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품력(2)
본질적으로 마케팅은 Top-line(매출)을 향합니다. Bottom-line(이익)의 방어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찾아 매출을 늘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새로운 제품이 새로운 시장을 엽니다. 기 진입 시장 내에서의 신제품, 때로 새로운 시장 카테고리에 진입하는 제품일 수도 있습니다.
4.
마케팅은 새로운 제품을 기획합니다. 정확히는 '상품화'합니다.
기본적으로 제품 개발을 책임지는 R&D, 생산부서와 함께 제품의 시장성을 판단하고, 소구 포인트를 찾고, 경쟁력 있는 SKU, 가격, 패키지 전략을 수립하여 시장에 내어놓을 '상품'을 만듭니다.
2022년을 전후해서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제품이 있습니다. 중국 로컬 브랜드 Proya는 '早C晚A', 아침엔 비타민C로 미백효과를, 저녁엔 비타민A로 항노화 효과를 겨냥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화장품 시장에서 비타민이 새로운 원료는 아닙니다. Proya는 원료의 효능을 고객의 TPO로 연결 지어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아침과 저녁, 세트로 기획한 제품은 '22, '23년 Proya의 견고한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로레알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까지 가세하며 커다란 시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제조업은 아니지만 올리브영이 보여주는 제품 기획력은 놀랍습니다. 트랜드를 빠르게 읽어내고, 컨셉을 키워드화하여 제품군을 선보입니다. 30대 이후 여성을 대상으로 이야기했던 '안티 에이징'은 '슬로 에이징'으로 진화하며 타겟이 확대되었습니다. '안티'라는 부정적 어감도 덜어내며 항노화 제품의 이용층이 20대까지 넓어졌습니다. 동물 친화적, 친환경적 제품을 포괄하는 '클린뷰티' 역시 2020년 첫 선을 보인 후 3년 만에 누적 매출 5천억원을 넘어섰습니다. 막강한 유통 파워를 기반으로 새로운 카테고리의 시장을 만들어 냅니다.
신제품의 성공 스토리도 있지만, 실패 사례는 더 많습니다. 실상 대부분의 신제품은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집니다. F&B 시장에서 신제품의 성공률은 10%도 되지 않죠. 제품이 좋다고, 마케팅을 잘했다고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영업력과 유통에까지 신제품의 시장 안착은 전사적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오리온은 2019년 생수 사업에 진출합니다. 제주용암수라는 제품을 내놓으며 에비앙과 경쟁을 하는 프리미엄 생수라 홍보합니다. 용암해수를 끌어올려 염분과 미네랄을 분리한 후 다시 미네랄을 정제수와 섞어(블렌딩) 만들었습니다. 미네랄의 양을 조절할 수 있어 맛과 영양을 고려한 최적의 경도로 제조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경도 200'이라는 컨셉과 수치를 바탕으로 다른 생수와의 '차별화'에 공을 들입니다. 오리온의 건강식 브랜드 '닥터유'까지 붙여 보증을 하고, 박진영을 모델로 광고 캠페인도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많은 제조업이 그렇듯 오리온은 '제품력'을 모든 활동의 중심에 둡니다. 기발한 마케팅 아이디어나 막대한 광고비의 투입 없이도 제품력을 기반으로 시장을 열어갈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실제 오리온은 지난 십여 년간 광고 마케팅비의 축소를 포함한 판관비 절감과 함께, 좋은 품질의 신제품 출시를 통해 성장해 왔습니다. 지속적 매출 확대와 그를 상회하는 이익률은 이를 증명합니다.
다만 이는 오리온이 잘해왔던 영역, 제과에 한합니다. 오리온은 제과 시장의 트랜드와 소비자의 니즈를 잘 압니다. 미묘한 제과 제품의 품질 차이를 알고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생산 라인 공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과 제품의 유통을 위한 영업망으로 신제품을 분포, 진열하여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있습니다. 파이, 스낵, 젤리, 영양바와 같은 영역에서 새로운 제품은 오리온의 이러한 자산을 기반으로 시장에 안착합니다. '제품의 차별화'만으로 일정 부분 매출 볼륨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생수는 다릅니다. 제품의 생산도, 품질 관리도, 유통망도, 영업도 생소한 영역입니다.
생수에 대한 소비자의 기본적 니즈는 갈증 해소입니다. 삼다수보다 제주용암수가 갈증해소에 더 탁월하진 않죠. 더 많은 미네랄을 함유한 '건강한 물'이라 해도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인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은 '물'일뿐이라 생각하는 소비자도 많습니다. '미네랄 보충을 위해서라면 영양제를 먹지'하고 생각할 수도 있죠. 물의 유통, 영업망도 새로 구축해야 합니다. 기존 시장의 강자들이 차지한 자리를 뺏어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이 '경도 200'이라는 차별성만으로 삼다수를 매대에서 치우고 제주용암수를 진열할리는 만무합니다. 온라인 역시 마찬가지죠.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가격 프로모션이 진행 중인 제품들이 우선 노출되게 됩니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제주용암수가 막대한 광고 & 프로모션 지원 없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주용암수는 제조 과정의 특이성으로 인해 법률 상 '혼합음료'로 구분됩니다. '샘물(생수)'이 아닙니다. '천연'이라기보다 '인공적' 느낌이 강합니다. 소비자의 오인지, 인식의 혼동은 불가피합니다. '미네랄', '경도'라는 차별성만으로 너무 순진하게 도전한 신규 사업입니다. 좋은 제품기획은 차별적 아이디어와 함께 접근가능성을 전제로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차별성(Distinctiveness)과 접근성(Affordability)의 이야기와도 닿아있습니다.
'제품'을 시장의 니즈와 연결 짓고 컨셉화하여 '상품'으로 만드는 것.
'상품'의 시장 피드백을 끊임없이 모니터링하여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점을 찾는 것.
지속적으로 활력 있는 브랜드로 남기 위해 제품에 '뉴스'를 고민하고 더하는 것.
즉, 새로운 제품을 기획, 출시하고 건강도를 관리하며 제품 뉴스를 더하는 것. 마케팅의 출발점, 제품력을 위한 마케터의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