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소비자 조사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소비자 조사를 불신했고, 실제로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아이폰을 출시하기 앞서 '어떤 휴대폰을 원하는지' 물었다면, '통화 끊김이 없는', '디자인이 좋은'과 같은 답을 들었을 겁니다. 키패드가 없는 터치 스크린과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다양한 기능은 소비자 조사로 얻을 수 있는 답이 아닙니다. 혁신은 소비자 조사로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다릅니다. 몸에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패스트푸드를 찾고 흡연을 합니다. 펩시의 블라인드 테스트 사례에서 보듯 펩시가 더 맛있다고 하면서도 코카콜라를 마시죠. 대용량팩은 결국 남아 버려질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하는 마음에 구매하고 낭비합니다.
주변에 쉽게 휩쓸리기도 합니다. A가 좋았는데, 옆의 두 사람이 B가 좋다고 하면, 은근슬쩍 나도 B가 좋다고 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포모 증후군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Fear of Missing out', 나 혼자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하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일컫는 말입니다. 트렌드와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본인의 관심사가 아님에도 같이 추종하는 행태를 보이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해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를 하는 행동도 포함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비이성적 태도는 너무나 빈번하고 일상적이어서 과연 소비자 조사 결과를 믿어야 할지 의문이 생김도 당연합니다.
최근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풍자하는 콘텐츠 한 편을 보았습니다. 독립광고 제작사 협회(AICP) 어워드를 개최하며 '미술관(MoMA)에 걸릴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도, 광고를 만드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임을 두 편의 짧은 영상 콘텐츠로 보여줍니다. 그중 한 편입니다. 반 고흐의 'Starry Night' 작품을 소비자 간담회의 형식을 빌어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아이가 그린 것 같고 너무 어둡고 무섭다는 말들로 이야기는 빌딩(Building) 됩니다. 이 작품이 좋다고 손을 들었던 1명은 다른 사람들의 무심한 반응을 보곤 재빨리 입장을 바꾸죠.
실제 포커스 그룹 인터뷰는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모아갈 수 있습니다. 모더레이터가 말의 뉘앙스와 주제를 바꾸어가며 참여자의 의견을 한쪽으로 끌고 갈 수 있죠. 때로 목소리가 큰 참여자의 의견에 다른 참여자들이 끌려가기도 합니다. 의견 충돌로 인한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태도이고 포모 증후군의 약한 발현이기도 합니다.
*영상 링크 : AICP + MoMA, 'Focus Group' (youtube.com)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소비자 조사를 합니다. 정량/정성, 각각의 방법들로 소비자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정량화하고 인사이트를 찾는 노력을 합니다.
제품 평가를 위해, 신제품 개발을 위해, 기업/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광고 캠페인의 인사이트를 찾기 위해, 브랜드의 건강도 확인을 위해, 서비스 수준의 정량화와 개선점 확인을 위해, 소비자 조사는 목적도 방법도 다양합니다.
무용한 소비자 조사가 되지 않기 위해선 조사의 기획도 달라야 합니다.
가설을 구체화합니다. 소비자 조사는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대안과 아이디어를 기대하지 마세요. 우리의 제품에, 서비스에 소비자들은 일 푼의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하느라 아이 보느라 가정대소사를 챙기느라 바쁩니다.
"더 좋은 금융상품 아이디어가 있을까요?"라고 묻는 다면 들으나마나 한 답을 얻게 될 겁니다.
대신 "푸바오 보러 가기! 적금 상품"에 흥미가 있는지, 한도 금액과 금리, 혜택을 구체화하여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두리뭉실하게 좋은 단어들을 쓰지 말고 명확하고 적확한 단어 사용이 필요합니다. '높은 금리'라 하지 말고 '5% 금리'라고 말하고, '더 바삭한 식감'이라 하지 말고 직접 제품 샘플을 만들어 먹어보게 해야 합니다. 좋다고 하면 무엇 대비 좋은지, 비교 대상을 찾고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말은 개인의 경험치에 따라 달리 해석됩니다. 단어가 추상적일수록 결과는 무용해집니다. 가능한 명확한 기준으로 모두가 같은 수준에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사회사는 서포터이자 진행 기관일 뿐 우리 브랜드는 모릅니다. 명확한 브리프를 준비해야 합니다. 조사의 목적은 무엇인지, 어떤 타겟을 생각하고 있는지, 가설은 무엇인지,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기대하고 있는지. 충분한 내부 고민을 바탕으로 가능한 구체적인 정보들을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사회사의 표준화된 양식과 방법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되고, 조사 결과는 나왔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몰립니다.
명확한 브리프를 바탕으로 우리 브랜드에 대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배경 정보 역시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라면 모더레이터도 포함한 설명, 논의자리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조사회사도, 모더레이터도, 모두 나와 같은 직장인이자 프리랜서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입니다. '내' 브랜드에는 사실 관심도 없었고, 취향도 아닐 겁니다. 그렇기에 관여도를 높이고 이해 수준을 높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관점과 눈높이에서 조사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습니다(Devil in the details). 정량이건 정성이건 조사 설문지를 꼼꼼히 뜯어보아야 합니다. 5점 척도와 7점 척도는 답하는 이의 태도에 영향을 미칩니다. 100분의 80이라는 동일한 수치라 해도 5점 척도라면 4점, 7점 척도라면 5.6점입니다. 5.6점/7점이 4점/5점보단 덜 부담스럽습니다. 질문의 의도가 드러나는 단어나 문장은 보다 객관적 표현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선택 보기들의 하이어라키(Hierarchy)가 다르진 않는지, 선택 보기들의 해석에 오해의 소지는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맛있다'와 '바삭하다'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습니다. '가격이 싸서'와 '가성비가 좋아서'는 의도와 다르게 같은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전체 조사의 구성 순서는 적절한지, 앞의 질문과 뒷 질문의 연결은 자연스러운지. 설문의 내용은 담당 직원에게, 조사회사에게 맡겨놓을 일이 아닙니다. 설문의 디테일로 조사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소비자 조사는 잘 활용해야 신뢰할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 맞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보여주기 전까진"
보여주면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설이 필요하고, 실제 샘플이 필요하며, 구체적이고 객관화할 수 있는 언어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조사 기획의 디테일을 챙겨야 합니다.