠는가. 하나의 작은 목표를 실천한 밤이다. 그래서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