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격(1)
어쩌면 마케팅의 일 중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프라이싱(Pricing)입니다.
가격은 수요과 공급이 결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럭셔리 제품들은 매년 가격을 올리고도 수요를 만듭니다. 반대로 너무 싼 가격은 제품의 퀄리티에 대한 불신으로 수요를 떨어뜨리죠. 공급자에겐 원가와 마진의 이유가 있고, 소비자에겐 주머니 사정이 있습니다. 이를 둘러싼 매크로 경제 상황도 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의 급속한 인플레이션은 기업의 흥망을 좌우했습니다.
가격은 움직입니다. 그럼으로써 브랜드에 지속적 영향을 미칩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드 이후 한국 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겪은 어려움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 트랜드에 따른 결과이기도 합니다. 수백 개의 자동차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 중국 로컬 브랜드의 기술력 향상도 당연한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의 대응에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가격 관리의 실패입니다.
2010년대 중반까지 10%에 가까운 점유율로 성장하던 현대차는 불과 10여 년 만에 1%의 점유율로 사실상 시장 퇴출의 지위까지 하락합니다.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역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7%대의 점유율을 보여주는 것과 대조됩니다. 전기차로의 급격한 패러다임 이동, 중국 로컬브랜드의 부흥 등 매크로 상황은 같습니다. 일본 역시 중국과의 영토 분쟁(센카쿠열도)으로 현지 일본 기업의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던 시기가 있습니다. 당시 베이징에선 수천의 사람들이 일본 대사관으로 행진을 했고, 지나는 일본차들은 시위대에 훼손을 당했었죠. 어쩌면 더 혹독한 상황이었지만 현대자동차처럼 무너지진 않았습니다.
중국의 현대자동차 딜러들은 가격 프로모션을 상시화 했었고 현대자동차는 이를 사실상 방치했습니다. 특히 사드 이후 정체된 매출을 늘리고자 할인폭을 더 늘렸습니다. 중형 세단의 할인액이 1,500만 원에 육박하기도 했었으니, 가격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일한 제품의 어제 가격과 오늘 가격이 다릅니다. 내가 산 가격을 믿을 수 없으니 현대자동차를 구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격의 붕괴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채널의 간섭이 가격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이커머스의 등장은 단순히 판매 채널의 확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존 오프라인 유통망을 통해 제품을 팔던 기업들은 온라인 유통에 주저합니다. 이커머스가 앞으로의 대세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베스트셀링 제품의 납품을 고민하는 이유는 채널 간섭에 따른 이해관계자와 가격의 충돌 때문입니다.
온라인 판매 채널 확대는 그간 상생 관계였던 오프라인 유통 대리상에게 손실을 안겨주는 행동입니다. 협력사는 반발할 수밖에 없고, 매출의 상당 부분을 공헌했던 거래 관계라면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온라인 유통을 위한 별도의 SKU 제품을 만들고, 별도의 가격 정책을 세우게 됩니다. 제품과 가격의 이원화 정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결국 생산과 관리 비용(Cost)에 추가 부담이 됩니다.
행여 온라인에 더 싸게 공급했던 제품이 오프라인 유통으로 흘러나올 경우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시장 가격의 지위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소비자의 불신을 넘어 최종 소비자 접점 매장의 마진에도 영향을 미치게되면 점주는 해당 제품의 취급 자체를 거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백화점, 할인마트, 대리점, 온라인 채널별로 다른 모델명의 제품을 내놓습니다. 동일한 제품처럼 보이지만 미세한 스펙 차이를 두며 별도의 가격을 책정합니다. 모두 채널 간 간섭을 막기 위한 방편입니다.
최근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을 검토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가격을 움직이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소비자를 유인하고 이익을 극대화합니다. 과거 항공사, 호텔업계 정도에 한정되어 운영되었던 탄력적 가격 정책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모습입니다.
아마존(AMAZON)은 자체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하루에도 수십 번 가격을 조정합니다. 소비자들의 구매 내역, 경쟁사의 가격 변동, 계절적 요인 등 특정 상품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를 분석하여 개별 소비자에 별도의 가격을 책정합니다. 오늘 '내'가 산 금액과 '네'가 산 금액이 다르고, '오전' 내가 산 금액과 '오후' 내가 산 금액이 다릅니다. 우버(UBER)는 승객의 위치와 목적지, 주변 운전자의 수, 시간대, 경쟁사 모니터링의 정보들을 종합해 가격을 산출합니다. 가격의 오르내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부하기도 하고, 수용을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을 다시 플랫폼사는 분석을 하고 가격 조정에 반영합니다. 그렇게 이익을 극대화하는 균형점을 찾습니다.
비단 디지털 플랫폼 기업만은 아닙니다. 월마트 역시 '24년 500개 매장에 전자 가격표 도입을 선언했습니다. 소비자 구매 관련 정보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된 만큼 불가능한 도전이 아닙니다. 종이에 프린트된 가격표는 어쩌면 곧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차별성(Distinctiveness)과 접근성(Affordability)의 균형점 찾기를 마케팅의 HOW로 말씀드렸었습니다. 가격은 특히나 접근성을 좌우합니다.
전기차 캐즘(Chasm)이 이슈입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종말과 전기차로의 전환을 낙관했던 전망이 급속히 수그러들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는 것이 가격입니다. 초기 얼리어덥터를 넘어 매스(mass) 시장으로 넘어가기에는 가격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저가 전기차를 쏟아내는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놀라운 성장은 이를 반증합니다. 전기차 대중화의 키를 가격이 쥐고 있습니다.
다이소는 가격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삼습니다. 가격 접근성을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를 유인합니다. 단순히 가성비 좋은 제품을 소싱하여 파는 것이 아니라 다이소는 목표 가격을 먼저 정하고 제품을 맞춥니다. 원가에 마진을 더하는 통상적 가격 설정 방식과 정반대의 접근입니다. 3천 원, 5천 원의 화장품은 그렇게 탄생합니다.
무너진 가격은 브랜드를 쓰러뜨리고, 접근성을 높이는 가격 혁신은 시장을 엽니다.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움직이는 가격은 통제와 관리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가격을 적극적으로 움직여 최적의 이익 포인트를 찾기도 합니다. 가격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제 마케팅에서 가격을 설정함에 놓여있는 기준들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