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케팅 vs. 브랜딩
많은 기업들이 마케팅 부서를 두고 있지만, 브랜드 전담팀을 별도로 구성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용어로 둘을 혼합하기도 하고, 브랜딩과 마케팅을 동일한 개념으로 혼용하기도 합니다. 마케팅 부서의 담당자들을 브랜드 매니저(BM)로 지칭함은 브랜딩의 관점을 담기 위함일 텐데, 실상은 마케팅에 치중되어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브랜딩은 마케팅과 다릅니다.
마케팅은 앞서 살펴보았듯, 4P로 대변되는 제품기획, 가격, 판촉의 활동입니다. 브랜딩은 마케팅의 앞에 있습니다. 기업이나 상품의 철학이자 존재 이유, 방향성입니다.
마케팅이 단기적 성과를 목표로 한다면 브랜딩은 중장기적 브랜드의 지향점입니다. 마케팅은 목표하는 타겟이 있고, 브랜딩은 목표하는 페르소나가 있습니다. 마케팅은 경쟁사가 상수로 존재하지만 브랜딩은 경쟁사보다 '나'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은 '차별화'를 무기로 경쟁사와 싸우고, 브랜딩은 '존재이유'를 지향점으로 자아 표현의 장이 됩니다.
마케팅은 브랜드 '전략'을 기반으로 한 '전술'적 활동입니다.
나이키는 '세상의 모든 Athlete(운동선수)를 위한 영감과 혁신'을 이야기합니다. '몸(Body)이 있다면 누구나 선수(Athlete)'라는 메시지로 비단 프로 선수를 넘어 일상으로 저변을 확대합니다. 브랜드의 존재 이유이자 철학이 하나의 지향점으로 표출됩니다.
이는 브랜드의 세계관이 됩니다. 브랜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이 세상 모두가 Athlete이기에, 그런 Athlete을 위한 혁신과 영감을 위해, 나이키는 존재합니다. 그래서 퍼포먼스를 극대화하는 운동화를 연구하고, 스포츠 의류를 제작합니다. 그리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슬로건, 'JUST DO IT'이라 말하죠. 소비자는 나이키가 단순히 디자인이 좋아서, 퍼포먼스가 뛰어나서 구매하지 않습니다. 나이키를 통해 혁신과 영감의 세계관에 동참합니다.
펭귄북스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책의 제목과 저자가 큼지막히 적혀있는, 심플한 컬러와 레이아웃, 펭귄의 이미지는 브랜드를 대변합니다. 누구나 쉽고, 싸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펭귄북스는 '책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시작된 브랜드입니다.
당시 양장본 중심의 비싸고 읽기 어려운 책들 대신, 가벼운 페이퍼백으로 심플한 디자인을 입힙니다. 첫 출간한 책은 '오디세이아'입니다. 서시시지만 이야기입니다. 펭귄북스는 산문의 형식으로 번역을 하여 출간합니다. '누구나 쉽고, 싸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존재 이유를 실현합니다.
세스고딘은 '그 제품 때문에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는가' 질문합니다. 제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통해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는지입니다.
우리는 브랜드를 소비함으로써 나를 표현합니다. 파타고니아를 구매하며 지구를 생각하는 그들의 철학에 동참합니다. 그들의 아우터를 입고, 나 역시 친환경의 선봉대로 그들의 세계관에 공감합니다. 파타고니아를 소비함으로써 '나'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브랜드의 존재 이유이자 지향점을 만드는 것, 그것이 세계관이 되어 소비자와 공감하는 것. 그래서 브랜딩은 마케팅과 다릅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브랜드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읽힙니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고,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은' 꽃은 '브랜드'의 꿈과 같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비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