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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wan Oct 17. 2024

[食] 素面_수몐


도심 속 사찰에 스님과 신도들을 위한 식당이 있다. 외부인에게도 열려있으니 폐쇄적이지 않고, 빈곤한 이에겐 한 그릇의 국수를 무료로 준다고도 하니, 오히려 중생을 위한 자비의 불심(佛心)을 엿본다.


사찰의 음식은 우리도 중국도 기본이 같아, 불필요한 살생을 금하고, 자극적 향(오신채(五辛菜:마늘·파·달래·부추·흥거))을 피한다. 논과 들의 곡식과 푸성귀, 버섯이 주가 되니 맛은 꾸밈이 없이 담백하다. 


사찰의 음식에서 발견하는 '건강'은 속세(俗世)의 '보양'식과 그래서 결이 다르다. 일상의 보양식은 고기가 주가 되어 단백질을 섭취함이 근간이다. 반대로 사찰의 것은 소화에 방점이 찍힌다. 먹은 음식이 잘 소화되어 몸에 흡수됨이 중요하다. 먹고 뒤돌아서 배가 고파야 좋은 음식이다.


수몐(素面)은 야채 국수를 말한다. 뤄한몐(罗汉面)과 푸위엔몐(福缘面) 처럼 불가의 이름을 따와 종류별 이름도 붙이나, 근간은 같다. 버섯과 야채로 우려낸 국물은 맑되 진득하다. 그릇째 들어 국물을 들이켜도 시원하고 묵직할 뿐, 입에 남는 잡미(雜味)가 없다. 버섯향이 굵직하고 감칠맛도 도니, 국물만으로 이미 흡족하다.


표고, 목이, 팽이버섯류들과 죽순, 두부피, 요우몐진(油面筋), 당근을 큼직하게 썰어 듬뿍 넣었다. 면을 후루룩 당겨먹고, 큼직한 국물 속 재료를 건져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버섯은 여전히 향이 살아있고, 각각의 식감이 독특하다. 당근은 달달한데, 푹 익어 감자처럼 뭉개지니 색깔의 구색을 위한 위치를 넘어섰다. 죽순과 두부피도 각자의 맛과 식감이 명백하니, 하나하나의 재료가 명확하여 흐트러지거나 섞임이 없다. 진득한 국물만이 그를 모두 품어내어 넉넉하다.


적지 않은 양이 쉽게 훌훌 들어가니, 한 그릇이 금방 빈다. 뒷자리의 남자는 두 그릇을 앞에 놓고 혼자 묵묵히 입에 넣고 있었다. 일어나 사찰의 경내를 걸으니 슬그머니 배가 꺼진다. 두 그릇을 먹었던 남자는 한두 번 왔던 사람이 아닌게다. 이처럼 소화가 잘 되니, 사찰의 보양식임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면이 담긴 그릇에 커다란 국자로 국물을 부어 바로 내어준다. 배급을 받는 듯한 음식이 15위안(2,600원 내외)이다. 이 맛에 이 가격이라니, 불교의 자비로움이 하해(河海)와 같아 나오는 길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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