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카오야(北京烤鸭), 북경 오리구이다.
개인적으론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하기엔 왠지 모자란 요리지만 그 유명세는 이미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뻗쳤다. '베이징덕', 'Peking Duck'으로 '딤섬(Dim Sum)'과 함께 중국 음식을 대표하기에 이르렀음은 중국 정치의 중심 베이징이 가진 상징적 힘이다.
베이징 요리는 근본이 약하다. 카오야를 제한다면 딱히 베이징 요리라 부를 만한 요리가 없다. 본래 베이핑(北平)이라 불렸던 시골이 명청대(明清代)에야 대국의 수도로 거듭나며 '징(京)'이 붙었다. 베이징 요리의 근간은 산동(山东)요리다. 풍부한 농수산물을 바탕으로 한 산동성의 음식이 수도인 베이징으로 넘어왔다. 산동 출신의 요리사들이 황제의 요리사였다.
카오야는 본래 난징(南京)의 요리다.
난징반야(南京板鸭), 난징카오야(南京烤鸭)라 하여 오래 전부터 남방 사람들은 염제하여, 또 구워서 오리고기를 즐겼다. 명의 영락제는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을테고, 고향의 맛은 잊지 못하는 법이다. 베이징 카오야가 탄생했다.
가마에 숯을 넣어 가마 전체의 열기로 구워내는 방식이 전통적이다. 먼루카오야(闷炉烤鸭)라 칭한다. 뜸들여 천천히 가마에서 익혀낸 오리구이의 의미다. 커다란 불길이 없어, '鸭子不见明火', 오리가 불을 보지 못하는 요리라 했다. 베이징에 비엔이팡(便宜坊)이라는 카오야 전문점이 있다. 명대(明代)에 생겼다하니 600년이 넘은 라오즈하오(老字号)다. 비엔이팡이 먼루카오야를 대표한다.
1864년 취엔쥐더(全聚德)가 문을 열었다. 전통적인 먼루카오(焖炉烤)가 아닌 꽈루카오(挂炉烤)라는 방식을 택했다. 가마 속에 오리를 걸고, 장작을 때어 굽는다. 나무는 과일나무*로 한정했다. 과일목 장작의 향이 오리에 스며들며 풍미를 더했다. 취엔쥐더가 비엔이팡을 넘어 베이징 카오야의 대표 음식점이 되었다.
지금의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열렸을 때, 긴 전쟁의 피로에 지친 베이징엔 마땅한 연회의 장소도, 고급 음식점도 없었다. 취엔쥐더는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의 사랑을 온 몸에 받았다. 외국 귀빈의 방중에 취엔쥐더의 카오야를 만찬 상에 올렸다. 카오야는 그렇게 중국을 대표하는 요리가 되었다.
카오야는 껍질이 진미(眞味)다.
부드럽게 바삭한 식감(酥脆)은 가히 독보적이다. 오리의 육즙, 기름이 터져나옴과 함께 입에서 녹아 사라진다. 식당에서도 껍질을 먼저 내어놓는다. 껍질은 전병에 싸먹지 않는다. 약간의 설탕, 춘장에 찍어 그대로 입에 넣는다. 특유의 식감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다.
이어 껍질과 살, 고기가 썰려 나온다. 얇은 전병에 파, 춘장, 오이, 마늘 등의 재료를 같이 싸먹는 재미가 있다. 오리고기 특유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담백함은 배가한다.
살이 발려져 남은 오리는 탕이 되거나 튀겨져 나온다. 껍질의 맛이 주는 놀라움이 배를 채우는 전병 쌈으로 이어져선, 허연 탕을 마시거나 튀김으로 다시 기름진 고기를 먹는 흐름이다. 어쩔 수 없이 용두사미(龍頭蛇尾)의 결말처럼 끝은 초라하다.
그래도 시작은 창대하고 그 상징성은 중국을 뒤덮을만하니, 그 맛을 못 잊어 슬그머니 다시 찾는다.
※ 大同烤鸭店은 과일목 중 사과나무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